부모 품 못 찾은 장기실종아동 601명…경찰 전문성도 '실종' 상태

부모 품 못 찾은 장기실종아동 601명…경찰 전문성도 '실종' 상태

기사승인 2019-02-07 06:00:00


#염남이씨(73)는 지난 1984년 사라진 아들 이훈식씨(실종 당시 13세)를 
35년째 기다린다. 이씨는 식사 도중 “자전거를 가져오겠다”고 집을 나선 이후 지금까지 돌아오지 않고 있다. 염씨는 아들과 함께 살던 집에 발이 묶였다. 그는 “이사를 가려 해도 우리 훈식이가 집을 기억하고 찾아올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떠날 수가 없다”고 한탄했다. 염씨가 기억하는 특징은 아이의 다리 복숭아뼈 부분에 있던 화상 흉터다. 염씨는 지적장애 1급인 아들이 '어디서 모진 고생을 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하루도 편하게 잠든 날이 없다.

실종 신고 이후 48시간 이내에 아이를 찾지 못하면 장기실종으로 분류된다. 경찰청에 따르면 장기실종아동의 수는 지난달 1일까지 총 601명에 달한다. 지난 2017년 5월 550명이었던 것이 지난해 5월에는 588명으로 늘었다. 

경찰은 1년에 두 번 실종아동에 대한 ‘일제수색’을 진행한다. 전국 각지의 보호시설을 찾아가 무연고자 현황을 파악하고, 시설 내 보호 대상자 명단을 확인해 실종아동 정보와 비교하는 것이다. 장기실종아동 부모들도 경찰과 함께 수색에 나선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잡음이 끊이질 않는다. 지역 아동보호시설이나 장애인보호공동체 등이 개인정보보호를 이유로 시설 내 아동 기록 조회를 거부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실종아동 부모들과 동행한 경찰이 이같은 상황에 대처할 실무 지식과 역량이 부족하다는 평가다. 

실종아동 김호씨(실종 당시 4세)의 아버지 김기석씨(62)는 전국으로 아들을 찾아다녔다. 바닥에 버려지고 밟히는 아들의 실종 전단을 줍고 또 주워온 세월만 33년. 그러나 김씨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따로 있다. 이제는 일상이 된 기약 없는 기다림도, 만성적인 생활고도 아닌 수사기관의 역량 부족이다. 김씨는 “대다수의 실종전담 경찰이 아무것도 모른다”고 울분을 토했다.

김씨가 본 수색 현장에서 대다수의 경찰은 속수무책이었다. 수색을 막아서는 시설 기관장을 납득시킬 법률 지식이나 경험이 없었다. 경찰을 대신해 실종아동의 부모가 시설 기관장에게 실종아동 수색의 법적 근거를 설명하는 일이 빈번했다. 김씨는 보다 못해 내가 직접 경찰청 본청에 전화를 걸어 해당 기관장과 연결해주고 나서야 가까스로 협조받은 경우도 있었다“고 토로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결국 업무 협조를 받지 못해 문전박대당하는 날도 허다했다. 먼 지방까지 아들을 찾아 나섰다가 허탕을 치고 돌아오던 어느 날, 울분과 절망을 이기지 못한 김씨는 결국 지하철에서 쓰러졌다.

전문가들은 전문인력 부족을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한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국내에 일선 수사 현장에는 실종 전문인력이 거의 없는 수준”이라며 “경찰청 내에 실종 수사 역량을 갖춘 인력을 육성해야 한다는 인식이 약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실종아동의 부모들이 일선 경찰서에 배치된 수사관의 전문성 부족을 피부로 느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전문성 부족은 경찰관 개인 역량의 문제만은 아니다. 수사인력의 경험이 쌓이기도 전에 부서 배치가 달라지는 체계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배상훈 프로파일러는 “경찰청 내 실종전담반이라고 해도 수사 전문성이 부족한 경우가 태반일 수밖에 없다”며 “실종 수사를 맡았다가도 1~2년 단위로 인사발령이 나서 다른 부서로 떠나버리는 상황에서는 노하우가 쌓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수사인력의 전문성 강화는 장기실종아동의 증가를 막는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실종자를 찾을 확률은 시간이 지날수록 낮아진다. 실종 수사가 미궁으로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사건 초기부터 체계적인 수사가 이뤄지는 것이 중요하다. 지난 2017년 ‘어금니 아빠’ 이영학이 딸의 친구를 성폭행한 후 살해한 사건이 국민의 공분을 샀다. 당시 경찰은 피해 여중생 어머니의 실종 신고를 단순 가출로 판단했다. 범죄와 연관된 실종으로 볼 여지가 있었음에도 현장에 있던 일선 수사 인력은 이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경찰이 실종아동 수사역량 미숙으로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비판을 받았던 배경이다.

현재 전국 지방경찰청 및 일선 경찰서에서는 3382명의 경찰관이 실종사건 담당 중이다. 주무 부서인 여성청소년계(여청계)에서는 성매매, 가정폭력, 성폭력, 학교폭력, 가정폭력 수사와 청소년 실종 수사 등을 함께 담당한다. 이 상태에서 범죄 연관성이 의심되거나 큰 실종 사건이 터지는 경우 해당 수사에 인력보강을 하는 방식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수사관들이 한 부서에 장기근무를 원하면 가급적 그대로 배치한다”고 설명했다. 사실상 근속이 허용돼 원하는 사람은 전문성을 쌓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경찰청 내에서 여청계가 기피부서라는 주장이 제기된다. 여청계는 업무가 과중하고 민원이 많은 부서로 꼽힌다는 것이다. 근속 자원자가 희귀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미국과 영국에서는 실종사건이 발생하면 실종 관련 전문가 및 단체 등이 경찰과 긴밀하게 협조, 철저한 초동대응을 한다. 사건 초기부터 실종 분야 전문가가 경찰의 현장 수색과 수사 방향 설정을 지원한다. 국내 수사 방식과의 차이점이다.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장기실종아동이 더 늘지 않기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수사기관의 역량 강화를 포함해 정부와 사회구성원들의 지원도 뒷받침되어야 한다. 보건복지부 산하 실종아동전문기관 측은 “실종아동 문제의 해결에는 사회의 관심도 중요한 부분”이라며 “시민분들도 내 아이에게도 벌어질지 모를 일이라고 생각하고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또 “실종아동을 찾기 위한 방법 중 가장 중요한 것이 DNA 검사다. 시설에서 자랐거나, 어린시절에 가족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경우 꼭 경찰청에 가서 DNA 검사에 응해 달라”고 전했다.

지영의 기자 ysyu1015@kukinews.com


지영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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