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구조사 묶인 손발 풀어달라”호소에 의료계 ‘신중론’

“응급구조사 묶인 손발 풀어달라”호소에 의료계 ‘신중론’

故윤한덕 센터장 촉구한 응급구조사 업무확대 실현될까

기사승인 2019-02-14 04:00:00

故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이 생전에 당부했던 응급구조사 업무범위 확대에 대한 공론화 논의가 본격 시작됐다.

시민단체는 응급구조사의 업무범위 확대에 적극 환영했지만, 의료계는 엄격한 검증 과정을 거칠 것을 강조하며 신중한 입장을 냈다.

13일 국회헌정기념관에서 열린 '응급의료체계 고도화에 따른 응급구조사의 역할 및 업무범위 개정 공청회'에서 성종호 대한의사협회 정책이사는 “현행 응급구조사의 업무범위는 현실에 맞게 개정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다만, 의료계 직종간 업무범위에 대한 다툼이 첨예한 가운데 응급구조사 한 직역만의 업무범위를 규정하기 위한 위원회를 구성하고 관련법을 만드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최근 윤소하 정의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에는 보건복지부장관이 응급구조사의 업무에 대한 교육, 평가, 질관리를 위한 위원회를 구성해 5년마다 응급구조사 업무범위에 대한 적절성 조사를 실시하고, 응급구조사의 업무범위 및 업무지침에 반영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응급의학계도 신중론을 되풀이했다. 정진우 대한응급의학회 이사는 “환자의 생명과 안전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업무범위를 막연히 정해서는 곤란하다. 일정 수준의 업무범위 확대로 현장에서 어느 정도까지 환자를 살릴 수 있는 등 엄격한 효과와 안전성을 따져야 하고, 이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 이사는 “위원회를 구성해 업무범위를 결정하는 것은 겉보기에 합리적일 수 있지만 같은 뜻을 가진 위원들이 모이게 된다면 객관성과 공정성을 담보할 수 없다”며 응급구조사 업무에 대한 위원회 구성에도 우려했다.

간호사와 임상병리사 단체는 자칫 응급구조사와 업무범위로 인한 갈등을 빚을 수 있어 더더욱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응급구조사 단체가 업무범위로 확대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행위들은 모두 간호사 등 의료인의 업무영역이고, 이중 12유도 심전도 검사, 혈액검사 등 검사와 관련된 행위는 임상병리사의 업무영역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이들 간호사, 임상병리사 등 의사를 제외한 의료계 직역들은 최근 한 목소리로 의료법과 별도로 제정하는 단일법을 요구하고 있어 형평성의 문제가 불거질 수 있고, 또 각각의 업무영역 침범에도 예민한 상황이다.

정은희 대한간호협회 병원응급간호사회장은 “병원전단계 환자 이송현장에서 응급구조사의 역할 확대는 적절히 평가해 반영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병원단계에서 응급구조사의 역할 확장을 논의하는 것은 현재 보건의료인력체계에 혼돈을 주는 일이 될 수 있다”며 “보건의료조사자 간 업무범위에 대해서는 보다 큰 쳬계 내에서 충분한 시간을 갖고 과학적 기준에 따라 논의돼야 한다”고 전했다.

임상병리사 단체는 보다 강하게 우려의 뜻을 표했다. 안영희 대한임상병리사협회 임상생리검사학회장은 “응급환자에 대한 신속한 응급처치 필요성에 동감한다. 다만 의료기관 내의 의료행위는 의료법과 의료기사 등의 법률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 섣부른 초동대처로 환자의 상태를 악화시킬 수 있고 직무영역의 불필요한 충돌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안 회장은 “응급구조사는 원칙상 응급실 등 의료기관에서 진료보조를 할 수 없지만, 구급차 등 의료기관 밖 촌각을 다투는 응급상황에서 심전도 측정이 필요하다면 양보할 생각이 있다”며 “별개로 응급실을 포함한 의료기관에서는 응급실 내 반드시 임상병리사가 24시간 상주해 신속하고 적절한 진단, 치료가 가능하도록 하는 법 개정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와 달리 시민단체는 응급구조사의 업무범위 확대에 힘을 실었다. 윤선화 한국생활안전연합 대표는 “최근 단체에서 일반인도 심정지 환자를 살리기 위해 노력하자는 취지로 심폐소생술, 심장충격기 사용법 등을 배우고 실천하는 운동을 하고 있다. 그런데 법에 의하면 응급구조사도 심전도 검사의 버튼을 못 누르는데 감히 일반인이 환자를 살리기 위한 행위를 해도 될까 싶다”며 “일반 시민들은 직역 간 갈등을 떠나 응급상황에서 응급구조사들이 최대한 적극적인 행위를 해서 환자를 살리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는 우선 응급구조사 업무범위 확대와 관련한 과학적 근거 마련에 힘을 쏟겠다고 밝혔다. 박재찬 복지부 응급의료과장은 “응급구조사 업무범위 확대가 필요하다는 점은 충분히 공감한다. 다만 국민의 건강과 생명의 보호를 지금보다 증진시킬 목표를 위해서는 의학적, 임상적 근거가 필요하고, 수많은 과정을 거쳐 국민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며 “현재 소방청에서 준비하고 있는 구급대원 업무범위 확대 시범사업에서 소중한 기제가 쌓이기를 바란다. 단기간에 결정짓지는 않겠다”고 말했다.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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