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헤이즈는 ‘언니 주접킹이라고 태연님 팬분들께 소문났어요’라는 팬의 댓글에 ‘더 널리 퍼뜨려줘’라고 답했다. 헤이즈는 소문난 ‘태연 덕후’다. SNS와 인터뷰 등을 통해 태연을 향한 팬심을 고백해오던 그는 지난해 9월 처음으로 태연을 직접 만나게 되자 “요정님”이라며 감격스러워했다. 지난 24일엔 태연의 ‘사계’를 듣고 있다면서 “다른 건 안 듣고파”라고 SNS에 적었다. 자신도 5일 전 신곡을 냈으면서…. 헤이즈에겐 경쟁심보단 팬심이 먼저였다.
태연은 가요계에 많은 ‘여덕’을 거느리고 있다. 가수 청하, 그룹 라붐 멤버 솔빈·소연, 배우 박혜수 등이 지난 23~24일 열린 태연의 콘서트에 다녀왔다면서 인증 사진을 남겼다. 가수 주니엘은 “23일 콘서트에 갈 수 있었는데 일정이 생겼다. 겨우 표 구했는데, 이것이 ‘덕계못’(진정한 팬은 운이 없다는 뜻)이구나”라며 안타까워했다. 가요계에만 여성 팬이 많은 게 아니다. 음원사이트 멜론에 따르면, ‘사계’ 발매 이후 24시간 동안 이 노래를 들은 102만 1019명 중 59%가 여성이었다.
무엇이 여심을 흔들었을까. 태연의 노래는 섬세한 가사로 여성들의 감정을 건드린다. 가령 ‘사계’는 이별 뒤의 슬픔이나 떠나간 이에 대한 원망을 쏟아내는 사랑 노래의 흔한 공식을 따르지 않는다. 대신 화자의 복잡다단한 내면을 그리며 이별을 통해 성장하는 여성을 보여준다. ‘내가 너를 사랑했을까’라고 끊임없이 자신에게 묻는 과정에서, ‘너’를 보내겠다는 결심은 포기나 단념이 아닌 극복과 성장이 된다. 덕분에 이별의 수용은 “우리 다시 반짝”일 수 있는 계기로 의미를 갖는다.
태연은 발라드, 재즈, 어반 팝 등을 오가며 쌓은 역량을 ‘사계’ 안에 자연스럽게 풀어놓는다. 고음 한 번 내지르지 않고도 노래의 ‘맛’을 살린다. 물기 어린 목소리로 “온 세상이던 널 보낼래”라고 하다가, 금세 시니컬하게 변해 “정말 너를 사랑했을까”라고 묻는 도입부는 얼마나 짜릿한가. 정민재 대중문화평론가는 “‘사계’는 노래 자체의 매력도 뛰어난데, 태연의 해석이 돋보인다”고 평했다. “악기 사용도 다채롭고 기승전결이 뚜렷한 드라마틱한 곡”이라면서 “태연은 한층 여유롭고 노련해진 가창으로 곡이 가진 멋을 완벽히 살렸다”고 봤다.
귀여운 외모와 털털한 성격 때문에 ‘탱구’라는 애칭으로 불리던 태연은 이제 ‘킹(KING) 태연’으로 통한다. 안정적인 가창력을 바탕으로 이지 리스닝 계열부터 네오 소울, 모던 록까지 폭 넓은 장르를 아우른다. 무대 위에선 “너는 내가 담배를 물게 만들어(You got me smoking cigarettes)”라며 담뱃재를 터는 동작을 터는 시늉을 하고, 줄에 매달린 채 춤을 추며 관객을 매혹하기도 한다. 노래마다 다양한 색깔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자신의 색깔을 굳힌다. 정민재 평론가는 “태연의 장점은 편안한 톤과 농밀한 감정 표현”이라며 “탄탄한 기본기와 누구나 거부감 없이 들을 만한 음색을 바탕으로 곡의 감정을 잘 표현해낸다. 너른 음역대 또한 태연의 강점”이라고 봤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