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방화·살인사건의 피의자 안인득(42)이 범행 전 조현병 치료 및 관리없이 방치된 것으로 드러난 가운데 부실한 정신질환자 관리 시스템이 도마 위에 올랐다.
올해 초 임세원 교수 피살사건에 이어 또 다시 정신질환자에 의한 심각한 범죄가 발생하면서 지역사회의 불안이 가중된 것이다.
22일 의료계에서는 ‘허술한 정신질환자 관리체계’가 이번 사건의 근본 원인이라며 법과 제도가 개선되지 않는 한 유사한 범죄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무엇보다 이번 사건에서는 범행을 막을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다. 사건 발생 12일 전 피의자의 가족은 안인득을 정신의료기관에 보호입원을 시도했지만 환자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정신건강복지법에 가로막혀 무산됐다.
또 피의자는 2010년 공주치료보호감호소에서 정신분열증으로 보호관찰을 받은 전력이 있을 뿐만 아니라 가족과 주변 사람을 위협하는 등 문제행동을 보여 아파트 주민들이 올해만 5번이나 경찰에 신고했음에도 제대로 된 치료-관리 연계가 이뤄지지 않았다.
이와 관련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는 ▲폭력적인 중증 정신질환자가 치료를 받고 있지 않아도 어느 곳에서도 알 수 없는 사회 구조 ▲중증 정신질환자의 이상 폭력 행동을 발견하더라도 경찰·정신건강복지센터·의료기관 등 여러 조직들의 연계가 어려운 점 ▲중증 정신질환자의 보호·관리가 과도하게 그 가족들에게 맡겨진 점 ▲경찰·소방서·주민자치센터의 정신건강과 정신건강복지법에 대한 인식 부족 등을 관리 부실의 결과로 지목했다.
의료계는 임세원 교수 피살사건을 계기로 마련한 ‘임세원법’의 조속한 통과를 우선 해결과제로 제시했다. 권준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장은 이날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故 임세원 교수 사건 이후 수많은 ‘임세원법’이 발의됐지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사법입원제와 외래치료명령제를 강화한 윤일규 의원의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안 등 핵심 법안이 법안소위에서 통과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윤일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는 사법입원제 도입 등 정신의료계가 건의한 정신질환자 관리 시스템 개선책이 담겼다.
현행 정신건강복지법의 경우 환자 본인의 동의가 없으면 정신의료기관 강제 입원이 어렵다. 환자의 인권 보호를 강화한 것이다. 그런데 치료가 필요하지만 병을 인지하지 못하는 정신질환자의 경우 법에 가로막혀 치료연계가 어렵다는 문제가 있었다.
정신의료계가 꺼내든 사법입원제는 이를 보완해 의사가 순수하게 의학적 판단만으로 정신질환자의 입원 여부를 결정하면 사법기관이 환자의 상태, 가정환경 등을 고려해 입원 적절성을 평가하는 제도다.
권 이사장은 "현행 강제입원 절차는 지나치게 까다롭고 위기 상황에서 적절히 작동하기 어렵다. 사법입원을 통해 국가가 강제입원을 책임져야 한다”며 “2016년 강남역 사건, 지난해 경북 경관 사망 사건, 고(故) 임세원 교수 사건에 이어 최근엔 또 다시 지역사회에 방치된 정신질환 관련사건이 발생했다. 사건의 책임은 중증정신질환자 관리체계를 갖추지 못한 우리 사회에 있다”고 강조했다.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