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건너 불구경이 이런 걸까요. 지난 25일부터 29일까지 장장 5일에 걸친 육탄전이 국회를 휩쓸고 지나갔습니다. 한바탕 태풍이 지나간 자리에는 의미 없는 고소·고발전과 정치혐오감이 남았습니다.
여야 4당은 30일 자유한국당(한국당) 반대를 뚫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안 및 공직선거법 개정안 등을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했습니다.
의원들은 정치적 이익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점을 몸소 증명해 보였습니다. 고성과 막말, 거친 몸싸움이 재현됐습니다.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은 자신의 의원실에 6시간 동안 감금돼 창문 틈으로 인터뷰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의원들은 의안과 내부를 점거하고 컴퓨터 사용을 막는가 하면 팩스를 부쉈습니다. 이는 고스란히 외신을 통해 보도됐습니다. 나라 망신입니다.
의원들이 비판을 감수하고 극한 대치를 이어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내년 4.15 총선을 앞두고 지지층을 끌어모으기 위해 무리수를 두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실’보다 ‘득’이 크다는 계산 이겠죠. 한국당은 그동안 선을 긋던 태극기 부대와의 스킨십을 늘리고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민주당)도 일관되게 ‘강대강’ 대응 중입니다. 실제 패스트트랙 정국에서 각 당의 정당 지지율은 소폭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사생결단 각오로 임하는 국회의원의 열정적 모습에 국민들은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불과 얼마 전 까지만 해도 국회는 개점휴업 상태의 ‘식물 국회’였기 때문입니다. 국회는 앞서 지난 1월과 2월 내내 본회의 한 번 제대로 열지 못했습니다. 김태우 전 청와대 특별감찰반 수사관,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 폭로 건과 무소속 손혜원 의원의 목포 투기 의혹 등을 둘러싸고 여야 갈등이 지속됐기 때문입니다. 지난달에도 국회는 공전을 거듭하다 비쟁점 법안을 겨우 통과시켰을 뿐입니다.
패스트트랙 통과 여파는 오래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일단 무더기 법적 공방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민주당은 물리력을 행사한 한국당 의원과 보좌진, 당직자 29명을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습니다. ‘무관용 원칙’까지 거론했습니다. 정의당은 40여명에 달하는 한국당 의원과 보좌직원들을 고발했습니다. 한국당은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를 포함 17명을 공동상해 혐의로 지난 28일 맞고발 했죠.
여야 갈등으로 통과되지 못한 법안들은 이미 쌓일 대로 쌓인 상태입니다.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최저임금 결정구조 개편, 소방공무원 국가직 전환을 위한 소방기본법·소방공무원법 개정안, 유치원 3법 등 민생현안들은 당분간 통과가 요원합니다. 포항 지진과 강원도 산불 대책이 담긴 추가경정예산안도 언제 국회에서 처리될지 기약이 어렵게 됐습니다. 한국당은 패스트트랙 통과 이후 국회 일정 전면 보이콧을 포함, 천막 농성 같은 장외투쟁을 검토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무엇보다 이번 사태는 우리 사회에 ‘국회의 역할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정당을 해산시켜 달라는 청원이 등장했습니다. 한국당 해산 청원은 순식간에 100만명을 돌파했죠. 대의 기관에 대한 우리 사회의 불신이 얼마나 높은지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국민에게 법안 발의·통과라는 본분은 다하지 않고 잇속만 챙기는 국회의원은 필요 없습니다. 일을 안해도 월급을 ‘따박따박’ 받아가는 특혜를 누리고 그 월급이 혈세에서 나온다는 점까지 상기하면 분통 터트리지 않을 국민이 얼마나 될까요.
국회는 삼권분립, 대의민주주의 근간을 흔들어 스스로를 부정하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정치에 대한 국민의 환멸과 혐오를 부추긴 책임까지. 지금 지지율이 올랐다고 좋아할 때가 아닙니다. 국회는 과연 ‘정치가 실종됐다’는 비판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정당들은 먼저 자존심을 내팽겨친 꼴인 무더기 고소·고발을 취하하고 협상 테이블에 앉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