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성년의 봄을 지나 미래의 봄을 준비하는 전주국제영화제

[특별기고] 성년의 봄을 지나 미래의 봄을 준비하는 전주국제영화제

기사승인 2019-05-13 17:25:35
글·김양원 전주부시장
봄의 중턱인 매년 5월 셋째주 월요일이 되면 전국 수많은 캠퍼스가 들썩하곤 한다. 사회인으로서의 책무를 일깨워주며, 성인으로서의 자부심을 부여하기 위하여 지정된 다름 아닌 성년의 날 때문이다. 무한한 열정과 사랑을 지속하라는 의미의 장미꽃, 좋은 향기만큼 다른 이들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기를 바란다는 의미의 향수, 그리고 성년이 된 만큼 책임감 있는 사랑을 이루라는 의미에서 감미로운 키스를 선물한다.

봄의 전주에도 성년을 맞이하는 이가 있다. 바로 5월 11일 화려한 막을 내린 전주국제영화제이다. 
전주국제영화제는 2000년 대안, 독립, 디지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걷기 시작했다. 당시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의 변화는 곧 혁명이었고, 그러한 디지털 혁명 아래 ‘독립‧대안영화’라는 주제를 접목시켜 부산, 부천에 이어 국내에서는 세번째로 국제영화제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정치권력, 대규모 자본, 사회적 통념으로부터의 독립을 외치며, ‘영화 표현의 해방구’로서 우뚝 서기까지 전주국제영화제의 여정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상영되는 영화들의 면면이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그리고 사회적으로 민감한 주제들을 다루는 영화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주국제영화제의 초심은 늘 한결 같았다. 다양한 시선에서 타인을 바라볼 수 있는 영화들과 삶의 본질과 인간다움에 대한 화두를 던지는 작품들에 대한 믿음으로 국내에서는 독자적인 전주국제영화제만의 영역을 만들어 낸 것이다. 주제나 소재 면에서 가다듬어지지 않은, 비록 민감한 주제의 영화라 할지라도 영화 예술의 가치와 영화 표현의 자유를 위해서라면 과감하고 용기 있게 그 과정들을 이겨냈다. 심지어 박근혜 정권에서조차도 국정원 간첩 조작사건을 다룬 <자백>(2016), 언론 탄압을 파헤친 <7년-그들이 없는 언론>(2016)을 상영하였고, 2017년에는 전주시네마프로젝트 N이라는 이름으로 영화<노무현입니다.>에 과감하게 투자함으로써 ‘독립, 그 이상의 독립’이라는 정체성을 공고히 하였다. 물론 당시 전주시장은 문화계 블랙리스트라는 훈장을 달았지만 말이다.

이러한 전주국제영화제의 정체성과 진심은 그 어떤 난관에서도 굴하지 않고 빛을 발하였다. 그래서였을까? 영화진흥위원회에서 매년 진행되는 국제영화제 평가에 2년(‘16, ’17년) 연속 1위를 하는가 하면, 2017년에는 미국 유력 영화전문잡지 ‘무비메이커’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멋진 25선 영화제에 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이름 올리기도 하였다. 부산과 부천에 이은 후발주자임에도 불구하고, 전주만이 가지는 정체성은 그렇게 국내를 넘어 세계에서도 인정받게 되었다.

지난 20년, 전주의 4월과 5월은 늘 영화였다. 많은 관객과 감독, 그리고 많은 배우들과 수없이 많은 영화들이 전주의 봄을 스쳐갔다. 그리고 올해 5월 2일 전주국제영화제는 총 53개국, 275편의 영화들로 국내‧외 영화를 사랑하는 방문객들 앞에서 성년의 해를 맞이했다. 이번 영화제는 그 동안의 기록들을 모두 갈아치웠다. 85,950명의 유료 관객수를 동원하며 지난해 80,244명보다 6천여명 이상의 관객이 영화를 관람하였고, 일반 상영에서도 총 559회차 중 300회차의 매진을 이뤄내며 작년의 284회차 매진 기록을 갈아 치웠다. 이는 영화제 섹션 중 늘 강세를 보였던 한국경쟁작(좌석점유율 89.5%), 한국단편경쟁(좌석점유율 100%)에 기인한 이유이기도 하였지만, 20주년을 맞아 그동안 전주국제영화제와 비전을 공유해왔던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뉴트로 전주’(좌석점유율 80.6%), 영화의 기획단계에서부터 제작‧배급까지 지원하는 전주시네마프로젝트(좌석 점유율 93.9%)작품의 약진 덕분이었다. 

또한 올해부터 전주국제영화제는 영화에 쉼표를 더해 ‘영화, 표현의 해방구’라는 슬로건으로 매체의 확장을 시도했다. 뉴미디어 시대를 맞아 영화라는 매체에 매몰되어서는 시류에 뒤쳐진다는 판단에서였다. 20회 영화제는 전시프로그램을 실험적 예술 플랫폼 팔복예술공장으로 확장하여 진행하였다. 익스팬디드 플러스(유토피안 판톰)라는 이름으로 비(非)-극장 설치 프로그램을 시도, 전통적인 영화 형식과 상영 방식을 탈피하여 영화를 중심으로 한 예술 장르간 통섭을 이루어 냈다. 또한 100Flims, 100Posters를 통해 전주국제영화제의 상영작 100편이 100의 디자이너 손에서 다시 태어났다. 영화제 기간 동안 자체 추산 1만여명 이상의 관람객이 팔복예술공장에 찾아줌으로써, 전주국제영화제의 그와 같은 도전을 응원했다.

당분간은 깨지기 힘들 만큼 질적, 양적 성장을 이뤄낸 제20회 전주국제영화제, 많은 부분에서 성장을 이루어 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여전히 부족한 점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구도심에 영화제의 공간이 집적되어 있다는 점이 장점이면서도, 축제의 주요 행사를 치러내기 위한 공간이 없어 매번 영화제 이전 전주돔을 가설로 설치하는 수고로움은 분명 개선되어야 할 사항이다. 소음, 부족한 주차시설, 안전사고로부터 취약한 주 행사장의 한계는 새로운 20년을 준비해야 할 영화제에게 풀어야할 숙제인 것이다. 또한 행사의 특성상 영화제를 앞둔 몇 달 전부터 스태프가 모집되고, 그에 따라 부서 간 업무의 협조가 견고하게 이루어지지 못하는 점도 극복해야 할 한계점으로 지적된다. 상근 인력에 대한 리더십 교육 등 단기 스태프들을 통솔할 수 있는 역량을 강화할 필요성이 있다. 그리고 전주국제영화제의 지난 20년을 기록, 수집하는 아카이빙이 부족하다는 점도 지적된다. 이제 전주국제영화제는 성년이 되었고, 지금부터라도 앞으로의 20년을 더욱 풍성하게 하기 위하여 과거의 20년, 그 발자취를 의미 있게 남길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제 전주국제영화제는 당당한 성인이 되었다. 누구든 보고 싶은 영화를 보고, 누구든 원하는 영화를 걸 수 있는 그런 영화제, 그 어떤 외압에도 영화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할 수 있는 영화제. 아쉬운 성년의 해를 보내며, 지금부터 더욱 새로워지는 영화제를 준비해야 할 것이다.

이런 포부와 염원을 담아 돌아오는 5월 20일 성년의 날을 맞이하여, 무한한 열정과 사랑으로 전주의 봄을 영화로 물들이라는 의미의 장미꽃을, 좋은 향기만큼 영화제를 찾는 방문객들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기를 바란다는 의미에서 향수를, 그리고 성년이 된 만큼 책임감 있는 믿음으로 국내 유일의 독립‧대안 영화의 정체성을 지켜내라는 의미에서 감미로운 키스를 전주국제영화제에게 선물하고 싶다. 전주시 부시장으로서 그러한 전주국제영화제를 응원한다.
isso2002@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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