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쿡리뷰] ‘기생충’ 장르 영화의 선을 넘다

[쿡리뷰] ‘기생충’ 장르 영화의 선을 넘다

‘기생충’ 장르 영화의 선을 넘다

기사승인 2019-05-29 00:00:00


모두 봉준호 감독의 계획이었던 걸까. 두 편의 할리우드 영화를 찍고 10년 만에 국내로 돌아온 봉준호 감독이 아주 이상한 영화를 내놨다. 경쾌하면서 묵직하고, 단순하면서 난해하다. B-무비로 취급받던 장르 영화가 어떻게 예술 영화의 선을 넘어섰는지 보여주는 작품이다.

지금 이 순간, 한국 어딘가에 있을 법한 두 가족의 만남에 관한 이야기이다. 창문으로 거리가 훤히 내다보이는 반지하 방에 사는 기택(송강호)의 가족은 모두 백수다. 일거리가 생기면 아무렇지 않게 온 가족이 동원될 정도로 모두가 가난에 익숙하다. 돈을 벌 수 있다면 거짓말과 위조, 연기를 병행하는 데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다. 반대로 글로벌 IT기업 CEO인 박사장(이선균)의 가족은 풍족하고 여유로운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주변 사람들 앞에서도 품위를 잃지 않고 친절하려고 노력하는 이들이다. 사람을 잘 믿고 자잘한 것에 돈을 아끼지 않지만, 그들이 그어놓은 기준점을 넘어가면 차갑게 끊어내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기생충’은 장르적 재미로 전진하는 영화다. 영화가 중반부로 넘어가는 순간까지 꽤 긴 시간 동안 큰 사건이 터지지 않는 독특한 영화다. 주체하지 못할 커다란 욕망을 갖고 있는 인물도, 문제를 일으키는 악인도 없다. 대신 장르적 관습을 동력삼아 영화에 몰입하게 만든다. 마치 익숙한 전기나 석유 대신 친환경 태양열로 발전기를 돌리는 느낌이다. 블랙코미디, 범죄, 공포, 재난 등 기존 장르 영화에서 많이 봤던 익숙한 장면들이 막이 올라가는 순간까지 물 흐르듯 이어진다. 장르가 변주되는 과정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이렇게 해야 이 이야기가 가장 잘 전달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한다.

장르적 요소가 영화의 표면에서 이야기를 끌고 간다면, 그 아래엔 거대한 주제가 단단하게 자리 잡고 있다. 영화는 대물림되는 가난의 굴레와 모래성 같은 부(富)의 약점을 대비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사실상 계층이동이 불가능해진 현재에서 미래를 조망한다. 기성세대보다는 앞으로 살아갈 젊은 세대에 관한 이야기에 가깝다. 동시에 인간다운 게 무엇인지를 묻는다. 한 번 들으면 잊지 못할 강렬한 제목은 감독이 관객에게 묻는 질문이기도 하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이 사람처럼 보이나요, 기생충처럼 보이나요. 무엇을 선택하는지에 따라 영화의 결이 달라진다.

사실상 영화를 완성시키는 건 배우들의 연기다. 캐스팅된 이유가 궁금했던 배우들이 적재적소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보는 재미가 있다. 특히 배우 최우식과 박소담, 이정은의 연기를 주목할 만하다. 최우식은 원톱 주인공으로서의 가능성을, 박소담은 어떤 역할이든 훌륭히 소화해낸다는 사실을, 이정은은 무시무시한 연기력 그 자체를 여실히 보여준다. 기존 연기 톤을 그대로 가져온 이선균과 조여정의 존재감도 눈에 띈다.

영화를 볼 때 신경 쓰면 좋을 포인트도 많다. 칸 영화제 당시 번역만으론 외국인들이 이해하지 못했을 한국적인 코드들이 여러 번 등장한다. 오랜만에 한국어 영화로 돌아온 감독의 자축 세리모니처럼 느껴진다. 또 감독의 전작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들도 많다. 스스로에게 보내는 셀프 오마주인지, 그냥 넣었을 뿐인데 그렇게 보이는 건지는 관객의 판단에 달려 있다. 영화가 끝난 후에도 자리를 뜨지 않는 것이 좋다. 쿠키 영상은 없지만 엔딩 크레딧과 함께 감독이 가사를 쓰고 최우식이 부른 노래가 나온다. 영화의 여운을 음미하며 주제를 되짚어보기 좋은 순간이다. 오는 30일 개봉. 15세 관람가.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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