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 전 장기기증 거부 안 했다면 ‘기증 동의’로 간주…‘옵트아웃제’ 문제는

사망 전 장기기증 거부 안 했다면 ‘기증 동의’로 간주…‘옵트아웃제’ 문제는

장기이식 문화 개선 및 사회적 공론화…“거부 의사표시 등록체계 갖춰야”

기사승인 2019-07-04 00:00:18

장기기증자수 확대 방안의 일환으로 유럽국가에서 시행하고 있는 ‘옵트아웃제(Opt-Out)’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옵트아웃제는 장기기증에 대해 명시적인 거부의사를 밝히지 않았을 시 장기기증 대한 잠정적으로 동의한 것으로 간주하고 사망 후 장기를 적출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스페인과 프랑스, 오스트리아 등 대부분의 유럽국가에서는 옵트아웃제를 시행하고 있지만 자기결정권 침해 가능성과 장기기증에 대한 부정적 인식으로 인해 국내에서는 제도 도입 논의 자체가 어려운 실정이다.

이에 이동현 연세대 의료법윤리학과 교수는 제도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를 우선 진행하고, ‘거부 대상자’를 명확하게 규정하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3일 국회의원회관 제8간담회실에서 열린 ‘Opt-out(옵트아웃) 제도 가능한가?-장기‧조직기증등록의 활성화 방안’ 정책토론회에서 이같이 전했다.  

현재 우리나라는 장기이식과 관련해 ‘옵트인(Opt-In)’ 제도를 시행하고 있지만, 장기기증자수 확대를 위한 다양한 정책적 논의를 시도하는 상황에서 ‘옵트아웃제’ 도입에 대한 찬반의견이 나오고 있다. 옵트인 제도는 사망하지 전 별도로 장기기증에 대해 동의의사를 밝힌 사람만 기증 동의자로 보고 그 외의 사람은 장기기증을 동의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하는 제도다.

이 교수는 “독일에서도 장기기증자수 증가를 위해 정부 차원의 다양한 정책적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독일의 보건부 장관이 공식석상에서 옵트아웃제 도입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논란이 됐다”며 “장관의 발언에 독일 윤리위원회 의장이 ‘장기기증이 의무적인 장기기부로 불릴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결국 옵트아웃제 도입의 출발은 긍정적 방향으로 의견이 모일 경우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옵트인 제도를 시행하고 있고, ‘죽은 자’에 대한 예의와 전통적 가치관으로 인해 옵트아웃제의 논의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다. 결국 제도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만일 사회적 공론화 과정으로 법률이 개정된다면, 다른 국가의 운영사항에 대한 이론적 검토가 선행돼야 한다”며 “제외 대상은 누구로 할 것이고, 의사표시에 대한 등록체계는 어떤 형태로 마련할 것인가에 대해 우선적으로 논의가 진행돼야 한다. 만일 등록체계 내에서 의사표시를 진행하지 못한 경우, 그에 따른 추정적 의사에 대해 전적으로 기증 동의의사로 간주할 것인지, 일부 예외규정 및 가족을 통한 동의절차를 만들 것인지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프랑스와 오스트리아는 별도의 장기기증 거부를 위한 등록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프랑스는 13세 이상의 아동을 포함한 모든 국민이 등록사이트를 통해 장기기증에 대한 거부의사를 반드시 등록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다. 오스트리아는 의사 진술서에 장기기증 거부 의사를 표시했거나, 사망 전 법률적 대리인을 통해 명시적으로 거부했거나, 별도 등록기관에서 서류를 작성했을 때 거부 의사를 존중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최근 법률을 개정해 2020년부터 옵트아웃제를 시행하는 영국도 국가보건의료서비스(NHS) 웹사이트를 통해 장기기증을 거부할 경우 의사표시를 등록하도록 하고 있다. 또 영국의 경우 제외 대상을 명시하고 있다. ▲18세 미만의 미성년자 ▲현재 제정된 법률의 내용에 대해 필요한 조치를 수행할 수 있는 정신적 판단이 어려운 사람 ▲여행 등 별도 사유로 영국에 체류하고 있거나 비자발적인 사유로 영국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 ▲영국에서 거주한지 12개월 이내에 사망한 사람이 그 대상이다.

반면, 오래 전부터 이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스페인은 별도의 장기기증 거부 의사표시를 위한 등록체계가 없다. 이에 ‘옵트아웃제’를 시행하고 있으면서 사망자 가족의 별도 동의를 함께 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교수는 “이러한 문제 때문에 스페인에서는 가족에 의한 장기기증 거부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며 “이외 국가에서는 본인의 의사를 존중해 장기기증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가족의 결정이 우선되는 장기기증 문화가 변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김형숙 대한장기이식코디네이터협회장은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배우자나 자녀 등 가족의 허락을 맡아야 장기이식이 가능하다. 실제로 많은 노인이 장기기증을 희망한다는 의향을 자필로 작성하고 있다. 기증 의지가 있다고 가족에게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하고 있으나,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이다”라며 “기증에 대한 의지가 있다면 분명히 밝히고, 가족들도 그것을 존중하는 문화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정부는 장기기증 활성화를 위한 종합적인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전했다. 이영우 보건복지부 생명윤리정책과 사무관은 “장기기증자수가 증가하다가 최근 2년간 감소 추세에 있다.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그 원인을 종합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이에 정부는 기증 활성화를 위한 종합계획을 마련하려고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사무관은 “아쉬운 점은 복지부나 다른 정부의 정책 결정 과정이 사건, 사고 위주로 처리되고 있다는 것이다. 사건에 따른 정부의 대응이 주목을 받기 때문”이라며 “장기기증에 대해서도 인식이 확대될 수 있도록 여건 등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유수인 기자 suin92710@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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