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내 ‘태움’, 약사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병원 내 ‘태움’, 약사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기사승인 2019-07-16 00:00:00

오는 16일부터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실시된다. 하지만 보건의료계, 특히 의료기관에서의 문제가 해결될지는 미지수다. 지금까지 간호사들 사이에서 교육이란 이름으로 내려온 악습 ‘태움’은 대표적인 직장 내 괴롭힘이자 인권침해요, 위계에 의한 갑질로 여겨졌다. 

하지만 의료기관에서 태움과 같은 부조리는 비단 간호사들만의 문제는 아니었던 듯하다. 환자나 보호자, 의료기관 내 타 직역 종사자들과의 접촉이 적고, 높은 전문성과 좁은 동료사회, 많은 업무량과 부족한 인력에 어느 직역보다 폐쇄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약사들도 문제다.

지난 5월 말, 서울의 유명 대학병원 한 복도에 ‘갑질을 고발한다’는 제목의 대자보와 성명이 붙었다. 6월 말에는 ‘시대착오적 약무궁(宮) 마마님! 답정너 약무국장의 횡포’라는 또 다른 대자보가 내걸렸다. 여기에는 병원약사들이 소속된 약무국 내 ‘갑질’이 고스란히 적혀있었다.

당장 신입 약사는 약무국에 배치되면 순간부터 의무적으로 약무국 내 사조직이자 친목단체인 ‘1% 클럽’에 가입해야하고, 첫 월급의 10%를 가입비 명목으로 납부해야한다. 이후 매달 월급의 1%를 회비로 내며 3년 내에는 퇴사 시에도 납부한 회비 등을 돌려주지 않는다.

자금의 용처는 호텔에서의 부서회식이나 뮤지컬 관람 등 문화생활이지만, 어디에 얼마나 어떻게 사용되는지는 소수의 관리자만이 알고 있고, 그들 뜻에 따라 사실상의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구조다.

1%는 약과다. 약무국 내 회무결정구조도 1%와 다르지 않다. 성명서 등에 ‘약무궁 마마님’으로 불리는 S약무국장은 폐쇄적인 궁궐 내 최고 권력자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술자리에서 일찍 일어나면 다시 불러내고, 업무능력이나 기여도와 관계없이 인사고과를 부서원 길들이기나 줄 세우기에 사용했다. 명절선물을 강요하는가 하면, 시도 때도 없이 단체문자로 업무를 지시하고, 관리자 개인 업무나 책임은 부하들에게 떠넘겼다.

초과근로를 인정하지 않거나 마치 혜택을 주듯 특근수당의 일부를 청구할 수 있도록 강제하고, 휴가의 사용은 S씨의 마음이 동할 때만 가능하다. 심지어 부서장이라는 이유로 약사들이 작성한 논문에 저자로 이름을 올리고, 유명 교수들을 지명해 논문을 돋보이게 만들었다.

부당함을 호소하는 직원에게는 “약사사회가 좁다. 그렇게 행동하면 다른 곳 가서 약사 할 수 있을 것 같냐”며 반론의 싹을 잘랐고, 본인이 답을 정해놓고도 민주적인 절차를 표방하며 원하는 회의결과가 나올 때까지 끊임없이 회의를 하게 만들었다. 

실제 병원노조가 진행한 설문조사결과에 따르면 설문에 참여한 약사 전원이 최근 이뤄진 인사이동이 부당한 불공정 인사였다고 답했다. 약무국 내 의사결정이나 관리자들의 업무처리의 공정성에 대해서도 약사들은 100% 의견이 반영되지 않고 공정하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부당함을 호소하는 목소리를 죽이고, 옳지 않은 일들에 대한 문제제기가 외부로 흘러나가지 않도록 개별면담이나 단체회의 등에서 억압과 회유로 입단속을 시키고, ‘관행’이라거나 ‘소수의견’이라는 식으로 포장해 병원 내부의 눈을 가려왔다.

어렵게 증언에 나선 공익제보자는 “빅5 라는 위명 뒤엔 병원약사들의 무덤이자 병원 내 퇴사율 1위라는 불명예가 자리하고 있다. 그럼에도 약무국장은 자신의 명예와 권력을 높이는 것에만 혈안이 돼 온갖 부조리를 자행한다”고 토로하며 일련의 의혹이 사실이라고 확인시켜줬다.

이와 관련 병원 노조 관계자는 약무국장의 행태가 “전형적인 직장 내 괴롭힘이자 갑질”이라며 “그동안 노조는 원칙 없고 감정적인 부당인사와 약무국 부조리에 대해 여러 차례 문제제기를 하고 해결에 힘썼지만, 약무국장은 앞뒤가 맞지 않는 자기합리화와 앵무새 같은 변명, 말 바꾸기, 책임 떠넘기기로 일관하며 문제를 감추고 눈가리기식 대처만을 해왔다”고 비난했다.

이어 “약무국장은 약사가 오를 수 있는 병원 내 최고의 위치이며 의료기관 내에서도 의약품의 구입결정과 비용을 쥐락펴락하는 숨은 권력자”라며 “그동안 약무국의 폐쇄성으로 알려지지 않은 문제들이 터져나오고 있다. 지금이라도 숨죽여온 약사들의 바람이 이뤄질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다”고 다짐의 말도 전했다.

상황이 이럼에도 병원은 약무국장과의 대면을 거절하며 1% 클럽 등 병원 내 사조직의 운영과 같은 부조리가 없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뜻을 전했을 뿐이다. 공식적인 입장이나 향후 약무국 내 부조리나 갑질 방지를 위한 구체적인 대책이나 대안은 내놓지 못했다. 지금까지 제기된 의혹에 대한 내부감사 등에 대한 계획도 세우고 있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한편, A병원 약무국 내 분위기와 약무국장의 횡포는 비단 A병원에 국한된 문제는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한 약업계 관계자는 “약사사회가 여느 직능에 비해 좁고 폐쇄적이다. 더구나 병원 약무국은 조직의 특수성과 업무의 전문성으로 인해 인원은 적고 업무강도는 높고 더욱 폐쇄적이며 외부의 견제로부터 자유롭다”며 병원 내 약국들의 구조개선을 주장하기도 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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