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쭈쭈 요즘 전공의’…병원 분위기 달라졌다

‘우쭈쭈 요즘 전공의’…병원 분위기 달라졌다

부모의 치맛바람, 세대 변화, 전공의법 시행 등 영향

기사승인 2019-08-01 04:44:00

병원도 전공의 근무환경 개선 위한 노력 진행
전공의들 “폭언‧폭행 문제 여전, ‘상전’이라고 비아냥거려”

“요즘은 전공의가 상전(上典)이죠”

어느 병원을 가나 전공의들의 근무환경을 묻는 질문에 대한 답은 일관된다. 도제식 교육의 대표격인 전공의들의 근무환경이 확 바뀌었다는 뜻이다. 오히려 교수진들이 전공의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눈에 띄게 변화된 부분은 ‘칼’ 같은 근무시간이다. 전공의특별법에 따라 주당 근무시간 80시간, 연속근무 36시간을 꼬박꼬박 지킨다는 것인데, 그 영향으로 병원에 남아 있는 인력이 줄어들게 되자 과거 전공의가 했던 일을 교수진이 대체하는 경우가 적지 않게 발생한다.

A 병원 관계자는 “일례로 전공의의 보조 없이 교수가 수술을 집도한 적이 있다. 수술실에 들어온 전공의에게 ‘이건 내가 할 수 있으니 잠깐만 나갔다가 잠시 후에 들어오라’고 한 것”이라며 “정해진 근무시간을 맞춰주기 위해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교수들이 전공의를 안 부른다”고 밝혔다.

B 병원 관계자는 “요새 전공의는 정해진 근무시간을 칼같이 지킨다. 전공의들끼리 하루에 볼 환자 수를 정해서 교수에게 알리기도 한다”며 “예전에는 혼자 40~50명을 봤다면, 지금은 상한선으로 20명을 정하고 그 이상의 환자를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소통 창구가 넓어지다 보니 SNS 등을 통해 병원 수련환경을 비교하기도 한다. 전공의 처우와 관련해 신문에 나는 일들은 이례적이고, 대부분 전공의법을 지키고 있다”며 “과거엔 전공의가 가장 늦게까지 일하는 사람들이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전공의를 가르치는 사람이나 전문의로 있는 사람이 누리지 못한 현실이라 그것에 대한 반발로 ‘전공의가 상전’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C 병원 관계자는 “법이 있으니 교수진들도 초과근무 등 불합리한 일을 시키지 않는다. 또 그렇게 맞추지 않으면 가뜩이나 부족한 전공의들이 병원을 나가기 때문에 권리를 요구하면 들어주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요즘 애들이 다 그런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밀레니얼 세대’로 불리는 1980년대~2000년대 초 출생자들의 특징이 전공의들에게도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밀레니얼 세대는 자기표현 욕구가 강하다. 불합리한 조직문화엔 적극적으로 이의를 제기하고,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퇴사를 결심한다. 일하는 것만큼 자신의 여가생활도 중시한다. 세대가 이렇다보니  전공의법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이라는 시선도 적지 않다.

B 병원 관계자는 “요즘에는 휴가도 본인이 원하는 기간에 갈 수 있다. 과거에는 여름, 겨울 등 정해진 기간에만 갈 수 있었다. 물론 동시에 2명 이상 빠지는 경우는 아직은 없다”며 “시간외근무수당도 전공의는 법에 정한 대로 청구를 하고 있다. 반면 병원에서 근무하는 전문의는 신청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밝혔다.

D 병원 관계자는 “요즘 전공의 평균 나이가 34~45살이다. 의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하고 수련을 받는 전공의도 있고, 그 과정에서 결혼을 하거나 사회생활을 하다 온 경우도 있어 수련과정에 대한 인식 자체가 달라진 것 같다”며 “예전에는 수련과정을 교육과정이라고 봤다면 요즘은 직장의 개념으로 보는 것 같다. 돈을 받고 일을 하는 과정으로 인식하다 보니 요구사항도 늘어난 것”이라고 말했다.

전공의들이 자기표현을 잘 할 수 있게 된 배경으로 ‘부모의 치맛바람’도 거론된다. 부모가 같은 의사인 경우가 많아 부당한 대우를 하는 경우가 줄고, 최근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스카이캐슬’처럼 자녀교육에 대한 부모의 관여가 병원 생활에도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A 병원 관계자는 “근무 중 무단이탈을 한 전공의의 아버지가 의사여서 징계 최소화를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한 적이 있었다. 전형 때 필요한 서류 제출을 어머니들이 하는 경우도 많고, 퇴직 시에도 어머니가 사직서를 제출해 면담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순환근무를 시키지 말아 달라며 병원에 찾아오시는 부모들도 있고, 우리 애 술 못 마신다고 말하기 위해 병원을 찾는 경우도 봤다”고 전했다.

B 병원 관계자도 “면접을 보러올 때 어머니와 함께 와서 경쟁률을 물어보는 경우가 있다. 어머니가 수련과를 정해준다는 얘기도 들었다”고 말했다.

이유야 어찌 됐든 전공의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병원 내부에서도 이들의 근무환경을 지원하기 위한 프로그램 등을 진행하고 있다. 전공의-교수 멘토제, 전공의 간담회, 정기 워크숍, 수련기관 만족도 조사, 급여 인상, 인력 충원 등 다양한 방법으로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는 것이 병원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그러나 열악한 근무환경에 노출된 전공의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지난해 2월 전공의 생활을 마친 A씨는 “여건이 되는 곳은 주 80시간의 근무시간을 지켜주려고 한다. 전공의법과 별개로 ‘미투 운동’ 등을 통한 인식 변화가 있었고, 폭언과 폭행도 조심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며 “한편 아직도 수술과, 지방 병원 등은 인력 부족을 이유로 근무시간을 지키지 않는다. ‘상전’이라고 비아냥거리면서 의도적으로 업무에서 불이익을 주기도 한다. 폭언이나 폭행 등의 문제도 남아있다”고 지적했다.

유수인 기자 suin92710@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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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in92710@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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