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덥고 습하다”...여의도 증권맨들 ‘칼정장 싫다’

“아 덥고 습하다”...여의도 증권맨들 ‘칼정장 싫다’

칼정장으로 지어진 한증막, 그 이름은 ‘여의도 증권가’

기사승인 2019-08-02 06:05:00

바야흐로 ‘쿨비즈’의 계절이다. 쿨비즈란 ‘여름을 시원하게 보내는 데 도움이 되는 비즈니스’란 뜻이다. 넥타이를 매지 않고, 옷을 가볍게 입는 등 근무복장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 쿨비즈에 속한다. 근로자 개개인의 편의를 위함과 동시에 환경보호 목적도 있다. 복장 간소화로 과도한 냉방기기 사용을 줄여보자는 것이다. 환경부는 지난 2009년 간편한 옷차림으로 에너지 사용과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자는 ‘쿨맵시’ 캠페인을 펼치기도 했다. 

딱딱한 정장을 고수해오던 회사들이 하나 둘씩 복장 규정을 완화하면서 직장인들의 복장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그러나 쿨비즈가 아직도 먼 나라의 이야기인 곳이 있다. 바로 증권사다. 대다수의 증권사들이 소위 ‘칼정장(다 갖춰 입은 정장)’을 고집하며 여의도의 온도를 올리고 있다. 어찌 보면 근로자 불편 초래에 더해, 환경보호 방침에 온몸으로 저항하고 있는 셈이다. 장마와 무더위가 겹친 지난달 말, 증권가를 찾아 증권맨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품위가 먼저인가 더위가 먼저인가, 인내를 시험하는 95%의 습도와 극한의 더위= “더워요, 습하고 괴롭죠. 근데 무조건 정장 입으라니 억지로 입는 거죠” 증권사가 모여 있는 서울 여의도 거리에서 만난 한국투자증권의 한 직원은 이같이 토로하며 “출퇴근 때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가만히 있어도 더운 날씨에 긴팔 정장바지와 와이셔츠, 재킷까지 챙겨 입은 상태였다. 

이날 도로 위에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으로 확인한 날씨는 체감온도 34도, 습도 95%였다. 불쾌지수가 최고조에 달하는 날이었다. 간소한 반팔 차림으로 취재를 다니던 기자조차도 견디기 괴로운 날씨였다.

한국투자증권을 비롯해 미래에셋대우와 NH투자증권, 키움증권 등의 쿨비즈는 ‘노타이(넥타이를 매지 않는 복장)’ 수준에 그친다. 이들 회사가 칼정장을 강조하는 이유는 ‘품위’였다. 재킷을 벗고 다니거나, 반팔 형태의 정장 셔츠를 입는 것조차도 회사의 품위를 훼손하는 일이라는 의식이 있었다. 긴팔에 긴바지, 재킷까지 정장을 다 갖춰 입어야만 예의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들 회사에서는 비즈니스 캐주얼’ 조차도 품위 훼손에 속했다. 

NH투자증권의 한 직원은 “솔직히 힘들다. 회사 복장 규제가 너무 경직돼있다”며 “우리 회사는 정장을 다 갖춰 입어야 하는 것은 물론 셔츠 색까지 지적하는 수준”이라고 털어놨다. 흰색이 아닌 정장 셔츠를 입고 출근할 경우 눈총과 지적에 시달려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증권사들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베스트투자증권과 신영증권 등도 노타이 정장 정도만 허용하고 있었다. 대다수의 증권사에서 쿨비즈는 넥타이 하나 푸르게 해주는 수준으로, 극히 소극적으로 적용되고 있었다.

회사 분위기가 달라질 것이라는 기대도 없었다. 복장 규제가 변할 가능성이 없는지 묻자 키움증권에 근무하는 한 직원은 “한 100년 뒤쯤 다시 와서 물어보라”고 자조했다.

◆ ‘규정상의 캐주얼데이’, 상사 눈치 보기에 유명무실= 일부의 변화는 있었다. 현대차증권과 SK증권은 복장 완전 자율화를 시행했다. 회사 이미지를 실추하지 않는 선에서는 어떤 복장이든 허용하고 있다. 두 회사 모두 편하고 자유로운 업무환경을 조성해 업무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라는 설명이다. 또 복장 자율화를 통해 유연한 조직문화를 형성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취재 중 길에서 만난 현대차증권 소속의 한 애널리스트는 면바지에 줄무늬 셔츠를 입고 퇴근하고 있었다. 그는 “회사에서 적극 권장하니 거의 모든 직원이 눈치 볼 일 없이 편하게 입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퇴근시간 SK증권과 현대차증권에서는 반팔 티셔츠와 면바지 등 캐주얼 복장을 입은 직원들이 절대 다수였다. SK증권의 한 직원을 잡고 ‘편하게 입어도 정말 회사 내에서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느냐’고 질문을 던지자 “우리 회사에 그런 꼰대 문화는 없다”며 웃어넘겼다.

다만 두 회사처럼 복장 규정을 파격적으로 완화한 곳은 없었다. 하나금융투자와 신한금융투자, 한화투자증권, KB증권 등이 일주일 중 하루를 정해 캐주얼데이(복장을 편하게 입는 날)를 운영하고 있다. 메리츠종금증권도 비즈니스캐주얼을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해당 회사에 근무하는 직원들 대다수는 ‘규정상 허용’일 뿐이라고 말한다.

하나금융투자의 한 직원은 “회사가 금요일을 캐주얼데이로 지정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상사 눈치 보여서 못 입는 경우가 대다수다. 입으라고 한다고 다 입을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부서 내에서 캐주얼 복장을 입는 경우도 많지 않아 혼자만 튀어 보인다는 것이다. 이어 “사실 다른 회사들 일부가 복장 자율화를 하기 시작하니 형식적으로 하는 것 같다. 딱히 편히 입으라고 적극 권장하는 분위기는 아니다”라고 전했다. 신한금융투자 직원도 “일주일 중 딱 하루뿐인데, 평상시에 정장을 입는 게 규정이다 보니 금요일이라고 딱히 편한 옷을 입고 나오진 않는다”고 했다.

제대로 된 쿨비즈는 아직 먼 이야기였다. 직원 편의를 도모하는 제도가 도입돼도, 의식과 편견이 그대로여서다. 

한 증권사 신입사원은 “대다수의 증권사가 노타이를 허용하는데 우리 부서 상사는 그것조차 마음에 안 들어 한다”고 말했다. 그는 “완벽하게 갖춰 입은 정장만이 예의를 갖춘 차림이라고 생각하는 그 딱딱한 사고방식이 문제인 것 같다”고 지적했다. 

지영의 기자 ysyu1015@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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