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다인실 찾는 산모 없다'...현지실사에 뿔난 산부인과

'요즘 다인실 찾는 산모 없다'...현지실사에 뿔난 산부인과

기사승인 2019-11-02 03:00:00

"산부인과 다인실은 1년에  70~80%가량 공실입니다. 요즘 다인실은 대기장소로도 잘 안쓰입니다. " 

산부인과 의사들이 분만병원에 대한 갑작스런 현지실사에 불만을 표하고 나섰다. 저출산 추세로 일선 분만병원들이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현실과 동떨어진 제도를 기준으로 조사에 나서 '산부인과 죽이기'를 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1일 의료계에 따르면, 최근 보건복지부·건강보험심사평가원·국민건강보험공단은 전국 분만 산부인과를 대상으로 현지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현재 서울, 경기, 인천, 대전 지역 등 동시다발적 조사가 진행 중이다.

문제는 모든 의료기관 병상의 50% 이상을 다인실로 설치하도록 하는 현행 규정이 분만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지적이다. 일선 분만병원들은 '다인실 미비' 위반으로 수억원의 환수 폭탄을 맞을 위기에 처했다며 울상을 짓고 있다. 

산부인과 의료계는 오래 전부터 다인실 입원실 규정 축소를 요구해왔다. 산모들의 1인실 선호, 다인실 비선호 현상이 두드러졌기 때문이다. 앞서 2011년 대한산부인과학회가 전국 산부인과 입원 산모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산모 84.4%는 1인실을 선호하고, 6인시 이상의 다인실을 원하는 산모는 6.6%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학회는 "분만후 좌욕이나 산후출혈에 따른 처지와 모유수유 등 산모의 특성상 전용공간이 필요하고, 출산이 가정의 큰 이벤트가 됨에 따라 병실을 사적 공간으로 쓰고자 하는 욕구가 많아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의사회 등과 함께  다인실 기준병상 확보율 50%를 20%로 하향 조정해달라고 꾸준히 정부에 요청해왔다. 

분만 산모들은 출산 후 좌욕, 오로배출에 따른 산모패드 교체, 모유수유, 산후출혈에 따른 처치 등 민감한 처치가 필요한 경우나 가족들의 방문도 많아 개인공간을 원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실제 산부인과의 다인실 병실은 1인실로 이동하기 위한 대기장소로 전락한지 오래다. 출산율이 줄어들면서 대기장소로도 사용되지 않고 비어있는 경우가 늘었다. 최근 현지실사를 받은  경기도 시흥소재 산부인과병원의 A원장은 "다인실은 1년에  70~80%가량 공실로 있다. 불과 5~6년 전만해도  1인실로 가기위해 대기하는 장소로 다인실이 사용됐는데 요즘에는 분만자체가 줄어서 다인실은 아예 비어있는 날이 더 많다"고  말했다. 총 25병상을 운영하는 이 병원은 5~6년 전에는 한 달에 100~120명 정도 아이를 받았지만, 최근에는 60명으로 절반으로 줄어들 정도로 저출산 타격을 받고 있다.

김동석 직선제 대한산부인과의사회장은 "그동안 의사회는 병실의 50%는 다인실로 운영되어야 한다는 병실 규정은 산부인과의 현실을 도외시한 나쁜 규제로 당장 폐지되어야 한다고 수차례 요구했으나 번번이 묵살당했다"며 "이용하려는 사람이 없어 방치되는 다인실을 계속 유지하라는 것은 누구를 위한 제도인지를 묻지 않을 수가 없다"고 꼬집었다.

'모자동실'도 문제로 떠올랐다. 모자동실은 산모와 신생아가 함께 사용하는 병실을 말한다. 모유수유 편리성과 산모와 아이의 애착을 높일 수 있는 등 장점이 있다. 수유 교육 및 신생아 관리 등 서비스가 개별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에 '모자동실관리료'가 따라붙는데, 현지 실사 등에서 삭감되는 주요 대상이 된다고 의료계는 지적한다.

의사회에 따르면, 모자동실 입원 산모가 신생아실에 잠시 아이를 맡긴 경우 모자동실이 아닌 1인실을 사용한 것으로 판단, 모자동실 입원료를 책정하면 위법하다고 보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일부 분만병원은 모자동실을 운영하더라도 '모자동질 관리료'를 아예 없애는 조치를 하기도 한다. 김 회장은 "산모가 육체적으로 힘들어할 때는 잠시라도 신생아실에 아기를 맡기고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여러 차례 주장하였으나 이 또한 무시되고 말았다"고 했다.

또한 현지조사원들의 태도에 대한 불만도 높다. A 원장도 "조사원들이 실사지침서를 숙지하고 나왔으면 한다. 조사대상 병원의 권리나 의무도 정확하게 모르고, 고압적인 자세로 자의적인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며 "결국 5배씩 징수하는 과태료나 행정처분으로 귀결될텐데 병원으로서는 피로감이 매우 높다. 본래 목적인 계도가 아니라 그저 징벌을 하기 위한 실사 같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산부인과 의료계는 분만병원에 대한 실사를  중단하고, 현실에 맞게 규정을 바꿔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 회장은 "저 출산의 여파가 산부인과의 생존을 위협하고, 피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분만 사고도 산부인과 의사의 법정 구속으로 이어지는 현실에서 이러한 마구잡이식 실사까지 가중된다면 그나마 근근이 분만병원을 유지하고 있는 의사들의 사기를 무자비하게 꺾는 일이고 분만 병원들의 폐원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며 "보건복지부는 분만병원에 대한 실사를 당장 중단하고 현실과 동떨어진 낡은 규제들을 조속히 철폐하라"고 촉구했다.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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