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작가 이말년의 표현을 빌려 영화 ‘겨울왕국2’를 본 소감을 (다소 거칠게) 표현하자면 이렇다. ‘엘사님은 천재입니다. 엘사님은 6세 때부터 나뭇잎을 타고 강을 건너시고 솔방울로 수류탄을 만들어 던지시는 전지전능한 권능자입니다. 천재이고 미녀입니다. 인류역사상 길이 남을 지존자이십니다.’
‘겨울왕국2’는 전편보다 3년 후를 배경으로 한다. 계절을 되찾은 아렌델 왕국은 매일 평화롭다. 하지만 엘사는 불안하다. 자신의 마법 능력은 날로 강해지는데, 정작 왜 자신만 그런 능력을 지녔는지는 알지 못해서다. 어느날 엘사는 자신을 부르는 미지의 목소리를 듣게 되고, 그 목소리의 시작을 찾아 떠난다. 동생 안나와 안나의 연인 크리스토프, 순록 스벤, 눈사람 올라프도 물론 함께다.
마법 능력의 뿌리를 찾는 건 곧 자신을 온전히 이해하는 일이다. 엘사는 모험 속에 자신을 던진다. ‘네 목소리를 듣고 싶지 않다’면서 시작되는 엘사의 노래 ‘인투 디 언노운’(Into the unknown)은 ‘어떻게 해야 너를 따라 숨겨진 세상으로 갈 수 있느냐’는 용기의 말로 끝난다. 한편 안나의 목적은 다르다. 그는 아렌델 왕국을 지키고 싶다. 엘사는 진실을 찾아내고, 그 진실을 마주한 안나는 용단을 내린다.
전편보다 깊어진 철학이 인상적이다. 자존을 위해 위험 속으로 뛰어드는 엘사의 모습은 짜릿한 해방감을 안기는 동시에 강력한 동기 부여를 준다. 선조의 잘못을 바로잡는 안나의 행동은 침략의 역사에 대한 반성이나 자연과 문명의 공존 등 여러 의미로 읽힌다. 남성 권력이 남긴 전쟁·폭력의 아픔을 엘사와 안나의 자매애로 위시되는 여성 연대가 치유한다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모험의 배경이 아렌델 왕국에서 마법의 숲으로 옮겨가면서, 영상미는 더욱 화려해졌다. 영화엔 물·불·바람·땅의 정령들이 나오는데, 물의 정령과 엘사가 만나는 장면이 특히 아름답고 환상적이다. 달콤한 넘버들이 주를 이뤘던 전편과 달리, ‘겨울왕국2’의 넘버는 웅장하고 서사적이다. ‘렛 잇 고’(Let it go)만큼의 중독성은 없어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정도는 더욱 높아졌다. 엘사가 정체성을 깨닫는 순간 흐르는 ‘쇼 유어셀프’(Show yourself)는 주제곡 ‘인투 디 언노운’ 못지않게 마음을 흔든다.
디즈니 공주는 오랜 시간 여자아이들이 선망하는 대상이었다. 그러나 좋은 역할 모델은 아니었다. 고운 심성이야 본받을 만 하지만, 왕자를 기다리는 것 외엔 별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으니까. 반면 ‘겨울왕국’ 시리즈는 다르다. 진실을 찾고 ‘옳음’을 수행하는 일, 주로 남성 영웅의 몫이던 일을 여성들이 해낸다. 여자아이들은 이제 새로운 공주를 꿈꿀 수 있게 됐다. 언젠가 조카와 딸이 생긴다면, 반드시 ‘겨울왕국’ 시리즈를 보여주리라. 21일 개봉. 전체관람가.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