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이나 가겠습니까, 1~2주 하다가 조용히 협상하겠죠” 금융권 관계자는 9일 기업은행 노조의 신임 행장 출근저지 운동을 두고 이같이 말했다. 금융권에서 기업은행 노조의 낙하산 출근 저지 운동을 두고 ‘단기’ 행보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금융노조까지 나서 낙하산 저지를 위한 총력전에 나섰지만 금융권의 반응은 시큰둥한 것이 현실이다. 이에 금융권에서 이러한 반응이 나오는 원인을 찾기 위해 그동안 펼쳐진 금융권의 낙하산 출근저지 운동을 살펴봤다.
◆출근저지 성공사례 어디 없나요?=금융권의 낙하산 인사는 문재인 정부 이전에 박근혜·이명박·노무현 정부 때도 반복되던 논란이다. 특히 정부 산하 금융공공기관이나 정부의 입김이 강하게 부는 곳에는 언제나 낙하산 논란이 발생했다. 그때 마다 금융권 노조는 낙하산 인사의 반대를 주장하며 번번이 신임 기관장에 대한 출근저지 운동을 펼쳐왔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양천식 전 수출입은행장, 박해춘 전 우리은행장 등에 대한 노조의 출근저지 운동이 있었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민유성 전 산업은행 총재, 황영기 전 KB금융지주 회장, 신동규 전 농협금융지주 회장 등이 출근저지 운동 대상이였으며, 박근혜 정부 시절에는 임영록 전 KB금융지주 회장, 서근우 전 신용보증기금 이사장, 최경수 전 한국거래소 이사장 등이 출근에 애를 먹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은성수 전 수출입은행장, 정지원 한국거래소 이사장, 김대식 증권금융 감사 등이 노조의 출근저지 운동 대상이었고, 현재 윤종원 기업은행장이 노조의 출근저지 운동으로 출근을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노조의 출근 저지 운동으로 임명이나 선임이 번복되거나 자진사퇴한 사례는 없다.
◆노조와 ‘비밀’ 협상 펼치는 낙하산들=노조의 낙하산 인사 저지를 위한 출근저지 운동에도 기관장들이 성공적으로 출근에 성공한 비결은 어디에 있을까. 금융권에서는 낙하산들이 마련하는 ‘선물’에 있다는 의견이 많다. 출근을 저지당한 기관장들이 일단 ‘퍼주기 복지’ 약속을 통해 노조의 반발을 무마했다는 의견이다.
이러한 낙하산과 노조의 야합은 2014년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당시 공기업의 방만경영이 문제가 되면서 낙하산의 노조 달래기용 ‘퍼주기 복지’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특히 공기업 노조들이 매년 연봉 인상과는 별도로 ‘이면합의’를 통해 일반 직장에서는 상상도 못할 복지를 계속 늘리는 행태를 보여 왔다는 감사원의 감사 결과가 발표됐다.
정부는 이에 악성 이면합의에 대해 법적 대응하는 등 개선에 나서겠다고 밝혔지만 이러한 관행은 여전하다는 것이 금융권의 반응이다.
실제 수출입은행을 살펴보면 은성수 전 행장(현 금융위원장)이 취임 후 처음으로 참여한 2018년 1분기 노사협의회에서 ‘금요일 조기퇴근제 도입’, ‘부서평가 지표 내 노사화합도 점수 상향 조정’ 등 기존에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노조 측의 요구가 상당수 받아들여진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권 관계자는 “노조가 기관장 출근을 저지하면 사측은 노조에 줄 ‘선물’이 필요해 진다”고 토로했다.
◆낙하산 인사 줄어드나 했는데...=정부의 낙하산 인사와 이에 대한 노조의 반발, 노조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한 사측의 복지 향상, 정상 출근하는 낙하산 인사의 악순환이 계속되는 가운데 악순환의 근본 원인인 낙하산 인사는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줄어들 것이라는 기대도 한 순간에 그쳤다. 오히려 박근혜 정부 시절 금융공기업으로 진출했던 민간 출신 인사들마저 모두 ‘관피아’에 밀려나는 분위기다.
현재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기업은행, 예금보험공사, 기술보증기금, 신용보증기금, 예탁결제원, 한국자산관리공사 등 8개 금융공공기관 가운데 민간출신 인사는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유일하다. 이 회장마저 대통령비서실 행정관과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을 역임한 친 정부 인사라는 점을 고려하면 낙하산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
결국 정부의 낙하산 인사가 심각하다는 지적은 국무총리 인사청문회에서까지 거론됐다. 정세균 후보자는 이에 "소위 낙하산 인사가 전혀 없지는 않을 것"이라며 “심각한 상황이라면 개선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금융권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후반기에 들어가면서 정부의 낙하산 인사가 더욱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정권 후반기에 갈수록 낙하산 인사가 늘어난다”며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고 걱정했다.
조계원 기자 Chokw@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