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 탑골’, ‘원조 슈가맨’. 가수 이장희의 데뷔 50주년 기념 공연 기자간담회에서 나온 표현들이다. 1960년대 쎄시봉에서 음악 인생을 시작해 1971년 ‘겨울이야기’로 데뷔한 이장희는 한국 포크음악 역사의 첫 페이지를 쓴 인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75년 대마초 파동에 연루돼 35년간 음악계를 떠나있다가 2010년 MBC 예능 프로그램 ‘놀러와’를 통해 재소환돼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그에게 ‘탑골 가수’ ‘슈가맨’ 등의 표현이 붙은 이유다.
이장희는 가수 인생 50돌을 기념해 3월29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나의 노래, 나의 인생’이라는 제목으로 공연을 연다. 그의 음악적 동반자인 기타리스트 강근식과 베이시스트 조동익이 함께 무대에 오르고, 아직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동료 가수들도 깜짝 손님으로 등장할 예정이다. 공연을 앞둔 이장희를 30일 서울 경희궁1가길에 있는 복합문화공간 에무에서 만났다.
△ “전파상에서 흐르던 팝송, 그냥 좋았어요”
이장희는 “음악은 내 가슴을 가장 울리는 것”이라고 했다.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에 다던 1950년대 전파상에서 틀어놓은 팝송이 마냥 좋았다고 한다. 중학생이 되면서 그는 본격적으로 음악에 몰두했다. 다니던 대학도 음악 때문에 중퇴했다. 이장희는 “어머니가 우시던 게 가슴 아팠지만, 음악을 한 것이 후회스럽진 않다”고 했다. 본격적으로 음악계에 발을 들인 뒤엔 ‘그건 너’, ‘한잔의 추억’,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등 숱한 히트곡을 탄생시켰고, 가수 김완선과 밴드 사랑과 평화의 음반을 제작하는 등 프로듀서로도 두각을 드러냈다.
그는 “젊어서부터 야심보단 음악에 대한 열정과 사랑이 훨씬 컸다. 예술에는 여러 형태가 있지만, 동시에 많은 사람들에게 정서적인 일체감을 주는 건 음악만의 힘이라고 본다. 노래는 여전히 나를 매료시킨다. 일생을 음악과 같이 온 셈”이라고 말했다.
△ “일상적인 감정과 언어가 노래의 재료”
일흔을 넘긴 나이지만 이장희의 육성은 또렷하고 정정했다. 미국에서 사업가로 지내던 시절엔 한 기자로부터 ‘작게 말해도 명료하게 들리는 목소리가 마치 배우 같다’는 말을 듣기도 했단다. 이장희는 “목소리 관리를 특별히 하진 않는다. 다만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한 시간 정도 걷는데, 그것이 내 하루를 지탱해주는 원동력이 되긴 한다”고 설명했다.
때론 우렁차고 때론 감미로운 그의 노래는 중장년은 물론 젊은 세대의 마음도 홀린다. 이장희는 “내 노래가 모든 세대에게 다 통하는지는 잘 모르겠다”면서도 “일상에서 누구나 느끼는 감정을 붙잡아 노래에 담으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가사는 그의 노래를 만드는 중요한 재료다. 이장희는 번안곡이 주를 이루던 1970년대에 구어체로 가사를 쓰는 파격을 선보였다. 그는 “이상하게 생활에서 사용하는 말들을 가사에 쓰고 싶었다”며 “일단 가사만 만들어지면 가사의 음율과 분위기 때문에 멜로디는 저절로 써졌던 것 같다”고 돌아봤다.
△ “황혼의 쓸쓸함 담은 노래 만들고 싶어요”
이장희는 창작욕도 왕성하다. 지난해 2월 열린 기자간담회 때와 마찬가지로 이날도 “황혼의 쓸쓸함, 허무함, 안온함, 아름다움을 담은 곡을 쓰고 싶다”고 했다. 바다 위에 어스름히 내리는 태양의 붉은 빛처럼 이장희는 자신의 황혼이 아름답다고 느낀다. 그는 “일흔살을 넘은 사람이 느끼는 감정이 담긴, 아름다운 노래 혹은 가슴 아픈 노래를 만들고 싶다”며 웃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 사진=박효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