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 원아에 바이러스 옮길까봐…” 긴급돌봄 지쳐가는 어린이집

“6개월 원아에 바이러스 옮길까봐…” 긴급돌봄 지쳐가는 어린이집

기사승인 2020-03-09 15:54:37

[쿠키뉴스] 정진용 기자 =어린이집 휴원 중 긴급돌봄 근무를 한 어린이집 교사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불안이 확산하고 있다. 어린이집 교사들은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과 함께 차라리 긴급 돌봄을 실시하지 말아야 한다고 토로하는 분위기다.

8일 포항시에 따르면 포스코 어린이집 교사 A(26)씨는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았다. A씨는 어린이집이 휴원했으나 긴급 돌봄이 필요한 맞벌이 직원 자녀를 위해 지난달 말부터 이달 5일까지 근무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국에 따르면 A씨는 대구를 다녀왔고 지난달 26일 처음 증상이 나타난 이후에도 출근했다. 이에 포항시는 A씨가 돌본 어린이 원생 10여명과 그 가족 등 57명 대상으로 코로나19 검사에 돌입한 상태다.

포항뿐 아니라 충남 천안, 대구에서도 어린이집 교사가 잇따라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에 긴급돌봄을 보내는 학부모들 사이에서 불안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또 A씨가 기침, 인후통 등 코로나 증상이 나타났는데도 아이를 돌봤다며 무책임하다는 시선도 있었다.

반면 어린이집 측에서는 “긴급돌봄을 해도, 안 해도 욕을 먹는다”며 곤란함을 호소하고 있다. 같은날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자신을 어린이집 원장이라고 밝힌 네티즌이 “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서 글을 올렸다. 이 네티즌은 “코로나가 어린이집만 피해가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맡길 곳 없는 맞벌이 가정을 위해 긴급 보육을 한다”면서 “맘카페에서는 긴급 돌봄을 하면 운영만 생각하는 나쁜 어린이집으로 치부한다. 또 감염병 예방 차원에서 정말 급한 상황 아니면 등원하지 말라고 안내하면 ‘맞벌이는 어쩌라고 그러냐’고 난리다”고 토로했다.

이어 “인근 동네에 확진자 발생으로 평소 긴급보육 하던 아이들이 내일부터 안 나온다고 했다. 남은 아이 한명 부모님께 혹시나 해서 전화 드렸더니 ‘나오지 말라고 연락한거냐’면서 화를 냈다”고도 설명했다. 그러면서 “원장으로서 솔직히 말하면 이렇게 나라의 비상사태로 휴원을 했으면 가정보육을 했으면 좋겠다. 이래도 욕먹고 저래도 욕먹을 바에는 그게 더 나을 것 같다. 코로나로 동네북마냥 두드려 맞는 어린이집 일이 너무 지친다”고 호소했다.

어린이집 교사들도 포항 어린이집 교사의 일이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며 우려하는 분위기다. 자신을 보육교사라고 밝힌 한 네티즌은 “동료들 사이에서는 농담으로 신상 털리고 욕 먹을 바에는 코로나19로 방에서 혼자 앓다 죽는게 낫다고 얘기할 정도”라며 보육 교사에 대한 책임 전가에 걱정을 표했다. 또 다른 보육 교사는 “6개월 된 영아가 긴급돌봄 때문에 어린이집에 나온다”면서 “혹시라도 나 때문에 어린 영아가 바이러스에 노출될 까봐 버스도 안 타고 외식도 안한다. 가족들도 아무데도 못 가게 한다. 코로나19에 걸리는 게 걱정이 아니라 어린이집 원아에 피해가 갈까봐 하루하루가 무섭다”고 털어놨다.

정부는 코로나19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조하면서 유연근무제와 가족돌봄 휴가제를 제시했지만 현실적으로 이를 누릴 수 있는 직장인들은 많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24~28일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직장인 82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76.5%가 “육아 공백을 경험하고 있다”고 답했다. 정부가 장려하는 ‘가족돌봄휴가’를 사용했다고 응답한 이들은 7.3%에 그쳤다. 일각에서는 돌봄 대상 자녀가 있는 양육자를 대상으로 급여삭감 없는 단축근무를 실시하고, 유급 돌봄휴가를 권고 수준이 아니라 기업에 강제로 실시하도록 하는 등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jjy4791@kukinews.com

정진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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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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