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독에 요리까지 바쁜데 열도 재라?” PC방·노래방 ‘울상‘

“소독에 요리까지 바쁜데 열도 재라?” PC방·노래방 ‘울상‘

기사승인 2020-03-17 06:05:00

[쿠키뉴스] 정진용 기자 = “손님들 일일이 발열 체크를 하라고요? 지금도 코로나 때문에 할 일이 태산인데 그럼 알바 그만둘래요”

서울 구로구 콜센터와 동대문구 PC방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집단 감염이 잇따라 발생했다. 대구에서 잠잠해진 확산세가 수도권에서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자 정부는 ‘밀접접촉 고위험 사업장’을 대상으로 집중 관리 지침을 내놨다. 서울시는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영업금지 행정명령을 검토할 수 있다며 강경한 입장이다. 일선에서는 코로나19 감염 예방을 위한 취지는 좋지만 현실적으로 적용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가 지정한 ‘밀집접촉 고위험 사업장’은 콜센터, PC방, 노래방, 클럽 등이다. PC방은 좁은 장소에 여러 사람이 밀집해 있는 데다 자리에서 음식을 먹고 헤드셋을 이용해 비말(침방울) 전염 가능성이 높다. 노래방 역시 폐쇄된 장소에서 마스크를 벗고 노래한다는 점 때문에 코로나19에 취약하다. 중앙방역대책본부와 중앙사고수습본부는 ‘코로나19 예방을 위한 사업장 집중관리 지침’을 지난 12일 발표했다. 지침은 지난 13일부터 시행됐다.

집중관리 지침은 △각 사업장은 감염관리 책임자(팀장급 이상)를 지정해 코로나19 예방 및 직원증상 모니터링 등 관리 책임을 부여하고 △사업장 내 손세정제 등을 충분히 비치하고 사람 손이 자주 닿는 장소 및 물건에 대한 소독을 강화하는 등 위생 관리를 철저히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특히 눈에 띄는 부분은 직원과 이용자 및 방문객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는 부분이다. 정부가 배포한 집중관리지침에 따르면 직원은 1일 2회 발열 또는 호흡기 증상을 확인하고 이용자 및 방문객이 사업장으로 들어올 때 발열 체크를 해야 한다. 또 정부는 사업장에 이용자 및 방문객 명부(인적사항, 연락처, 체온 등)를 작성하도록 권고했다. 

노래방과 PC방에서 만난 관계자들은 이 같은 권고사항에 대해 “현실적으로 지킬 수 있을지 의문 ”이라고 입을 모았다. 1인 사업장에는 적용하기 힘들다는 이유에서다. 16일 오전 방문한 서울 은평구 한 PC방에는 입구에 ‘마스크 미착용 시 입장 불가합니다’ ‘컴퓨터 사용 시 꼭 손 소독을 해주세요’라는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PC방 안내데스크 위에는 손 소독제가 2개 비치됐다. 손님은 4~5명 수준이었다. 아르바이트생 1명이 가게를 지키느라 자리도 뜨지 못하고 안내데스크에 앉아 점심을 먹고 있었다.

이 PC방 업주 이모(43)씨는 “손님이 들어왔다가 나가는 것을 일일이 아르바이트생이 입구에서 확인하고 있을 수는 없다”면서 “청소도 하고 음식 요리도 해야 하고 일이 많다. 매출이 급감해 아르바이트생을 더 채용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방문객 및 이용자 명부 작성에도 회의적이라는 의견이 나왔다. 이씨는 “손님들에게 인적사항을 적으라고 하면 선뜻 응할 손님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면서 “가뜩이나 지금도 마스크 착용한 손님만 들어올 수 있게 하고 코로나19 여파로 매출이 평소보다 줄었는데 더 타격을 입을까 걱정”이라고 털어놨다.

이날 텅 빈 노래방을 돌아다니며 스프레이로 방역을 하고 있던 마포구 소재 노래방 업주 김모(45·여)씨 역시 비슷한 의견을 내놨다. 김씨는 “노래방은 손님들이 주로 연인들과 오는 경우가 많다”면서 “다 사생활인데 누가 개인정보 적는 걸 좋아하겠나. 혹시라도 코로나19 확진으로 동선이 공개될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경제가 어려워지며 아르바이트생 인원이 감축됐는데 정부 가이드라인으로 남은 아르바이트생들의 업무가 과중 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홍대입구역 한 PC방에서 근무하는 A씨는 “장사가 안돼서 원래 아르바이트생이 10명이었는데 3명까지 줄었다”면서 “아무리 손님이 없다고 해도 아르바이트생보다는 많다”고 말했다.

홍대입구역 한 프랜차이즈 노래방에서 근무 중이던 아르바이트생 A씨는 “원래 2명이 근무했는데 매출이 안 나와서 혼자 근무하고 있다. 근무시간도 8시간에서 12시간으로 늘어났다”면서 “코로나19로 할 일이 정말 많이 늘었다”고 토로했다. A씨에 따르면 손님이 오면 소독제를 앞뒤로 2번씩 뿌리고 일회용 손 세정제, 일회용 가글, 비타민C로 구성된 ‘키트’를 나눠줘야 한다. 장사가 안 되자 나름대로 마련한 노래방의 자구책이다. 그러나 키트 포장 역시 A씨 몫이다.

A씨는 손님이 떠나면 방을 소독하고 마스크를 일일이 해체해서 소독하는 것도 도맡았다. A씨는 “어차피 지금도 아르바이트비 얼마 받지도 못하고 일하는데 온도까지 체크해야 한다고 하면 그만둘 것 같다”고 했다.

서울시는 지난 12일 자치구와 합동으로 공무원 1221명을 긴급 투입, PC방, 노래방 등 고위험 사업장 1만 4671곳에 대한 전수조사를 벌이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날 정례브리핑을 통해 “우선 1만227곳의 PC방과 노래방에 대한 전수조사를 이른 시일 내 완료하겠다”면서 “위험도가 현저히 높은 곳이 확인되면 안내와 더불어 컨설팅 하겠다. 시는 고용 유지지원금 등 정부 지원대책도 안내할 것”이라고 밝혔다.

홍대 거리에서 24시간 PC방을 운영하는 업자는 “나라에서 가이드라인을 따르라고 하려면 온도계라도 구입해 나눠 줘야 하는 것 아닌가”라며 “24시간 PC방에 내내 직원이 상주할 수도 없고 마음 같아서는 쉬고 싶다. 하지만 월세 등 나갈 돈이 많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코로나19 여파가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게 가장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jjy4791@kukinews.com

정진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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