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폰서 알바 할래?” 무방비 노출된 아이들…성인인증 도입은 언제쯤

“스폰서 알바 할래?” 무방비 노출된 아이들…성인인증 도입은 언제쯤

기사승인 2020-04-02 05:30:00

[쿠키뉴스] 정진용 기자 = # “생활비가 많이 부족해서 조건만남을 해왔습니다. 유명한 랜덤채팅 애플리케이션(앱)을 이용해 글을 올렸어요. 어떤 남자가 ‘스폰서 알바 해 볼래’라고 하더라고요. 금액을 알려준 뒤 ‘텔레그램’이라는 메신저에서 이야기하자고 했어요”

자신을 ‘n번방 피해자라고 밝힌 청소년이 지난 23일 SNS에 용기 내 올린 글의 일부다. 피해자는 텔레그램으로 옮겨가 남성이 요구하는 영상을 찍어 보냈다. 이를 거부하면 남성은 개인정보를 다 알고 있다고 협박했다. 어느 날 남성은 “영상 유포한다 수고^^”라는 말을 남기고 방을 나갔다. 피해자는 “하루에만 채팅앱에 조건만남, 스폰 구한다는 글이 몇 천 개씩 올라온다. 피해자가 76명이라는 건 말이 안 된다”면서 “앱을 사용하는 미성년자들에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그만두라고 말하고 싶다”고 토로했다.

미성년자들이 성매매, 불법 사진·영상물 유포 위험이 높은 랜덤채팅앱에 무방비로 노출돼있다. n번방 사태가 수면 위로 올라온 뒤에도 달라진 것은 없다. 정부 부처들은 서로에게 책임을 미루며 수수방관하는 상황이다. 

31일 기자는 애플 앱스토어에서 랜덤채팅앱을 내려받고 가입했다. 본인 인증 절차는 없었다. 앱 소개글에는 ‘재미있고 건강한 채팅’을 표방하고 있었지만 실상은 달랐다. 채팅을 하려면 먼저 나이와 가입 목적을 설정하는 절차를 거친다. 가입 목적은 ‘애인이 필요해요’ ‘지금 만나요’ ‘폰팅 상대 구함’ ‘나쁜 친구 원해요’ 등 선택지 중 골라야 한다. 아이디를 미성년자임을 암시하는 ‘고딩’(고등학생)으로 정하고 목적은 ‘고민 상담이 필요해요’로 했다. 가입한 지 40여 분만에 20~30대 남성들이 쪽지 17건을 보냈다. 내용은 “주기적으로 ㅈㄱ(조건만남)이나 스폰으로 오래 볼 생각 있나” “건전 데이트 알바 할 생각 있나” “용돈이 필요한가” 등이었다. 다른 가입자들의 아이디도 볼 수 있었는데 ‘17살’ ’고오오딩’ ’딩고’ ‘고등녀’ 라고 적힌 아이디들이 눈에 띄었다. 

채팅앱이 청소년들을 성매매로 이끄는 주요 창구가 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여성가족부(이하 여가부)가 지난 2016년 실시한 성매매 실태조사에 따르면 조건만남을 경험한 청소년 10명 중 7명(74.8%)이 휴대폰 채팅앱으로 상대를 만났다. 채팅앱(37.4%)과 랜덤채팅앱(23.4%), 인터넷 채팅 사이트(14%)를 순이었다. 조건 만남 경험이 있다고 답한 19세 미만 청소년(107명)들이 조건만남을 하게 된 이유로는 “갈 곳, 잘 곳이 없어서”(29%)라는 답변이 가장 높았다.

경찰의 채팅앱 집중 단속을 통해 성매매 사범이 무더기로 적발되기도 했다. 경찰청이 지난 2016년부터 지난 2018년까지 3년간 집중 단속한 결과 채팅앱을 통한 성매매 사건 총 3665건이 적발됐으며 1만 1414명이 검거됐다. 이 가운데 청소년 대상 성매매 사범은 452건, 863명에 달한다. 

랜덤채팅앱이 성매매 온상이 된 것은 본인 인증 절차가 따로 필요없다는 점이 크다. 지난해 11월 여가부가 청소년매체환경보호센터에 위탁, 채팅앱 687개 중 349개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랜덤채팅앱 92.8%는 청소년 이용 불가 등급 판정을 받았다. 본인 인증이나 성인 인증 절차가 있는 앱은 전체 중 단 3.7% 였다. 또 대화 중 문제가 발생해도 관리자에게 신고가 불가능하거나(38.5%) 증거를 남길 때 사용하는 화면 캡쳐 등이 되지 않는(6.3%) 앱도 있었다.

이에 따라 정부가 랜덤채팅앱을 청소년 유해매체물로 지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청소년 유해매체물이 되면 청소년보호법 제16조에 따라 이용자 나이 및 본인 여부를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가부 청소년보호위원회는 심의를 거쳐 청소년에게 유해하다고 인정되는 매체물을 청소년 유해매체물로 결정할 수 있다. 다만 해당 매체물의 윤리성, 건전성을 심의할 수 있는 기관이 있는 경우에는 예외로 한다. 랜덤채팅앱의 경우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가 심의 기관이다. 

그러나 랜덤채팅앱 청소년 유해매체물 지정은 수년째 제자리 걸음이다. 여가부가 지난해 12월 고시한 청소년 유해매체물 현황에 따르면, 지난 2017년을 마지막으로 앱에 대한 청소년 유해매체물 지정은 전무하다. 

여가부 관계자는 “일단 랜덤채팅앱의 청소년 유해매체물 판단 권한은 방심위에 있다“면서 “여러가지 방안을 위해 관련 부처, 업계, 전문가들 이야기를 청취하고 있다”는 원론적 입장을 되풀이했다. 지난해 5월 여가부 기자간담회에서 “부처간 조율 중”이라고 밝힌 뒤 진전 사항이 있냐는 질문에는 “딱 어떤 내용이 확정됐다고 말씀드리기는 어렵다”고 말을 아꼈다.

방심위는 개인 간에 오간 대화 때문에 랜덤채팅앱을 청소년 유해매체물로 지정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방심위 관계자는 “청소년 유해매체물 지정이 되려면 콘텐츠 유해성이 확인돼야 한다. 그러려면 사인간 대화를 들여다봐야 한다. 이는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소지가 있다”면서 “일부 불건전한 게시글은 모니터링해 시정 요청 하고 있지만 수천건에 달하는 게시글을 일일이 감시할 수 없다는 점도 어려움 중에 하나”라고 말했다. 

지난 2017년 이후 청소년 유해매체물로 지정된 앱이 없는 이유에 대해서는 “대놓고 ‘섹시’ ‘성인미팅’ 등을 광고하며 불건전 만남을 표방하는 앱은 유해 매체물 지정을 했었다. 이후에는 그런 앱이 없어 유해 매체물 지정이 줄었다”고 했다.

시민단체는 당국의 안이한 인식을 규탄했다. 권주리 십대여성센터 사무국장은 “랜덤채팅앱을 청소년 유해매체물로 지정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6년째 해왔다. 그럴 때마다 ‘논의하고 있다’ ‘고려하고 있다’는 답변만 들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랜덤채팅앱 위험성을 개인간에 오가는 대화로만 치부하고, 여가부와 방심위가 서로 책임을 미루고 있다. 업체들의 자율성에만 맡길 사안이 아니다”면서 “피해는 고스란히 아이들의 몫”이라고 꼬집었다.

jjy4791@kukinews.com

정진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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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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