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쿠키뉴스는 국내 산업 발전의 자양분이자 경쟁력의 밑바탕이 돼 왔고 앞으로도 큰 역할을 수행해야 할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명장을 찾아서’ 연재는 우리나라 산업 발전을 위해 묵묵히 산업 현장을 밝혀 온 이들의 삶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쿠키뉴스] 임중권 기자 =종합철도 전문기업 현대로템은 1977년 사업 시작 후, 1999년 세계 철도 시장에서의 국가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철도차량 사업을 하던 현대정공과 한진중공업, 대우중공업 등 3사가 정부 빅딜 1호로 합병돼 출범했다. 이어 2001년 현대자동차그룹에 편입됐다.
40여년 넘게 회사가 변화를 겪었지만 철도산업 불모지였던 한국에서 단기간에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갖춘 글로벌 기업으로 인정받고 있다.
현재 아시아와 중동, 유럽, 아프리카, 미주 등 전세계 37개국에 진출해 국부창출과 국위선양에 기여하고 있다.
쿠키뉴스는 우리나라 산업 발전의 역사를 쓰고 있는 ‘명장을 찾아서’ 첫 인터뷰이로 현대로템의 태동과 도약을 함께한 민평오 현대로템 책임연구원(명장)을 만났다. “최고를 위한 노력은 국내 유일 철도기업의 사명일 것입니다. ‘이는 30년 철도 외길’을 걸어온 제 신조입니다.” 철도 외길을 걸으며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한 회사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민 명장은 “구식 설계 방식에 멈추면 세계 시장에서 도태된다. 최고의 기술력을 갖추는 것은 국민을 안전하게 수송하는 철도 장인들로서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1998년 알스톰으로 경부고속차량 기술이전을 받았을 때 노하우를 소개했다.
민 명장은 “프랑스 알스톰으로부터 경부고속차량(KTX-l)기술 이전을 받았을 때 알스톰은 한국에 대해 열차 단순생산을 위한 기술이전이지 원천기술 이전은 아니라는 입장이었다.
기본적인 자료 요청조차 번번이 막혔다. 기술 강의를 하는 프랑스 강사들도 알스톰 담당자에게 일일이 자료공개 승인을 받았기에 제대로 된 기술 교육이 어려웠다”고 회상했다. “이러한 상황에 3개월 이상 교육을 맡던 프랑스인 강사들과 친분을 다지며 ‘휴민트’(HUMINT, 인간정보)를 활용해 기술 국산화를 끝끝내 달성했습니다. 메모 빼고는 사진 촬영부터 무엇하나 수월히 되는 일이 없었지만 인간적인 관계가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된거죠.”
민 명장은 알스톰 기술이전을 시작으로 2007년 차세대고속철도 개발, G7 국책과제였던 차세대 고속차량(동력분산식) 프로젝트, 국내 최초 분산식 고속열차인 EMU260 양산 과제 프로젝트 등 굵직한 사업을 책임자로 수행했다.
그는 “2007년부터 여러 프로젝트에서 시운전부터 설계까지 고생을 하며 기술성과를 달성했다. 후배들은 이를 토대로 호남‧수서 고속차량과 원강 고속차량 등을 성공적으로 상용화했다”며 “최근 국내 최초 동력분산식 열차 양산 역시 이를 토대로 진행되고 있다. 과거의 노력이 후배 철도인들에게 어두운 눈밭의 발자국이 된 것 같아 감회가 새롭다”고 미소를 지었다.
한국 철도산업의 미래먹거리인 고속열차 프로젝트에 대한 애정도 드러냈다.
그는 “상용화를 앞둔 동력분산식 차량(EMU-고속차량)은 글로벌 철도 수주 확대는 물론, 국내 수송량 확대를 통한 교통난 해소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며 “현재 글로벌 시장에서 터키‧태국‧말레이시아‧싱가포르 등에서 동력분산식 차량 구매 의사를 회사에 타진해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는 동력집중식 고속열차(양 끝 열차에 동력을 배치해 열차를 움직이는 방식)와 달리 분산형 고속열차는 열차를 움직이는 엔진(동력)이 차체 하부 여러 곳에 분산돼 전차량에 승객이 탑승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이를 통해 동력집중식보다 100석 이상의 수송량을 늘려 경제성 증대부터 교통난 해소까지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민 명장은 “상용화를 진행 중인 분산형 고속열차는 세계 고속열차 시장에서도 상당수 발주량을 차지하는 세계적 대세 열차다. 약 65조원(509억 유로) 규모로 추정되는 세계 철도차량 시장에서 고속열차는 전체의 20%가량인 약 12조원(99억 유로)을 차지한다. 동력분산식 고속열차의 성공적인 상용화를 통해 새로운 고속열차 시대를 열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하지만 불안정한 국내 철도시장의 미래는 걱정이다.
그는 “한국 철도 기술이 도태되지 않기 위해서 시장성이 유지돼야만 한다. 시장이 들쭉날쭉하다 보니 중소기업들은 운영조차 힘든 상황”이라며 “경쟁국인 중국은 국가 차원의 금융지원과 대량 발주를 통해 기업들이 기술력을 갖추도록 정부가 지원한다. 또한 선두그룹인 일본과 프랑스 기업들은 국제시장에서 시장지배력을 가지고 있어 수출을 통한 경쟁력을 유지한다”고 설명했다.
반면 한국 철도 기업들은 존립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고, 국민 안전을 책임지는 철도 기술 국산화가 어려워질 수 있다고 그는 우려했다.
그럼에도 한국철도산업은 위기 속에서 기회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전국에 깔린 도로에 비해 철도 노선은 부족하다. 또 기존 철도차량도 노후화됐고, 속도 증속이 필요해 국내에서 추가 수주가 요구되는 상황이다. 중부내륙 지역 등은 고속열차를 운행하지 않는 구간의 경우 준고속철이라도 깔아주길 원하는 지역도 많다. 이런 곳 역시 추가 수주를 노려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앞으로의 목표에 대해 민 명장은 “과거부터 철도인들이 공유하는 오랜 꿈이 있다. 하루빨리 남북 철도가 연결돼 우리가 만들고, 설계한 대한민국 고속열차를 타고 파리까지 장거리 여행을 가보고는 것이 꿈이자 목표”라고 환하게 웃었다.
im918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