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오준엽 기자 =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희롱 사건에 대한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결과가 발표된 후 사건발생 후 6개월여간 침묵을 지키며 두둔하는 모양새를 취했던 더불어민주당의 태도가 달라졌다. 당 내에서도 속속 사과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당 차원에서의 사과에 더해 지도부와 주요 인사들도 고개를 숙였다. 재발방지에 대한 약속도 이뤄졌다. 하지만 충분치 않다는 말도 나온다.
앞서 인권위는 지난 25일 전원위원회를 열고 ‘공소권 없음’으로 사건을 종결한 사법당국과 달리 “박 전 시장의 행위가 성적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성적 언동이었다”며 성희롱 사실을 사실상 인정했다. 나아가 서울시 등 관계기관에 피해자 보호와 재발방지를 위한 개선을 권고하기로 했다.
사실이 알려진 후 26일, 박 전 시장의 소속 정당이었던 민주당은 권익위의 결정을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신영대 대변인은 논평에서 “피해자와 서울시민을 비롯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 “2차 피해 없이 피해자가 일상을 회복할 수 있도록 인권위의 권고사항을 이행하겠다”고 약속했다.
민주당 젠더폭력대책특별위원회 위원장이면서 피의사실을 서울시 임순영 젠더특별보좌관에게 누설해 논란이 됐던 남인순 최고위원도 같은 날 입장문을 통해 “사건 당시 서울시 젠더특보와의 전화를 통해 ‘무슨 불미스러운 일이 있는지’ 물어본 것이 상당한 혼란을 야기했고, 이는 어떤 변명의 여지도 없는 저의 불찰”이라고 말했다.
나아가 “피해자에게 '피해호소인'이라고 지칭해 정치권이 피해자의 피해를 부정하는 듯한 오해와 불신을 낳게 했다. 저의 짧은 생각으로 피해자가 더 큰 상처를 입게 됐다”면서 “피해자의 고통에 공감하고, 특히 2차 가해가 더 이상 발생되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며, 피해자의 고통이 치유되고 삶이 회복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사과의 말을 전했다.
정춘숙 여성가족위원장을 비롯한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 여가위 위원들도 입장문에서 “오랜 시간 고통받아온 피해자와 가족, 실망을 안겨드린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죄드린다. 통렬히 반성하고, 각성의 계기로 삼겠다”며 “성폭력 가해자 영구제명, 징계시효 폐지 등 지난 개정 당헌·당규 상 재발 방지대책이 실질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27일에도 사과는 이어졌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인권위 조사결과를 무겁게 받아들여 피해자와 가족들께 다시 한 번 깊이 사과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이후 관련법을 개정해서라도 ▲피해자의 2차 피해 없는 일상회복 ▲제도 개선권고에 따른 재발방지책 마련 ▲차별제도 및 관행의 과감한 타파 ▲사회의 여성 억압구조 해체 의지도 피력했다.
서울시장후보로 나서며 야당으로부터 입장표명의 압박을 받아왔던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도 이날 KBS ‘김경래의 최강시사’에 출연해 “민주당이 진심으로 사과해야 하는 것이 맞다”는 분명한 의사를 전했다. 나아가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을 존중한다”며 피해여성들의 상처를 보듬고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서울시가 돼야한다는 의지도 피력했다.
하지만 민주당의 연달은 사과에도 야당은 공세를 멈추지 않았다. 국민의힘 김정재 의원을 비롯한 여성의원들은 “때늦은 뒷북 사과는 했지만 보궐선거를 의식한 보여주기식 사과”라며 “2차 가해의 책임 있는 민주당은 피해자편에 서서 2차 가해를 서슴지 않았고 지금도 박 전 시장의 뒤를 잇겠다며 2차 가해를 자행하고 있다. 진심어린 사과와 책임을 물어라”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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