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 근절” 외침도 무색…물고문·폭행으로 떠난 아이들

“아동학대 근절” 외침도 무색…물고문·폭행으로 떠난 아이들

기사승인 2021-02-16 06:01:02
지난달 5일 경기 양평군 서종면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원에 안치된 정인양의 묘지에 시민들의 추모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박태현 기자
[쿠키뉴스] 정진용 기자 = 서울 강서구 양천에서 생후 16개월 정인양이 양부모 학대로 숨진 사건이 공중파 방송을 통해 재조명되며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불과 1개월도 안돼 전국에서 영유아 학대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15일 경찰은 경기도 용인에서 이모, 이모부의 물고문과 폭행 등 학대로 열살 여아 A양이 사망한 사건과 관련해 “살인죄 적용을 적극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아동학대치사죄가 아닌 살인죄를 적용하면 처벌 수위가 더 높아진다. 아동학대치사죄는 기본 4~7년, 살인죄는 10~16년이다.

이들 부부는 지난 8일 오전 임시로 데리고 있던 조카가 말을 듣지 않고 소변을 가리지 못한다는 이유로 플라스틱 파리채 등으로 마구 때리거나 물을 받아 놓은 욕조에 머리를 담그는 등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 부부는 물고문을 하던 중 A양이 숨을 쉬지 않자 119에 신고해 “아이가 욕조에 빠졌다”고 거짓 신고도 했다. 숨진 A양의 주검에서는 폭행으로 생긴 수많은 멍 자국과 몸이 묶였던 흔적 등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2일 오전 전북 전주시 덕진구 덕진경찰서에서 생후 2주된 아들을 때려 숨지게 한 부모가 호송차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설 당일인 지난 12일에는 태어난 지 2주된 아들을 때려 숨지게 한 부모가 구속됐다. 이들 부부는 지난 9일 밤 전북 익산시 자신들이 거주하던 오피스텔에서 생후 2주된 아들을 때려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20대 부부는 경찰 조사에서 “아이가 침대에서 떨어져 상처가 났다”고 범행을 부인하다가 결국 “아이가 자주 울고 분유를 토해서 때렸다”고 혐의를 인정했다. 경찰은 부모들이 모두 무직 상태로 생활고를 겪어왔다고 밝혔다. 또 지난해에도 한 살 된 딸을 학대한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고 조사 과정에서 혐의가 인정돼 검찰에 넘겨진 전적이 있다.

연휴 전날인 지난 10일에는 경북 구미시 한 빌라에서 3세 여아 B양이 미라 형태로 숨진 채 발견됐다. 외할아버지가 딸과 연락이 닿지 않아 집을 찾았다가 숨진 외손녀를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시신은 발견 당시 상당히 부패가 진행된 상태였다. B양 친모는 경찰에 “딸이 오래전 헤어진 친부 아이라 보기 싫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20대 초반의 친모를 체포해 지난 12일 특수 살인 혐의로 구속했다.

또 지난달 15일에는 인천 미추홀구 한 주택에서 8세 여아 C양이 숨진 채 발견됐다. 출생신고를 하지 않은 상태였다. 경찰 조사 결과 40대 친모는 같은달 8일 딸의 호흡을 막아 살해한 뒤 일주일간 시신을 집안에 방치한 것으로 드러났다. 친모는 남편과 이혼하지 않은 상황에서 다른 동거남과 혼외 자녀 C양을 낳게 되자 법적 문제 때문에 출생신고를 하지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

고득영 보건복지부 인구정책실장이 지난달 19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아동학대 대응체계 강화 방안과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는 지난달 19일 ‘16개월 영아 학대사건’ 이후 아동학대 대응체계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아동학대 조사를 전담하는 공무원, 경찰의 전문성을 높이는 방안이 담겼다. 아동학대전담공무원이 배치 전 받는 교육 시간은 2주·80시간에서 4주·160시간으로 늘었다. 또 분리 보호된 아동이 머무를 학대피해아동쉼터는 15개를 조속히 설치하고 지방자치단체별 추가 수요를 반영해 14개를 연내 추가 확충하기로 했다. 입양 아동과 예비 양부모간 상호적응을 위한 입양 전 위탁 제도화도 언급됐다.

그러나 이를 두고 “당장의 여론을 달래기 위해 급히 내놓은 정책”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나왔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등 시민사회단체 91곳은 지난달 22일 성명서를 내 정부 대책을 두고 아동학대 대응 전문성 강화를 위해 필요한 추가 인력 보강을 언급만 할 뿐 구체적 인력과 예산 확충 계획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아울러 “아동보호체계 기초라 할 수 있는 출생통보제와 보편적 출생등록제의 도입을 검토하지 않은 것 또한 커다란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꼬집었다. 

지난달 5일 경기 양평군 서종면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원에 안치된 정인양의 묘지에 시민들의 추모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박태현 기자

또한 전국 지자체들은 해가 바뀌었지만 여전히 아동학대 전담 인력 부족을 겪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더불어민주당 강선우 의원이 행정안전부와 아동권리보장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전국 229개 지자체 중 보건복지부의 아동학대전담공무원 배치 기준을 충족하는 곳은 56곳으로 24%에 불과했다. 단 한 명도 배치하지 않은 곳은 102곳으로 45%에 달했다. 아동학대전담공무원 1인당 100건을 넘게 담당하고 있는 지자체는 절반 이상에 해당하는 9곳이었다. 그 중 대전이 404건으로 가장 많고 인천 379건, 경기 256건이 그 뒤를 이었다.

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는 “정부가 아동학대를 근절하겠다고 큰소리만 쳐놓고 구체적으로 실효성 있게 정책이 적용되는 부분이 미흡하다”면서 “인천에서 숨진 8세 여아가 출생 신고를 하지 않은 상태였는데 출생등록제는 정부가 지난 2019년에 이미 시행을 하겠다고 공언해놓고 아직도 감감무소식이다. 예산이나 내놓은 대책을 보면 아동학대 근절을 위한 정부 의지가 여전히 없다고 본다”고 꼬집었다. 이어 “새해가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친부모에 의한 아동학대가 아닌 이모·이모부에게서 학대를 당하거나 2주 된 태아가 숨지는 등 아동학대 사건이 다양한 형태로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jjy4791@kukinews.com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
정진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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