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에 갇히면 이런 기분일까 [1.5평의 권리②]

감옥에 갇히면 이런 기분일까 [1.5평의 권리②]

-‘보이는 곳에서 쉬지 말라’는 민원에 지하에서 쉬는 경비노동자
-곰팡이 슨 벽에 쥐, 바퀴벌레까지…“감옥 같다”는 생각도
-변기 옆에서 밥 해 먹고, 경비원용 화장실 수십 년째 그대로

기사승인 2021-12-14 06:15:01

1.5125평. 서울시가 정한 1인 휴게 공간 적정면적입니다. 현실은 빠듯합니다. 9명의 노동자에게 주어진 공간은 1평 남짓입니다. 어떤 이는 계단 구석에서 또 다른 이는 곰팡이 슨 지하에서 숨을 돌립니다. 누군가는 묻습니다. 일하러 간 직장에 휴게실이 왜 필요하냐고요. 노동자는 깨끗하고 안전한 공간에서 쉴 권리가 있습니다. 쿠키뉴스 특별취재팀은 열악한 휴게 공간을 돌며 현장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바뀌긴 할까요” 묻던 한 노동자에게 이제는 우리 사회가 답할 차례입니다.

*기사는 노동자들의 목소리와 취재 내용을 1인칭 시점으로 재구성했습니다.
서울의 한 아파트. 지하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 밑에 경비원이 직접 만든 휴게 공간.   사진=이소연 기자
세상은 이리도 밝은데 제가 앉은 곳은 한낮에도 어둡습니다. 캄캄하고 답답한 게 지하실인지 저의 내일인지 가끔 헷갈리기도 하죠. 빛이 들지 않는 방에서도 눈치를 봐야 하는 신세라고 하면 어떤 일을 하는지 짐작할 수 있을까요. 저는 아파트 경비원입니다.

새벽부터 쏟아진 업무를 마쳤습니다. 한숨 돌리고 싶지만, 초소에서는 쉴 수 없습니다. 좁아서냐고요. 아닙니다. 보이는 곳에서 쉬지 말라는 주민 민원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아파트 지하실, 그곳에 휴게실이 있습니다.
[위 사진은 360도 VR 카메라로 촬영한 이미지입니다. 정상적으로 동작하지 않으면 쿠키뉴스 기사원문(클릭)에서 확인해보세요.]

창고 문을 열고 한참을 걸어 내려갑니다. 천장에는 배관이, 벽에는 곰팡이가 늘어져 있습니다. 저기 저 잡동사니 쌓인 곳이 휴게실입니다. 좁은 공간, 바닥에는 장판을 깔고 침대 위에는 전기장판을 올렸습니다. 모두 주민들이 내다 버린 것입니다. 누워있으면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 세대에서 쓴 물이 하수도를 타고 내려오는 소리가 들립니다. 눅눅한 환경에 핀 곰팡내와 곰팡내를 잡으려 둔 나프탈렌 냄새가 전쟁을 치르기도 합니다.

서울 강동구의 한 아파트 지하 휴게실. 쥐가 자주 출몰해 문턱에 높은 장애물을 설치한 모습. 배관과 전선도 그대로 노출됐다.   사진=정진용 기자
에어컨은 없습니다. 여름에는 선풍기를 틉니다. 히터도 없습니다. 비닐과 스티로폼으로 곳곳에서 들어오는 한기를 막습니다. 물이 나오는 곳에 호스를 꽂으면 그곳이 샤워실입니다. 환풍기는 사비를 들여 설치했고, 작은 냉장고는 동료끼리 돈을 모아 샀습니다. 필요한 전자제품이라도 다 둘 수 없습니다. ‘전기세 많이 나온다’라는 핀잔을 들었으니까요. 파리는 약과입니다. 쥐, 바퀴벌레가 수시로 지나다닙니다. 어떤 날은 이곳에 앉아 ‘감옥에 갇히면 이런 기분일까’ 생각해 보기도 했습니다. 어둡고 답답하고 냄새나지만, 이래 봬도 넓은 아파트 단지에 유일하게 마음 둘 곳입니다.

서울 강동구의 또다른 아파트. 초소에 딸린 화장실에서 쌀을 씻고 밥을 해먹는다.   사진=정윤영 기자
휴게실이라도 있다면 다행입니다. 더 열악한 곳에서 일하는 경비원들은 초소 구석 혹은 딸린 화장실에서 쉽니다. 의자에 앉아 눈이라도 붙이면 경비실 문을 두드립니다. ‘왜 자느냐’는 겁니다. 그마저도 주민이 부르면 부리나케 뛰어나가야 하죠. 노인정에 가서 쉬다 오는 것도 눈치가 보여 포기했습니다. 변기 옆에서 해 먹는 밥맛은 상상하기 힘들 겁니다.

쉬어도 쉬는 게 아닙니다. 휴식 시간이 있지만 한 번도 맞춰서 쉬어본 적이 없습니다. 쉬기 위해서는 관리소장의 허락도 필요합니다. 13시간30분을 꼬박 일만 하다 퇴근하는 하루가 일상이 되었습니다.

서울 동대문구 한 아파트에 마련된 경비원용 화장실. 오래된 시설에 악취도 심했다. 오른쪽 사진은 손을 씻는 세면대.   사진=이소연 기자
우리를 취재하겠다고 온 기자가 ‘어떤 휴게실이 생기면 좋을 것 같냐’라고 묻네요. 저는 답합니다. “곰팡이 없는 곳에서 쉬는 게 가장 큰 바람입니다. 바닥에 장판이라도 깔아주면 해결될 텐데요. 그런데 누가 파리 목숨을 위해 그렇게까지 해줍니까” 가족에게 보여주지 못할 휴게실, 그리고 이마저도 없는 근무 환경에서 우리는 오늘도 일하고 또 일합니다.

[1.5평의 권리]
 ①주차장, 창고, 트렁크…쉴 곳을 고른다면
 ②감옥에 갇히면 이런 기분일까
 ③왜 맨날 계란프라이만 싸 오냐고요?
 ④노동자 수백명, 휴게실 의자는 7개
 ⑤19명이 샤워실 앞에 줄을 섰다
 [친절한 쿡기자]1.5평의 권리 



민수미 기자 min@kukinews.com
민수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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