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부인 김건희씨의 ‘7시간 통화’ 녹취 방송이 뜻밖의 결과를 불렀다. 김씨에게 호감을 표하는 여론이 급증한 데 이어 윤 후보 지지율까지 상승했다.
앞서 MBC는 지난 16일 인터넷 매체 ‘서울의 소리’ 이모 기자와 김씨의 통화 녹취록 일부를 공개했다. 김씨는 통화에서 정치권 미투(Me Too)와 문재인 정권의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관련 수사·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등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표했다. 접대부 쥴리 의혹·유부남 검사와 혼전 동거설 등도 직접 반박했다.
방송은 예상 밖의 결과를 불렀다.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개설된 ‘김건희 여사 팬카페(건사랑)’의 회원 수는 20일 오후 5시 기준 3만9000명을 넘어섰다. 지난해 12월19일 개설된 해당 카페의 회원 수는 지난 15일까지 200여 명에 불과했지만 ‘7시간 녹취록’이 보도된 이후 신규 가입자가 폭증했다. 현재도 늘어나고 있는 상태다.
카페 메인에는 영화 포스터에 김씨를 합성한 패러디물이 걸렸다. 여성의 활약이 담긴 영화 ‘아토믹 블론드’, ‘원더우먼’ 포스터에 김씨 얼굴을 합성한 사진이다. ‘적폐들을 입 다물게 만든 호탕함’ ‘모두가 놀란 진짜 걸크러쉬’, ‘유쾌하고 당당한 김건희 녹취록’ 등의 문구도 적혔다.
팬카페는 자체 제작한 마스크 판매까지 나섰다. 마스크에는 김씨의 캐리커쳐와 ‘건사랑’이라는 글자가 담겼다. 오는 23일 오후 2시에는 상암동 MBC 앞에서 피켓 시위를 계획 중이다. ‘건희는 RISK(위험 요소)가 아니라 RISE(상승)’ 등의 구호를 외칠 것으로 전해졌다.
게시글에도 김씨에 대한 긍정적 의견이 주를 이뤘다. “멋진 김건희, 응원한다”, “그간 우려를 한 방에 날린 사이다 발언 통쾌하다” 등의 응원 글이 쏟아졌다. 김씨가 녹취록에서 자신의 정치적 견해 등 거침없는 발언을 이어간 것이 되레 호감을 불러일으킨 것으로 풀이된다.
이 가운데 윤 후보 지지율은 상승 곡선을 탔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코리아정보리서치가 뉴스핌 의뢰로 지난 17일 전국의 만 18세 이상 성인 남녀 1008명을 대상으로 ‘차기 대선 후보 지지율’을 조사한 결과(표본오차 95%·신뢰수준에서 ±3.1%p), 윤 후보는 44.4%의 지지를 받았다. 지난 8일 같은 조사 대비 4.1%p 상승한 결과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35.8%)와는 8.6%p 오차범위 밖 격차를 보였다.
이번 조사가 이루어진 1월17일은 김씨의 7시간 통화 녹취가 방송에서 공개된 다음 날이다. 야권에서는 가까스로 올린 지지율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위기감이 감지되기도 했다. 하지만 윤 후보의 지지율은 오히려 직전 조사 대비 상승했다. 녹취록 공개가 윤 후보 지지율 추이에 유의미한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는 얘기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방송 이후 민주당이 오히려 역풍을 맞았다는 평가가 나왔다. 진보 성향의 류근 시인은 16일 자신의 SNS를 통해 “소문난 잔치 불러놓고 결국 김건희 실드(방어)”를 했다며 “누이도 매부도 면피에 성공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김건희 악재를 호재로 바꿔주는 이적행위를 시전(펼쳐 보임)했다. MBC가 000(뻘짓)을 한 것”이라며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냈다.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유족의 소송 대리인·광복회 고문 등을 맡았던 정철승 변호사도 “내가 김건희씨 통화내용을 먼저 들었다면 방송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조언했을 것 같다”며 “김씨가 어찌 그리 멍청할 수 있나 생각했는데, 방송을 보니 서울의 소리가 멍청했다. 서울의 소리가 김씨에게 당했다. 판도라의 상자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신율 명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20일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녹취록에 논란의 소지는 분명히 있다”면서도 “유권자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김건희씨의 화법이 시원시원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간 김씨가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점이 오히려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다만 상반된 평도 있다. 김종구 시사평론가는 이날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해석의 함정이 작용한 것”이라며 “김씨의 변명이 사실관계나 언론 보도를 단순하게 받아들이기 쉬운 일부 국민에게 어느 정도 통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기사에 인용된 여론조사의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최은희 기자 joy@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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