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동계올림픽 편파 판정 논란으로 반중 정서가 확산하자 대선을 앞둔 정치권이 긴장하고 있다. 특히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와 여당은 ‘친중 딱지’를 우려한 듯 일제히 중국을 향한 비판 수위를 높이는 모양새다.
최근 이 후보 측은 편파 판정 논란이 불거지자 친중 이미지 탈피에 나섰다. 이 후보는 8일 서울 강서구 방신전통시장에서 “(한국 선수 2명을 실격시킨) 편파 판정에 대해 중국 체육 당국이 성찰할 필요가 있다”며 “지구촌 화합의 장이어야 할 올림픽이 자칫 중국 동네잔치로 변질되고 있다는 아쉬움이 든다”고 지적했다. 송영길 대표도 “불공정에 대한 분노로 잠 못 이루는 밤”이라고 말했다.
이 후보는 같은 날 보도된 한 언론 인터뷰에서도 “동서 해역의 북한이나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은 강력하게 단속할 것”이라며 “불법 영해 침범인데, 그런 건 격침해버려야 한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해당 발언은 이 후보가 그간 중국에 대해 보였던 태도와 온도 차가 크다. 이 후보는 “외국인 혐오 조장으로 득표하는 극우 포퓰리즘은 유해하다”며 반중 정서와 거리감을 유지해왔다. 또 국인 건강보험 문제와 ‘사드 추가 배치’를 언급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를 겨냥해 “혐오와 증오를 부추기고 갈등을 조장하는 것은 구태정치”라고 비판한 바 있다.
이는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이 친중 노선을 보였다는 점에서 직면할 악재를 염두한 것으로 보인다. 올림픽을 고리로 불거진 반중 정서가 대선 판세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특히 ‘캐스팅보트’인 2030세대가 중시하는 공정 기치를 자극했다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 반중 정서가 부각될수록 이 후보와 여당에 대한 반감이 커질 수 있다는 평가다.
정치권에서는 이 후보 측이 표심을 노리고 반중 정서에 편승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허은아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올림픽 편파 판정에 대한 국민적 분노에 올라타겠다는 의도였겠지만, 생각 없는 급발진 강성 발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국정을 책임지겠다는 사람이 국민의 분노를 앞질러 선을 넘어 버리니, 화내던 국민들조차 도리어 불안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고 꼬집었다.
장영일 국민의힘 선대본부 상근부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즉흥적이고 극단적인 이 후보의 무모함이 황당하고 무섭기만 하다”며 “제 정신 맞느냐”고 반문했다.
정의당 오현주 선대위 대변인도 “베이징 동계올림픽의 반중 여론을 선거에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상당히 우려스러운 발언”이라며 “모기 잡겠다고 검을 뽑아 휘두르고, 빈대 잡겠다고 초가삼간 태우는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논란으로 되레 야권이 수혜를 입을 가능성이 크다는 해석도 나온다. 국민의힘은 일찍이 반중을 대선 공약의 주요 메시지로 삼았다. ‘멸공’ 키워드를 비롯해 외국인 건강보험 제도 개선·사드 추가 배치 등 반중 정서를 겨냥한 공약을 내건 바 있다.
전문가는 반중 정서가 실제 대선판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평가했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9일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이번 대선에서 결정적 열쇠를 쥔 세대인 청년층이 가장 분노하고 있다. 이들은 누구에게 투표할지 결정하지 못하고 그때그때 사안별로 판단한다”며 “그간 친중 기조를 앞세운 민주당 정권이 반감을 살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으로서는 굉장히 부담스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신율 명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역시 본지와의 통화에서 “젊은층을 중심으로 정부를 비난하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이재명 후보가 ‘격침론’ 같은 극단적인 발언까지 동원할 수 밖에 없는 이유”라며 “그러나 누적된 정치인이나 정당 이미지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군함도 아닌 민간 어선을 격침하겠다는 것은 국제법에도 어긋나는 행위”라고 설명했다.
최은희 기자 joy@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