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값에 사면 바보’…아이스크림값의 불편한 진실

‘제값에 사면 바보’…아이스크림값의 불편한 진실

같은 아이스크림인데...가격은 제각각

기사승인 2022-04-22 06:00:22
안세진 기자

A씨 동네는 ‘아이스크림 할인점’ 간판을 내건 무인 아이스크림 판매점이 여럿 있다. 일반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구할 수 있는 가격 절반 수준이다. 반면 B씨 동네에는 아이스크림 할인점이 없다. 대형마트와 편의점만 있을 뿐이다. 이곳에서는 아이스크림을 권장판매가에만 구입할 수 있다. 동네슈퍼나 편의점, 마트 등에서의 아이스크림 가격이 제각각이다. 같은 아이스크림인데 가격이 다른 이유는 뭘까.

오픈프라이스 제도의 시작

21일 빙과업계 관계자는 “지금의 아이스크림 ‘상시 할인체제’는 지난 2010년 오픈프라이스(판매가격표시) 제도 도입으로 굳어졌다”고 말했다. 오픈프라이스란 쉽게 말해 제조업체가 아닌 유통업체가 가격을 결정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롯데, 빙그레 등 제조업체가 아이스크림을 생산해도 가격은 최종적으로 편의점, 마트 등 판매업체에 의해 결정되는 셈이다.

이전까지는 제조업체와 판매업체가 권장소비자가격을 올리고 이를 할인 판매하는 방식이 시장에 만연했다. 이같은 판매 행위를 막기 위해 정부는 최종 판매업자의 경쟁을 유도해 소비자에게 저렴한 가격에 상품을 제공하기 위해 오픈프라이스를 도입했다.

하지만 또다른 부작용이 발생했다. 마트나 편의점 등이 가격 결정권을 갖게 되면서 이들은 상시할인 판매를 하던 아이스크림 가격을 일괄적으로 100~200원씩 올렸다. 이로 인한 소비자들의 불신이 심해지자 정부는 2011년 1년여 만에 오픈프라이스를 폐지하게 됐다.

A제조업체 관계자는 “예컨대 공급가 1000원이던 아이스크림이 제도 이전에는 500원에 구매할 수 있었다면, 제도가 도입되고 나서는 700원에 판매했다. 물론 당초 공급가격인 1000원보다는 여전히 저렴하지만 기존 할인이 적용된 500원에 비해서는 비싸진 셈”이라고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아이스크림은 할인가격에’ 공식 여전

제도는 폐지됐지만 ‘아이스크림은 할인된 가격에’라는 공식은 시장에 깊게 뿌리내렸다.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아이스크림은 할인 상품이라는 인식이 강하게 자리 잡았고, 판매업체는 여전히 이러한 소비자들의 니즈를 반영해 할인 경쟁을 벌이고 있다. 판매업체를 통해 아이스크림을 팔아야 하는 만큼, 제조업체 또한 저가 납품을 하는 방식으로 판매량을 늘릴 수밖에 없었다.

B제조업체 관계자는 “판매업체인 유통사들은 제조업체에게 갑이다. 이들이 제품을 판매해주지 않으면 제조사는 상품을 판매할 창구가 없어지는 셈”이라며 “오픈프라이스 이후 각종 유통사들은 저가 아이스크림을 원했고 제조사들은 이에 맞게 제품을 제공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됐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제조업체가 선택한 방법은 ‘가격정찰제’였다. 지난 2018년 빙그레, 해체제과, 롯데제과, 롯데푸드 등은 가격정찰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가격정찰제는 제품의 가격을 제조사가 제품에 표시하는 방식이다. 아이스크림의 기준가격을 제시해 소비자의 신뢰를 얻고 낮은 납품단가로 악화한 수익구조를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가격정찰제는 법적 강제력이 없는 만큼 사회 인식을 바꾸기에 더딘 상황이다. 요즘에도 쉽게 저렴한 아이스크림을 구할 수 있다. 무엇보다 제조사가 가격을 동일하게 표기한다고 하더라도 판매업체가 낮은 가격에 판매한다면 실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가격정찰제 도입으로 아이스크림 가격은 계속해서 오르지만 반값 할인이 여전해 제값 주고 사는 소비자만 피해를 본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A제조업체 관계자는 “가격정찰제를 일부 품목에 한해서 시행하고는 있지만 크게 의미가 있어 보이진 않는다. 법적 효력도 없을뿐더러 최근에는 아이스크림 무인판매점 등 저가 마케팅으로 판매를 하는 업체들도 늘고 있어 지켜지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C제조업체 관계자는 “시장 개선을 위해 지속적으로 가격정찰제를 주장하고 있지만 유통사가 갑인 현재의 시장 구조상 아이스크림 가격정찰제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안세진 기자 asj0525@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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