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명절에는 부디 스테이블(stable)하게 해주세요.”
‘스테이블’이란 영어로 ‘안정된’을 의미하는 단어로 간호사들 사이에서는 ‘자신의 근무 시간 동안 사건사고 없이 무탈히 지나간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언제 어떤 환자에게 이벤트가 일어날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병동 근무를 여실히 반영한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로 지난 3년간 지옥 같았던 근무 생활을 보낸 간호사들. 이제는 코로나19 전담병원에서 벗어난 병원도, 여전히 코로나19 환자를 지키는 병원도 존재한다. 어떤 환경이든 간호사들은 명절에도 3교대 근무를 하며 밤낮 없이 환자의 곁을 지키고 있다.
어느덧 위드코로나 시대가 다가오며 확진자는 줄어들고, 병원 속 일상도 조금씩 바뀌어 가고 있다. 지난 코로나19 대유행 시기와 달리 올해 근무 환경은 조금은 편안해질까. 명절 연휴 3교대를 앞둔 간호사들을 대상으로 지난 병동 근무 경험과 앞으로의 바람을 들어봤다.
“이제 코로나 감기처럼 전환됐으면”
강북지역 코로나19 전담병원 8년차 간호사 허주희(가명·32)씨는 지난해 초 내과 병동에서 근무하다가 11월부터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동으로 옮겨갔다. 지난해에는 명절 내내 이브닝(오후 1시부터 오후 10시) 듀티를 받았지만, 올해는 인력이 많은 병동으로 배정받으면서 명절 연휴 중 이틀은 쉬는 날을 받았다.
그가 소속해있던 두 병동 모두 코로나19 환자를 전담으로 돌보는 병동은 아니지만 실상 코로나19 병동보다 더 정신없는 나날이었다. 입원 환자 중 한 명이 코로나19 증상이 있으면 해당 병실 전체와 간호사 모두가 검사를 받아야 했다. 코로나19 감염 확산세가 워낙 심했던 지난 2년간은 음성 확인서를 받고 환자를 입원시켜도 병동 생활 중 확진 판정을 받는 사례가 많았다.
무엇보다 난감한 것은 환자와 보호자의 컴플레인(민원)이다. 한 병실에 확진자가 생기면 해당 병실을 코호트 격리해야 하는데, 불만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 또한 코호트 격리가 들어가면 사전 보호구 준비부터 시작해서 담당 간호사가 최소한으로 접촉하면서 혈당관리, 활력징후 측정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다른 병실은 어떻게 분배할 것인지 등 관리해야 하는 일이 한꺼번에 터지며 업무가 마비되곤 했다.
허 씨는 “특히 나이트(9시부터 다음날 아침 7시) 근무 때나 명절 때 당직의 밖에 없는데 한꺼번에 5명의 환자가 코로나19 양성이 나온 적이 있다. 간호사는 몇 없는데 격리병동을 들어갔다 나와야하고, 또 다른 일반 병실을 봐야하는 상황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멘붕이 온다”면서 “지금은 확진자가 생기면 코로나19 전담병동으로 내려 보내지만, 이마저도 70세 이상인 경우 보호자가 없으면 보낼 수가 없다. 그 새벽에 보호자를 설득해야하는 데 지금 생각해도 머리가 아프다”고 푸념했다.
그는 올해는 부디 코로나19가 ‘감기’처럼 여겨져서 병원 내 업무 마비를 최소화할 수 있길 바라고 있다. 허 씨는 “코로나19 동안 명절에도 본가에 못 내려갔었다. 아무래도 코로나19 환자를 많이 보다보니 가족들에게까지 옮기는 게 아닌가, 항상 찝찝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라며 “올해는 연휴 중 오프도 있고, 코로나19 완화 정책에 따라 점차 병동도 안정돼가고 있다. 조만간 코로나19도 감기처럼 여겨져 가볍게 여겨질 날이 왔으면 좋겠다. 그 전에 이번 명절은 제발 조용히 지나가길”이라며 웃음 지어 보였다.
“코로나 완화되고 더 힘들어…인력 좀 늘려주세요”
7년차에 들어선 간호사 정희진(가명·30)씨는 육아휴직 2년 반 만에 돌아오자마자 코로나19에 직면했다. 병동 분위기에 익숙해지기도 전에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바뀐 전체 시스템에 적응해야만 했다. 해당 병원은 워낙 인력이 없던 터라 모든 병동을 비롯해 수술실, 건강검진실, 내시경실, 응급실 간호사들 모두가 투입돼 매달 돌아가며 병동 순환 근무를 나갔다.
명절 때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연차가 높은 순부터 원하는 대로 근무를 받다보니 나이트 아니면 이브닝 근무를 받았다. 정 씨는 “코로나19 때는 환자가 격리 중인데 도망치거나 병실에 방호복을 입고 혼자 들어갈 수밖에 없는 조건에서 갑자기 코드블루(긴급상황)가 터지는 등 당황스러운 일이 많았다”면서 “근무가 끝나도 아이들에게 혹시나 코로나 바이러스를 옮길까 항상 당직실에서 씻고 집으로 들어갔다”고 말했다.
지금 상황은 그때보다 더 힘들다고 그는 말한다. 올해는 듀티 당 근무하는 인력 수를 줄이고 휴일을 받았다. 쉬는 날이 있어 좋긴 하지만 근무할 때는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바쁘다고 그는 한숨 쉬었다.
그는 “코로나19 전담병원일 땐 코로나19 환자만 보면 됐지만, 지금은 일반 환자를 돌보면서 코로나19 상황에도 대비해야 한다. 병동이 정상화 되면서 인력 수는 확 줄었고 한 간호사가 27명의 환자를 봐야 한다. 이번 명절에도 꽉 찬 입원실을 생각하면 현기증이 난다”고 털어놨다.
그는 올해 꼭 인력이 늘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위드코로나 시대, 정상화될 병원이 제대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간호사 수가 늘어야 한다는 의견이다. 그는 “한 병동에 일할 수 있는 간호사가 11명뿐이다. 간호조무사도 없어 도와줄 수 있는 인력도 없다”면서 “이번 명절은 바쁘지 않게 모두가 건강했으면 좋겠다. 입원도, 환자 이벤트도 없기를 바란다. 퇴원약을 챙겨줄 약국도 연휴에는 열지 않으니 갑작스럽게 퇴원하겠다는 환자도 없기를”이라고 언급했다.
“환자, 보호자가 더 편안한 한 해가 되길”
도봉구 지역 요양병원 5년차 간호사 신정원씨(가명·29)는 올해 명절 내내 데이(오전 7시부터 오후 3시) 근무를 맡는다. 결혼한 윗년차에게 먼저 오프가 돌아가기 때문이다. 지난해 코로나19 시국에도 명절 내내 한번을 못 쉬었다. 그래도 올해는 다소 평안한(?) 병동 분위기를 예상했다.
신 씨는 “재작년과 작년에는 코로나19 재유행으로 면회가 불가능했다. 환자도 보호자들도 예민할 수 밖에 없었다. 환자 상태가 조금이라도 안 좋아지면 보호자들의 컴플레인이 심했다. 환자를 직접 볼 수 없으니 걱정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갈수록 간호사들도 덩달아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워낙 중증환자, 고령 환자들이 많아 코로나19로 인해 사망환자들도 꽤 있어 괴로움의 연속이었다”며 “특히 명절에는 나름 가족끼리 함께하는 특별한 날이다 보니 환자도 보호자도 모두 힘들어했고, 지켜보는 간호사도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올해부터는 예약자에 한해 대면 면회가 가능해졌다. 확실히 병동 분위기 자체도 바뀌었다. 환자의 컨디션도 오히려 좋아지고 보호자들의 컴플레인도 줄어들었다”며 “최근 완화세로 병동 내 코로나19 환자가 확 줄고, 확진자가 생겨도 보건소가 바로 전담병원으로 연계해줘 건강에 이상 없이 전원 되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올해 명절과 더불어, 앞으로도 큰 탈 없이 병원생활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그는 “올해는 부디 코로나19가 일상화되고 새로운 감염병 없이 평안한 한 해가 되길 바란다. 더불어 환자도 보호자도 모두 안심하고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병원 환경이 됐으면 한다”면서도 “4월 병원 인증평가를 앞두고 있어 많이 바빠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 사이 인력이 충원 되서 지금보다는 좀 더 여유로운 근무표를 받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세 명의 간호사 모두 명절날 쉴 수 있다면 무얼 하고 싶냐고 묻자 “맘 편히 자고 싶다”고 말했다. 긴장감의 연속인 병원 근무 생활. 올해는 코로나19에서 벗어나 감염병 걱정 없이 환자, 의료진 모두가 건강한 그리고 ‘스테이블’한 한 해가 되기를 바란다.
박선혜 기자 betough@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