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금융지주 최고경영자(CEO, 회장)의 교체와 함께 공공성 강화를 위한 본격적인 지배구조 개편에 나섰다. 윤 대통령의 측근으로 평가되는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올해 금감원의 주요 과제로 ‘금융회사 책임경영 문화 조성’을 꼽고 제도개선에 나서기로 했다.
7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 원장은 전날 금감원 업무계획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금융회사가 스스로 위험 요인을 시정할 수 있는 책임경영문화 확산을 위해 금융회사 지배구조가 합리적으로 작동되도록 감독 및 소통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은행의 지배구조가 공정하고 투명하게 운영될 수 있도록 은행의 지배구조 구축현황과 이사회 운영의 적정성에 대해 점검하겠다”고 예고했다.
현 정부는 금융회사가 비록 민간 회사 일지라도 민생에 미치는 영향이 크고, 경영 위기 상황에 놓일 경우 정부의 자본 투입을 근거로 공공성이 강한 업종으로 보고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금융시장 안정과 금융산업 육성을 위한 토론회’에서 “(은행이) 자유로운 설립 대신 인허가 형태로 운영 중이고 과거 위기 시에 막대한 공적자금을 투입해 구조조정 했던 경험을 우리는 갖고 있다”며 “은행이 공공재 측면이 있기 때문에 공정하고 투명하게 거버넌스를 구성하는 데 정부가 관심을 보이는 것은 관치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윤 정부의 이러한 정책 기조는 기본적으로 금리 상승기 이자 장사 비판에서 벗어나지 못한 은행권을 두고 국민 불만이 높아진 배경에서 출발한다. 여기에 사모펀드 사태부터 대형 횡령까지 금융사고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 주인 없는 회사인 금융회사의 최고경영자 선임 과정에 개선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에서 근간을 두고 있다.
이 원장은 “우리나라 금융회사의 회장 선임 절차 등이 글로벌 기준에 비추어 미흡한 측면이 있는 만큼, 승계 절차의 공정성, 투명성 제고 등 지배구조 개선 노력을 경주해 나갈 필요가 있다”면서 “은행(지주) 등 금융회사 이사회와 직접 소통을 강화하고, 이사회 운영현황에 대한 실태점검을 추진해 이사회 기능 제고 등 지배구조 개선 노력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할 방안이 있는지 검토하고 필요시 추진하겠다”고 덧붙였다.
금융권에서는 윤 정부의 이러한 방침에 금융지주 회장들의 ‘셀프 연임’ 시대가 막을 내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동안 금융지주 회장들은 연임 과정에서 사외이사를 장악하고, 본인의 연임을 스스로 결정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를 통해 장기 집권하면서 금융사고에는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이 정부의 개편 의지를 불러왔다는 평가다. 앞서 김정태 전 하나금융지주 회장이 4연임 끝에 10년간 회장직을 수행했고,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은 3연임 성공으로 재임 기간이 현재 9년에 달한다.
이에 금융정책 당국인 금융위원회도 금융회사 고위경영진과 임원의 내부통제 책임을 강화하는 ‘금융회사 지배구조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임원 선임 과정의 투명성과 독립성을 높이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다만 정부의 정책 기조를 두고 ‘관치’ 논란도 끊이지 않는다. 특히 정부가 금융지주 지배구조에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한 이후 진행된 금융권 CEO교체 과정에서 관료 출신 이석준 전 국무조정실장과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이 각각 농협금융지주·우리금융지주 회장으로 선정된 점은 관치 우려를 부채질한다. 아울러 상장을 통해 ‘주주’라는 회사의 주인이 있는 상황에서 정부의 무리한 경영개입이 자본시장의 질서를 해치고, 국내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떨어트린다는 지적도 있다.
은행권 관계자는 “은행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요구에 공감하지만, 은행은 엄연히 상장회사인 민간 금융사”라며 “공공성을 강조하는 국책은행과 민간은행의 차이가 있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공공성을 강조하는 정부의 요구와 수익극대화를 강조하는 주주의 요구가 상충하는 부분이 있어 난감한 측면이 있다”고 토로했다.
조계원 기자 chokw@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