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오징어 게임’을 전 세계에서 히트시킨 황동혁 감독은 최근 뜻밖의 선물을 받았다. 한국에선 못 받은 ‘오징어 게임’ 등 연출작 저작권료를 스페인·아르헨티나 단체가 정산해 전달한 것이다. “한 달에 20만원으로 생활하던 시절이 있습니다. 그때 이런 제도가 있었다면 큰 도움이 됐을 텐데…. 좋은 창작자를 배출하려면 이 직업으로 먹고살 만하다는 믿음이 생겨야 합니다.” 9일 서울 여의도동 국회의원회관에서 영상으로 만난 황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이날 한국영화감독조합(DGK)에 따르면 황 감독을 비롯한 영화계 창작자 500여명은 스페인 저작권 관리단체(DAMA)와 아르헨티나 영화감독 단체로부터 각각 저작권료 2억426만5239원과 5460만6513원을 정산받았다. DGK는 해외에서 창작자들에게 돌아가지 못한 저작권료가 해마다 450억원씩 쌓이는 것으로 추정한다. 이 돈이 창고에서 썩는 이유는 저작권료 국외 송금에 필요한 한국의 법적 제반이 부실해서다.
이에 배우 유지태, 영화감독 윤제균·장항준 등 영화인들이 저작권법 개정을 염원하며 한자리에 모였다. 이날 국회의원회관에서 ‘영상저작자의 정당한 보상! 저작권법 개정안 지지 선언회’를 연 영화인들은 “저작권법이 개정돼 해외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창작자들의 당연한 권리가 보장받을 수 있길 바란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이 바꾸려는 법안은 저작권법 제100조. 영상 창작자와 제작자 간 계약에서 특약이 없는 한 창작자가 제작자에게 저작권을 양도한 것으로 추정하는 법령이다. 지난해 유정주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이 ‘창작자가 저작권을 양도했더라도 영상물 최종공급자로부터 이용 수익에 따른 보상을 받을 권리를 보장한다’는 내용의 개정안을 각각 대표 발의했지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프랑스‧스페인‧아르헨티나 등 해외 40여 개국에선 창작자가 국적에 상관없이 해당 국가에서 자신의 작품이 상영된 만큼 OTT 등 플랫폼으로부터 보상금을 받도록 한다. 이들 국가에서 한국 작품이 상영되면 한국 창작자도 보상금을 받을 수 있는 셈이다. 문제는 해외에서 한국 창작자들에게 저작권료를 송금하려 해도, 현행 저작권법상 창작자들의 권리가 양도됐다고 여겨져 저작권료 지급 근거가 없다는 점이다. DGK 측은 “한국영화가 해외로 본격 수출되기 시작한 1990년대 말부터 2015년까지 전 세계에서 상영된 한국영화의 창작자 보상금이 유실됐다”며 “최소 1000억원 이상의 손실이 이미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영화 ‘기억의 밤’으로 DAMA와 DAC로부터 저작권료를 정산받은 장항준 감독은 “쉽게 얘기하자면 아르헨티나와 스페인 측에서 저작권료 개정 응원비를 주신 것”이라고 의미를 뒀다. 그는 “해외에 쌓인 저작권료만 배분돼도 많은 창작자들이 가난과 궁핍에서 해방될 수 있다. 지금 같은 상황이 이어지면 많은 창작자들이 중도 포기할 것이다. 제2의 봉준호·박찬욱·황동혁은 나올 수 없다”고 주장했다. 임순례 감독은 “단돈 100원이라도 창작자에겐 정당한 보상을 인정받는다는 상징”이라고 짚었다.
반론도 나온다. 창작자에게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늘어 산업이 위축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OTT 등 플랫폼과 투자배급사들 입장에선 ‘대가를 주고 저작권을 양도받았는데 창작자들이 추가 보상을 요구한다’는 불만이 터질 수 있다. DGK 측은 “해외 사례에 비춰보면 보상금은 영상저작물을 이용해 얻은 매출의 일정 비율로 산정한다”며 “영상저작물이 성공할수록 보상금이 커지겠지만, 최종공급자가 얻는 이익은 더욱 커진다”고 맞섰다. 황 감독도 “이런 작업(저작권법 개정)이 궁극적으로는 산업 전체에게 좋은 영향을 주리라고 본다”면서 “단순히 감독과 작가를 도와주자는 취지의 개정안이 아니라, 문화선진국으로 향하는 초석을 다지는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