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풍선’ 서지혜 “과감해지는 법 배웠죠” [쿠키인터뷰]

‘빨간풍선’ 서지혜 “과감해지는 법 배웠죠” [쿠키인터뷰]

기사승인 2023-03-04 06:00:09
배우 서지혜. 이음해시태그

제 인생을 살지 못하는 여자. 배우 서지혜는 TV조선 ‘빨간풍선’ 조은강을 이렇게 평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무능력한 가족을 부양하는 조은강은 부자 친구 한바다(홍수현)에게 자격지심이 가득하다. 친구를 부러워하던 그는 기어코 한바다의 인생과 남편까지 탐한다. 폭주하던 그는 모든 걸 잃을 처지에 놓이자 마침내 자신의 삶을 산다. “정말, (조)은강이가 왜 그러고 사나 싶었어요.” 최근 만난 서울 신사동 한 카페에서 만난 서지혜는 쾌활하게 웃었다.

서지혜는 문영남 작가만 보고 ‘빨간풍선’에 출연하기로 결심했다. 대본이 없어도, 줄거리를 몰라도 개의치 않았다. 맹목적인 믿음으로 뛰어든 5개월 동안 그는 수많은 감정을 토해내며 조은강으로 살았다. 문영남 작가와 진형욱 감독이 그에게 요구한 건 오로지 하나였다. “흰 도화지가 되라고 하셨어요. 마음을 싹 비우고 첫 촬영에 임했죠.” 그간 여러 작품을 경험한 서지혜에게도 ‘빨간풍선’은 신선한 경험으로 남았다.

“문영남 작가님과 꼭 한 번 작업하고 싶었어요. 직접 뵈니 하길 잘했다는 확신이 커졌어요. 조은강의 감정 폭이 0부터 100까지라는 말씀에 심장이 뛰었어요. 재미난 도전이었죠. 시청률이 이 정도로 나올 줄도 몰랐고요. 하하.”

TV조선 ‘빨간풍선’ 스틸컷

털털한 웃음에 후련함과 뿌듯함이 묻어났다. 서지혜는 조은강과 정반대 성격이다. 늘 생각에 갇힌 조은강을 보며 이해가 되지 않을 때도 많았단다. “고구마를 먹은 기분이었다고 할까요?” 캐릭터에 대해 거침없이 이야기하는 모습이 시원시원했다. 이런 사람이 어떻게 조은강을 연기했냐는 기자 말에 서지혜는 “그러니까요!”라며 크게 웃었다. 벽에 부딪힐 때마다 그를 잡아준 건 역시나 문 작가와 진 감독이다. 실제 자신과 간극을 메워가며 조은강의 심리를 이해했다. 그가 가장 공 들여 해석한 건 조은강과 한바다의 관계다.

“강이 모이면 바다가 되잖아요. 은강이와 (한)바다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 같아요. 우정도 그런 거 아닐까요? 싸울 때도 있고, 화해하며 의지하지만 어느 순간 또 밉고…. 여러 감정이 쌓이면서 인간관계가 만들어지니까요. ‘빨간풍선’이 그런 미묘한 감정을 보여줬다고 생각해요. 은강이가 악녀인 점도 신선했어요. 주인공은 착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서 짜릿했죠. 생각보다 응원을 많이 받았어요.”

조은강은 자존감이 낮다. 상대적 박탈감에 괴로워한다. 자라온 환경이 그렇게 만들었다. 한바다에게 저지른 악행은 뒤틀린 마음에서 비롯했다. 드라마는 극적인 상황을 배치하며 조은강의 감정을 담았다. 서지혜는 대본 속 조은강을 표현하는 것에 집중했다. 막막할 땐 대본을 읽고 또 읽었다. 시청자에게 캐릭터를 설득하는 것보다 스스로 잘 표현하는 것을 최우선과제로 삼았다. 몰입한 만큼 결말은 더 달가웠다. 조은강은 마지막 회에서 모든 것을 버리고 인생을 다시 시작한다. 늘 남을 위해 희생하던 조은강은 무연고지에 가서야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을 깨우친다. 악녀가 행복해지는 전개를 두고 시청자 사이에선 호불호가 갈렸지만, 서지혜에겐 더없이 완벽한 결말이다.

TV조선 ‘빨간풍선’ 스틸컷

“바다가 은강이를 어떻게 용서하냐는 반응을 봤어요. 저는 용서보다 화해라고 봐요. 보통 친구까리 싸우면 용서보다 화해라고 하니까요. 물론 은강이가 불륜을 저지른 건 큰 잘못이에요. 선망하던 친구를 질투하면서 모든 게 뒤엉킨 거죠. 하지만 바다와 은강이 사이엔 극에 다 담기지 않은 20년 세월이 있잖아요. 결국 두 친구가 화해하며 모든 걸 잘 마무리 지었다고 생각해요.”

대본 속 조은강의 지문엔 유독 불안, 긴장이란 단어가 많았다. “진짜 나쁜 사람이 아니라서 그래요. 악인이었다면 조마조마한 마음도 없었을 텐데….” 조은강을 돌아보는 눈빛에 다양한 감정이 스쳤다. 연기하며 표현 방법과 감정 세기를 매 순간 고민했다. 30대를 마무리하는 작품에서 그는 많은 걸 얻었다. “좀 더 과감해져도 괜찮다는 걸 깨달았어요. 자신감도 커졌죠. 안 해본 걸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도 커졌어요. 액션도 해보고 싶고…. 적응하기 어려워도 좋으니,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더 많은 걸 배우고 싶어요. 예전엔 가늘고 길게 가는 배우가 되길 바랐어요. 이제는 아니에요.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걸어가고 싶어요. 연기만 한다면 어떤 미래든 만족스러울 것 같아요. 저는 늘 연기가 재밌거든요.”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
김예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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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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