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아보육소 3500곳도 부족한 일본, 이제 첫발 뗀 한국 [일함, 돌봄②]

병아보육소 3500곳도 부족한 일본, 이제 첫발 뗀 한국 [일함, 돌봄②]

日 지자체마다 병아보육시설…1일 2000엔
전문가 “병아 보육, 잘 활용하면 여성 사회 진출에 도움”

기사승인 2023-03-19 06:05:01
그래픽=이승렬 디자이너

‘아픈 아이 언제든 맡기세요’ ‘병원동행 서비스 시작’ 


초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지자체가 돌봄 관련 다양한 지원책을 쏟아내고 있다. 정책과 현실의 괴리는 여전히 크다. 육아카페엔 “워킹맘은 아이가 아플 때 어떻게 하나” “아이가 자주 아파서 퇴사해야 하나 고민” “회복기에 있는 아이를 맡길 곳이 없다” 등 아픈 아이 돌봄과 업무 병행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글이 끊이지 않고 올라온다. 

한국보다 저출산 문제를 일찍 겪은 일본도 다양한 육아 정책을 시도하고 있다. 특히 병아 보육(病児保育)에 관한 관심이 높다. 2015년 방송된 TBS 드라마 ‘37.5도의 눈물’은 맞벌이·한부모 가정을 대신해 아픈 아이를 돌보는 병아 보육사를 주인공으로 해 주목받았다.

일본의 병아 보육은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나뉜다. 병아 보육사가 가정에 방문해 아이를 돌보는 방식과 민간아동병원이나 시설 등에서 소아청소년과 의사와 간호사, 보육교사가 잠시 아픈 아이들을 보육하는 방식이다. 

일본 도야마(富山)시에 위치한 '마치나카 케어 센터' 병아 보육실. 연합뉴스

일본의 병아 보육 시설은 사실상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으로 운영된다. 지역별로 조금씩 다르지만, 보육 대상은 대체로 생후 6개월 영유아부터 초등학생까지다. 평일 오전 8~9시부터 오후 5~7시까지 이용할 수 있고, 이용료는 1일 2000엔(약 2만원) 정도다. 점심 도시락이나 간식은 따로 준비해야 한다. 500엔(약 5000원)을 더 내면 식사와 간식을 제공하는 곳도 있다. 

일본 오사카에서 거주하는 한 워킹맘은 커뮤니티에 “병아 보육 시설을 자주 이용했다”며 “거의 모든 시설이 병원과 연계돼 있어 진찰을 받는다. 병명에 따라 종종 입실하지 못하는 일도 있다. 하지만 아픈 아이를 보는 곳이라 그런지 보육사가 전문적으로 아픈 아이를 잘 돌봐준다”고 전했다. 또 다른 워킹맘도 “다행히 주변에 병아 보육 병원이 몇 군데 있어서 자주 이용한다”며 “병아 보육 병원이 없었으면 아마 회사를 그만뒀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종암동에 위치한 서울시 거점 5호 성북권 우리동네키움센터의 일시 돌봄 공간. 우리동네키움포털 캡처

한국에도 아픈 아이 돌봄 시설이 있다. 서울시는 2020년 노원·도봉권에 거점형 우리동네키움센터(거점센터)를 개관한 이후 지난해 10월 성북구 종암동에 네 번째 거점형 우리동네키움센터를 열었다. 올해 구로구와 양천구에 추가로 개관해 6개로 늘릴 예정이다. 현재 성북 거점센터에는 2개 병상이 있으며 간호, 보육 인력이 함께 병원에 동행하거나 아픈 아이에게 쉼터를 제공한다. 센터 관계자는 “수요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며 “2주 전부터 신청이 가능하며 1인당 돌봄 기간에 기한이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아픈 아이 돌봄 서비스가 가능한 센터는 성북권 1곳에 불과하다. 시는 수요가 많은 만큼 아픈 아이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센터를 5곳까지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이와 별개로 노원구도 지난 2020년부터 아픈아이돌봄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국내 병아 보육 시설은 과거에도 있었다. 일부 지자체와 단체 등이 병아 보육 사업을 추진했지만, 수익성 저하와 정부의 재정지원 종료로 쓸쓸히 사업을 종료했다. 지난 2007년 직장 여성들의 육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안성시 안성요양병원 내 어린이간호센터가 개소됐지만, 1일 평균 1.2명이라는 저조한 이용실적 등의 이유로 2009년 문을 닫았다. 2013년 수원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도 병아보육서비스를 제공하는 새날간호보육센터를 설립했으나 운영비와 인건비 확보의 어려움을 겪으며 1년 만에 사업을 접었다. 

수요만 높아선 병아 보육 시설이 유지되기 힘들다. 돌봄과 필수 의료를 위한 정부와 지자체의 꾸준한 지원이 필요하다. 지난 1900년대부터 병아 보육을 시작해 수천개 시설을 보유한 일본에서도 시설 부족은 여전히 풀어야 하는 숙제다. 마키야마 히로에 입헌민주당 의원은 지난 13일 참의원 예산 위원회에서 “병아 보육 시설이 3582곳으로 증가세에 있지만 여전히 수가 적고 예약하기가 힘들다”며 “시설 수를 늘릴 뿐만 아니라 이용하기 쉬운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에 가토 후생노동장관은 병아 보육 안정화를 위한 지원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답했다. 후쿠오카현의 경우 지난 2월 출산·임신 안심 기금을 창설해 병아 보육 무상화를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경기 광명시 한 아동병원.   사진=임지혜 기자

국내에서도 병아 보육 사업을 더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저출생 블랙홀을 벗어나려면 정부와 지자체, 의료계, 교육·보육계가 이 문제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얘기다. 김한석 서울대어린이병원장은 “아픈 아이 돌봄이 해결되지 않으면 아이 낳기 어렵다고 생각한다”며 “병아 보육을 잘 활용하면 여성의 사회 진출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병원과 아동병원 등 거점 병원을 통한 병아 보육도 하나의 해법으로 거론된다. 김 원장은 “병아 보육 시설은 수요자 입장에서 신뢰도와 접근성, 의료·보육 품질이 중요하다. 이런 부분을 해결하지 않는다면 활성화되기 어려울 것”이라며 “제공자 입장에서도 투자하고 싶은 매력이 있어야 하지 않겠나. (아픈 아이를 맡기면) 일어날 수 있는 의료 사고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고 했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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