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금융지주가 정부 지원에 발맞춰 시작한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이 금융권으로 확산되고 있다. 다만 금융권에서는 전세사기 피해 지원에 동참하면서도 우리금융을 향해 불편한 시선을 보낸다. 최근 관료출신 임종룡 회장 취임 이후 우리금융과 정부가 과도한 밀착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시선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금융지주는 지난 20일 오전 국민의힘과 정부가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을 위한 당정협의회 직후 5300억원 규모의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전세 사기 문제 해결을 위해 민간에서 내놓은 첫 금융지원 방안이다.
우리금융의 지원 방안을 보면 새 전셋집을 구해야 하는 피해자에게는 최대 1억5000만원을, 새집을 사려는 이들에게는 2억원 한도로 최장 40년 만기, 5년 거치로 저리 대출해 준다. 경매를 통해 집을 낙찰 받아야 하는 피해자를 위해서는 법원이 정한 감정가액 범위 안에서 100% 부동산경매 경락자금대출을 2억원 한도로 제공한다.
우리금융의 지원 방안은 당정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방안 발표와 1~2시간의 시차를 두고 나았다. 지원 내용도 피해자들에게 저리의 자금을 공급하겠다는 당정의 지원방안과도 일맥상통한다. 이는 결과적으로 다른 금융지주나 은행의 지원을 압박하는 효과로 작용했다.
금융지주 한 관계자는 “발표 시점과 내용이 너무 공교롭다”며 “이는 정부가 금융권에 보내는 일종의 메시지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은행 한 관계자도 “우리금융의 회장을 생각할 때 당국과 사전 협의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고 토로했다.
그 결과 우리금융 발표 다음날 신한은행과 국민은행이 전세사기 피해자를 대상으로 우리금융과 동일한 수준의 금리 감면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하나은행도 같은날 전세사기 피해자의 이자를 1년간 전액 면제해주는 지원방안을 발표했다. 농협은행도 전세 피해자 지원을 위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전세사기 문제가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고 있는 만큼 피해자 지원에 이견이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우리금융과 정부의 관계를 두고 우려 섞인 반응을 보인다.
우리금융 임 회장은 앞서 박근혜 정부에서 금융위원장을 역임한 경제관료 출신이다. 그가 우리금융 회장으로 선임되기까지 ‘관치금융’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우리금융의 각종 금융사고에 조직 쇄신이 필요하다는 명분이 설득력을 얻으면서 그는 성공적으로 회장에 올랐다.
사모펀드 사태로 소송전까지 벌이며 다투던 우리금융과 금융당국은 임 회장이 취임한 이후 급격히 가까워지고 있다. 우리금융 전임 회장의 퇴진을 우회적으로 압박하던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임 회장 취임 이후 우리금융을 두 차례나 방문했다. 대장동 의혹과 관련해서는 임 회장과 협력관계를 강조한다.
금융권에서는 정부 규제 영향을 크게 받는 금융산업의 특성상 특정 금융회사와 정부의 밀착 관계가 시장 경쟁을 해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금융지주 한 관계자는 “임 회장 취임 이후 우리금융과 정부의 관계가 좋아지고 있다”며 “이러한 관계가 금융권에 대한 관치의 통로나 정책적 이득으로 연결되어서는 안된다”고 밝혔다.
우리금융 관계자는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이 정부와의 사전 협의를 통해 결정된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임종룡 회장 취임 이후 당국과의 관계는 개선되고 있다”고 말했다.
조계원 기자 chokw@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