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 불안에 쾌감”…가짜 범죄 예고하는 심리는

“시민들 불안에 쾌감”…가짜 범죄 예고하는 심리는

기사승인 2023-08-08 06:05:02
흉기난동이 예고된 지역과 목록이 정리된 사이트. 해당 사이트 캡처

일상 공간에서 ‘묻지마 범죄’가 연이어 발생하는 가운데, 온라인에 다음 범죄를 예고하는 이들이 다수 등장해 시민들의 불안을 자아내고 있다. 이들 중 일부는 스스로 만족을 위해 범죄 예고 글을 올리는 것으로 분석됐다.

7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전 7시 기준 총 187건의 살인 예고 글 작성자를 입건해 수사 중이다. 하루 만에 33건이 늘었다. 신림동 흉기 난동 사건이 발생한 지난달 21일 직후 7건에 그쳤지만, 3일 경기 분당 서현역 사건 이후 급증했다.

전문가들은 온라인상에 올라오는 범죄 예고 글이 실제 범죄로 이어질 수도 있지만, 심리적 만족을 얻으려는 허위 예고글도 많다고 분석했다. 배상훈 프로파일러는 “범죄를 계획하는 이들은 글을 올리는 등의 소통 활동을 하지 않으려 한다”라며 “물론 서현역 피의자가 과거 글을 올린 적이 있지만, 최근 범행 전에는 예고글을 올리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두려움을 불러오는 글을 쓰는 게 온라인에서 일시적인 사회 현상이 된 것 같다”고 현 상황을 분석했다.

심리적 만족감을 위한 글도 여러 유형으로 나뉜다. 하나는 스스로 재미, 쾌감 등을 느끼려는 목적의 글이다. 김상균 백석대 경찰학과 교수는 “시민들이 예고글을 보고 느낄 불안, 두려움을 상상하는 것 자체로 쾌감, 희열 등을 느낄 수 있다”며 “자신이 작성한 글이 사람들에게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데서 오는 통제감이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자신의 인정 욕구를 충족하는 것 역시 허위 예고글을 올리는 이유 중 하나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스스로 열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타인들의 반응을 보며 인정받는다는 느낌을 받으려는 측면도 있다"고 지적했다. 자신이 올린 범죄 예고 글에 부정적인 댓글이 달려도 자신을 비판하는 게 아니라 인정하는 걸로 생각하는 왜곡된 심리라는 진단이다.

지난 6일 서울 지하철에서 테러 사건이 발생한 걸로 오인한 이들이 도망치며 혼란이 빚어진 열차 내 모습. 엑스(X·구 트위터) 캡처

범죄 예고글은 실제 범죄로 이어지지 않아도 시민들을 불안하게 한다. 지난 6일 서울 지하철에서 아이돌 그룹 BTS 멤버 슈가의 SNS 방송을 보던 승객이 소리를 지르자, 테러로 오인한 이들이 도망치며 혼란이 발생해 부상자가 생기기도 했다.

흉기를 들고 거리를 돌아다니는 이들이 체포된 사건 역시 두려움을 키우는 이유다. 지난 4일 흉기를 소지한 채 서울시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체포된 20대 남성은 온라인에 범죄 예고글도 올렸던 것으로 파악됐다. 7일 오후 대구시 동구 동대구역 일대서 흉기를 들고 다니던 30대 남성이 체포됐다. 

대전시에 거주하는 이모(33)씨는 최근 온라인에서 발견한 범죄 예고글을 가족이나 친구들과 자주 공유한다. 이씨는 “최근 사건들을 보며 무서움을 많이 느낀다”며 “배우자가 강남이나 잠실 쪽으로 일하러 갈 때면 평소보다 더 자주 연락한다”고 말했다. 

류모(29)씨도 큰 도움이 안 된다고 느끼지만, 범죄 예고글을 꾸준히 찾아본다. 류씨는 “괜히 외출이 꺼려지고 혹시 범죄 대상이 되지 않을까 조마조마하다”며 “이런 일이 진짜로 일어날지 의문이 들면서도 무서움을 느낀다. 본 내용을 주변 사람들에게 공유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성남시 분당구 오리역에서 흉기 난동을 벌이겠다는 범행 예고글에 대응해 경찰이 순찰을 돌고 있다.   사진=임형택 기자

이는 범죄 예고글 맞춤형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경찰 특공대와 장갑차를 배치하는 지금의 대응 방식이 오히려 허위 예고글을 올리는 이들을 자극할 수 있다는 얘기다. 임 교수는 “장갑차를 배치하는 등 적극 대응하는 방식이 오히려 ‘내가 정말 대단한 사람이구나’, ‘나는 공권력에 저항하는 사람’이라는 심리를 키울 수 있다”며 “온라인상 예고글, 가짜뉴스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컨트롤타워의 연계를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영식 서원대 경찰학부 교수 역시 “거짓일 가능성이 높은 예고글 전부를 진짜처럼 과잉대응하면 사회적으로 더 위축될 수 있다”라며 “객관적 사실을 정례적으로 브리핑을 해야 한다. 범죄 예고글은 물론, 이를 조장하는 댓글까지 빠르게 삭제하는 등의 방식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높아진 불안에 대응하는 방법으로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장소를 일정 기간 피하라고 제안했다. 김상균 교수는 “이 같은 범죄의 특성은 언제, 어떻게 일어날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것”이라며 “당분간은 사람이 많이 몰리는 장소를 피하는 게 최대한의 방어 행동”이라고 강조했다.

위급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을 알고 익히는 것 역시 중요하다. 스스로 미리 가상의 방어 전략을 세우면, 범죄 예고글 때문에 나타나는 막연한 불안감과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다는 얘기다. 임 교수는 “스스로 이 같은 상황에 어떻게 행동할지 생각해두면 좋다”며 “주변 사람이 이상 징후를 보였을 때, 어떻게 대피하고 신고할지 등 방법을 알고 익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채리 기자 cyu@kukinews.com
유채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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