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권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등 각계에서 연이어 금융업권을 겨냥해 맹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고금리에 따른 민생경제 악화의 원인이 시중은행을 비롯한 금융사들의 책임이 크다며 이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다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이에 4대 금융지주(KB·신한·하나·우리)는 지난 주말간 긴급 회의를 거친 뒤 연이어 ‘상생금융’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다만 이같은 상생 금융 방안들은 성실하게 상환한 차주들의 형평성 문제도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7일 금융권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들어 은행권을 향해 날 선 비판을 이어가고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일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은행의 독과점 시스템을 우리가 어떤 식으로든지 간에 자꾸 경쟁이 되게 만들어야 한다”며 “정부가 그냥 방치해서는 절대 안 된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30일 국무회의에선 “마치 은행의 종노릇을 하는 것 같다”는 한 소상공인의 발언을 전하는 형식을 빌어 은행권을 강하게 질타하기도 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은행 때리기에 합류했다. 이 원장은 회계법인 CEO 간담회 이후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3분기 영업이익을 비교하면 은행권 전체 이익이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차를 합친것 보다 크다”며 “반도체나 자동차 분야와 같이 혁신하는 기업들도 이런데 과연 은행산업이 혁신을 해서 60조원의 이자이익을 얻게 된 건지 판단해볼 필요가 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 원장은 은행이 사회적 역할에 소홀하다고 지적했다. 이 원장은 “2020년 이후 600개 정도의 은행 점포가 사라졌다. 점포가 사라진 지역은 대부분 노인이나 금융소외층이 이용하는 접근성 떨어지는 곳”이라며 “지금처럼 어려운 시기에 금융소외층과 관련해 점포폐쇄 정책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지만. 올해 상반기 KB국민은행은 60개가 넘는 점포를 폐쇄했다”고 꼬집었다.
이처럼 은행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자 이를 의식한 금융지주들은 대응에 나섰다. 4대 금융지주(KB·신한·하나·우리)들은 지난 주말 회장 주재의 긴급회의를 거친 뒤 ‘상생금융’ 지원방안을 연이어 발표하고 있다.
가장 먼저 지원방안을 발표한 곳은 하나금융이다. 하나금융은 3일 고금리 장기화와 경기둔화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상공인과의 동반성장을 위해 총 1000억원 규모의 금융 지원 대책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지원 대상은 개인사업자 고객 30만8500명으로 △이자 캐시백 △에너지생활비 △통신비 △컨설팅 지원 등의 소상공인 금융지원 프로그램이 오는 12월부터 순차적으로 진행될 전망이다.
하나금융 다음으로 신한금융이 총 1050억원 규모의 상공인·자영업자 상생 금융 패키지를 발표했다. 신한은행은 230억원을 들여 정책 대출 상품을 이용하는 소상공인·청년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금리를 2%포인트 낮추는 ‘이자 캐시백’을 실시하고, 중소 법인을 상대로 시행해 온 ‘상생금융 지원 프로그램’을 1년 연장하면서 지원 대상을 개인 사업자까지 확대하기 위해 610억원을 지원한다. 이에 대해 진옥동 신한금융 회장은 “상생금융이 일회성 구호로 끝나선 안 된다”며 “앞으로 민생 안정을 위한 정부 정책에도 적극 참여하며 기업시민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금융은 임종룡 회장 주재로 전 계열사 대표가 ‘상생금융 긴급대책’ 회의를 가진 뒤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청년 등 금융 취약층에 지원을 추가하는 상생금융 패키지를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기존 대출자들에게 저금리 대환 대출 공급을 늘리고, 소상공인에게는 이자 면제까지 고려하고 있다. 자영업자 입출식 통장에 특별 우대금리도 도입할 예정이다. 우리금융은 “계열사별로 실효성 있는 상생금융 확대 방안을 검토한 후 발표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KB금융은 주말 회의를 거쳐 주요 상생 방안을 공개할 계획이다. KB국민은행 관계자는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을 포함해 금융소비자들과의 상생을 위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단계”라고 설명했다.
현재 금융사들이 ‘상생금융’ 지원에 나선 것은 올해 들어 두 번째다. 앞서 올해 상반기 윤 대통령의 ‘은행 돈 잔치’ 발언이 전 금융권의 상생금융 동참으로 이어졌던 바 있다. 금감원 집계에 따르면 은행권(9개), 여전업권(7개), 보험업권(2개)이 올 3~8월 내놓은 상생금융 대책 규모는 총 1조1479억원, 실제 집행 실적은 4700억원 규모에 이른다.
다만 이같은 상생금융에 대한 불만섞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이어진 고금리 기조는 은행 입장에서 리스크가 더해지는 것인데, 이자이익과 별개로 큰 부담을 떠안고 영업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라며 “불만을 말하기 무서운 상황이지만, 은행이 고금리·고물가를 조장한 게 아닌데도 마치 은행에만 책임이 있는 것처럼 취급되는 것은 억울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다른 은행권 관계자는 “최근 금융당국이 예금금리 인상 경쟁에는 제동을 걸고 가계대출 수요 억제를 위해 대출금리 상승을 유도하면서 예대마진을 키운 측면도 있다”며 “예대마진이 높다고 은행에 책임을 뒤집어씌우는 건 정책 일관성이 떨어지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지적했다.
이어 “더 어려운 계층을 돕는다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고금리 고물가 속 더 열심히 노력해 이자를 갚아온 사람은 혜택이 없는 것도 아쉬운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김동운 기자 chobits3095@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