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년 가까이 오너 리스크에 휩싸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오는 26일 ‘제일모직-삼성물산의 부당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 선고를 앞두고 있다. 길어지는 총수의 사법리스크가 삼성의 발목을 잡고 기업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우려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현재 바른사회시민회의를 맡고 있는 조동근 명지대학교 경제학과 명예교수에게 이재용 삼성의 사법리스크에 대한 생각을 들었다.
-삼성이라는 기업은 한국 경제에 어떤 의미를 가지나.
삼성전자는 한국에서 돈이 흘러가는 연결 통로다. 지난 2022년 기준 삼성전자의 경제가치분배액이 281조4000억원이다. 경제가치분배액은 협력사, 인건비, 배당금, 공익사업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에게 돌아간 돈이다. 삼성은 2022년 협력사 구매 비용으로만 219조8000억을 사용했다. 이러니 삼성이라는 통로가 막히거나 끊어져 버리면 곤란하다. 기업에 대한 개인 기호를 떠나 그룹이 사라지면 한국 경제가 돌아가지 않는 곳이 됐기 때문이다. 삼성은 글로벌 경쟁력을 통해 국력을 키워나가는 그룹이다. 그러나 현재는 엉뚱한 데에 발이 묶여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삼성도 불경기를 피해가지 못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지난해까지만 하더라도 코로나19로 인한 타격을 완벽하게 회복하지는 못했다. 미국 인플레이션 현상으로 전 세계적으로 경제가 좋지 않았다. 그 속에서도 삼성은 생산을 줄이고 최대한 가격을 유지하는 정책을 펴며 기업 적자를 최소화했다. 그렇게 겨우 위기를 넘긴 상황이다. 오는 26일에 이 회장 1심 선고가 어떤 식으로 나오든 대법원 확정판결까지는 최소 2~3년이 더 걸릴 가능성이 크다. 지정학적 위험이 갈수록 커지는 엄혹한 글로벌 산업 환경에서 오너 경영체제의 사법 리스크가 더 길어진다면 삼성의 미래는 더욱 불확실성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오랜 기간 이어진 이재용 회장의 사법리스크가 삼성에 어떤 영향을 줬나.
지금 삼성은 ‘지휘자 뺀 오케스트라’에 비유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판단을 내려 줄 총수가 법정 출입에 시간을 뺏기며 경영에만 집중하기 어려운 상황이지 않나. 굉장히 머리 아픈 일 아니겠는가. 게다가 국제적으로 이미지까지 안 좋아지고 있으니 더 막막하다. 재판이 길어지며 이 회장은 법원에 백 번 넘게 출석했다. 그러나 지금 해야 하는 일은 법원과 다투는 것이 아니다. 세계적인 CEO들과 경쟁해서 기업을 키우는 일을 해야 한다. 한시가 급하다. 정확한 때에 정확한 지시를 하는 것이 총수의 역할이다. 그러나 지금 이 회장의 시간이 잡아먹히고 있다.
-합병시점 등을 사전 준비하고 시세를 조종했다는 것이 검찰의 핵심논리인데.
핵심만 말하자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비율은 이 회장에게 유리하게 적용되지 않았다. 부당합병이 성립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기업 합병은 자본시장법을 따르기 때문이다. 자본시장법 시행령에는 상장사의 합병비율은 비율이 명시되어 있다. 시행령 176조 5항에 따르면 이사회 결의나 합병계약 체결일 중 앞선 날의 전일을 기준으로 △1개월 종가 평균 △일주일 종가 평균 △최근 일 종가를 산술 평균해 계산한다. 그러나 일각에선 삼성이 삼성물산에 불리하도록 호재를 늦게 공시하고 악재를 터뜨렸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지난 2015년에 카타르 복합화력발전소 공사를 수주한 것을 두고 일부러 공시를 늦게 발표해 호재를 숨겼다는 것이다. 터무니없는 이야기다.
-제일모직 주가를 높이기 위해 의도적으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가치를 분식회계로 높였다는 의심도 있다.
일부 시민단체는 이 회장이 회계분식을 통해 이익을 부풀리고 그 이익에 기대서 상장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 애시당초 삼성바이오로직스는 흑자를 낼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바이오 기업이 호재를 내놓기는 쉽지 않다. 자본잠식을 피하고자 회계 기준을 고의로 변경했다는 금감원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적자 상태임에도 미래 가치 때문에 높은 주가를 유지했다. 따라서 자본잠식 상태가 알려지더라도 주가가 폭락하지 않을 것이다. 위험을 무릅쓰고 분식하느니 증자를 통해 자본금을 보충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적자임에도 높은 주가가 유지되는 미래 가치를 가진 기업이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이익을 분식하려 하겠나.
-글로벌 경제 상황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삼성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렇다. 글로벌 트렌드는 굉장히 빨리 바뀐다. 삼성이 다른 글로벌 기업에 뒤처지지 않으려면 빠르게 달려야 한다. 지금 까딱 잘못하면 TSMC와 인텔과의 경쟁에서도 밀릴 수 있다. 게다가 지금은 이재용 회장이 CEO 자리에 오른 지 10년 차다. 삼성의 성장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서는 제3자 간섭이 없어야 한다. 무엇보다 삼성뿐만 아니라 법이 기업에게 이렇게까지 빡빡하게 할 필요가 있나 싶다. 우리나라 재벌은 비리나 부패의 온상으로 비춰지는 경우가 많다. 기업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고 관련 법 체계를 잘 몰라서 그렇다. 기업은 내부적으로 굉장히 까다로운 절차와 과정을 통해 의사결정을 내린다.
-기업하기 좋은 경영환경을 만들기 위해 선제돼야 할 것은 무엇인가.
한국은 결코 기업 경영이 수월한 나라가 아니다. 경영 이슈가 터질 때마다 사람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지 않나. 법이나 기업 행보를 잘 아는 전문가들이 기업을 견제하는 것은 당연히 필요하다. 그러나 기업의 의사결정 영역을 더 넓게 인정해 줘야 한다. 결국 선택은 기업의 우두머리인 총수가 해야 하는 것이다. 이를 더 많이 존중해 주어야 하지 않겠나.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경영 순리를 잘 모르는 국회의원들이 “이재용이 기업 가치를 5조원 이상 부풀렸다”고 주장해서 떠들썩했다. 이 또한 지분 가치 계산의 오류다. 논리적으로 타당하지 않은 주장으로 여론을 흐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삼성이 사회적 의무를 이행할 환경은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기업은 돈을 버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돈을 벌어들여서 그로 인한 부가가치를 만들어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 삼성이 가진 사회적 의무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돈으로 주주에게 배당도 하고 일자리도 만들어서 경제를 활성화하는 것이다. 단순하다. 결국 국력을 키우려면 글로벌 기업의 영향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국가가 기업 성장을 가로막고 있는 것일 수 있다. 삼성은 기업으로서 기회를 엿보고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국가는 삼성이 의무를 다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러려면 CEO가 경영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겠나. 총수 사법리스크가 길어지면 해외에서도 문제가 많은 그룹으로 낙인찍힐 수 있어서 한국 경제에도 좋을 것이 하나 없다. 간접 손실은 우리 국민들이 다 지는 것이다. 왜 자꾸 기업을 가지고 도박을 하나.
심하연 기자 sim@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