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핵심산업 기밀 유출 범죄에 대해 간첩죄 적용 범위와 처벌 기준 등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18일 국회 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는 ‘국가안보 직결되는 국가기밀 탈취-외국 간첩 전성시대, 이대로 괜찮은가’를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다. 토론회는 김영주 국회부의장을 비롯해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이상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장이 공동주최하고 쿠키뉴스가 주관했다.
이상헌 위원장은 인사말에서 “국가정보원 산업기밀보호센터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지난 2003년부터 2023년 7월까지 탈취된 첨단 기술 552건의 피해 규모는 100조원이 넘어섰다”며 “국가 안보 차원에서 산업기술 보호를 위한 강력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도 처벌 수위와 기준을 높여야 한다고 전했다. 홍 대표는 “세계적으로 정보전쟁과 기술 전쟁이 치열해지면서 한국의 전문인력과 기술을 탈취하려는 시도가 늘고 있다”며 “국가기밀 탈취 국가 기술 안보를 위협하는 수준으로 심각해진 만큼 처벌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주 더불어민주당 국회부의장 의원은 “현재 국회에서 간첩죄 적용 객체를 적국에서 외국으로 확대하는 개정논의가 진행되고 있다”며 “개정안이 하루빨리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국익을 지킬수 있어야 한다”고 전했다.
이번 토론회를 주관한 쿠키뉴스의 김지방 대표는 “시대가 바뀐 만큼 새로운 시각에서 법 제도를 살펴야 한다”며 “현행법의 솜방망이 처벌 규정이 범법 행위를 부추긴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며 법 개정 필요성을 언급했다.
이노공 법무부 장관 직무대행 차관도 “변화된 사회상과 현행법 사이 간극을 해소할 필요가 있다”며 “우방국·적국을 떠나서 간첩행위를 규율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좌장을 맡은 지성우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국가안전보장을 위한 국가기밀 보호, 형법 98조 개정의 필요성’을 주제로 발제를 맡아 형법 개정 필요성을 지적했다.
‘간첩’이란 한 국가·단체의 비밀이나 상황을 몰래 알아내 경쟁 혹은 대립 관계에 있는 국가나 단체에 제공하는 사람을 말한다. 형법 제98조에 따르면 ‘간첩’은 ‘적국을 위하여 간첩하거나 적국의 간첩을 방조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현재 한국의 적국은 북한이다.
지 교수는 “형법상 간첩죄는 적국이 아닌 우방국 및 비국가행위자의 간첩 활동에 대해서는 처벌 규정이 적용될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고 현행법의 문제를 짚었다. 처벌 대상이 적국에 한정되기 때문에 많은 처벌 공백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어 “무엇보다 간첩행위 구성요건이 매우 의미가 다양하고 불확실하다”며 ‘누설’이라는 기준이 엄격해 판례에서 처벌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지 교수는 “국가기밀을 탐지하고 수집하는 행위만을 간첩죄로 처벌하게 된다면 국가의 외적 안전에 대한 여러 유형의 침해 행위에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첨단산업 기술 유출 시 처벌이 너무 약하다는 점도 꼬집었다. 지난 2019년부터 2022년까지 산업기술보호법·부정경쟁방지법 위반에 대한 법원 선고 445건 중 실형은 47건(10.6%)에 불과했고, 그마저도 대부분 집행유예 선고가 내려졌다.
지 교수는 처벌할 수 있는 기술 유출 범위를 확장해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적용 범위를 확장해 최대한 엄격하게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법규 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미국, 영국, 독일 등 해외 사례도 언급했다. 미국은 일반법인 형법으로 간첩행위를 규제 및 처벌하고 있다. 외국 세력에 의한 산업스파이 활동의 경우 국가안보에 관한 문제로 인식하고 ‘경제간첩법’ 등 특별법을 제정해 시행하고 있다.
지 교수는 “미국은 국방기밀뿐 아니라 국방정보도 간첩행위의 객체로 삼고 있고, 독일은 간첩행위의 상대방을 ‘외국 및 권한 없는 자’로 하고 있다”며 “한국 형법과는 달리 적국에 한정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한국과 다르다”고 전했다.
이어 “해외 사례를 참고해 처벌 규정 및 기준 등을 바꿔야 한다”며 “이를 통해 국가 안보에 공백을 주는 모든 행위 또는 위해를 가하는 모든 행위자에 대해서 해외처럼 강한 처벌을 내리는 규정을 신설해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심하연 기자 sim@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