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원자력발전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이어가는 가운데 신재생에너지 분야를 리드하던 태양광 산업은 글로벌 흐름에 뒤처지며 주춤하는 모양새다. 급기야 산업 내부에선 정부와 발전사업자 간 갈등이 심화될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수출입은행의 ‘2023년 하반기 태양광산업 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태양광 시장 신규 설비는 전년 대비 15% 감소한 2.5~3.0GW(기가와트)가 설치된 것으로 집계됐다. 올해는 2.5GW 내외에 그칠 전망이다.
글로벌 태양광 설치량이 지난해 400GW를 기록하고, 올해는 이보다 많은 510GW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2020년 4.6GW로 정점을 찍은 국내 태양광 설치량은 현 정부가 2030년 신재생에너지 발전량 30%를 21.6%로 현실화하고 태양광-풍력 발전량 비율을 87대 13에서 2030년 60대 40으로 조정하면서 다소 둔화되는 흐름이다.
신규 발전사업 허가가 전력계통 포화, 국토 면적 한계 등을 이유로 2030년 이후로 미뤄지는 현 상황을 고려하면 앞으로도 설치량은 연평균 2GW대에 머무를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가 글로벌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은 높은 발전단가 때문이다.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의 고정형 태양광 발전단가는 1MWh(메가와트시)당 78~147달러다. 인도(26~37달러), 중국(31~54달러)은 물론 미국(52~79달러), 일본(52~101달러)와 비교하더라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수출입은행 관계자는 “국내 태양광 발전단가가 글로벌 수준으로 낮아지지 않으면 수요 확대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신재생에너지와 기존 에너지의 발전단가가 동일해지는 ‘그리드 패리티’를 달성할 정도가 돼야 하며 보조금에 의존한 성장은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 시범운영 앞둔 재생에너지 입찰제도, 손실 우려 목소리
발전단가 뿐만 아니라 국내 산업 안에서의 내홍도 만만찮다.
정부는 신재생에너지 산업이 가장 활발한 제주도를 거점으로 출력제한 등 재생에너지 공급 과잉을 막기 위해 이달 29일 재생에너지 입찰제도를 시범운영한 후 오는 6월부터 전국 확대할 계획을 밝힌 바 있다.
기존 전력도매시장 입찰 경쟁에 재생에너지를 포함, 낮은 가격 순으로 낙찰되고 높은 가격의 발전기는 출력제한을 받는 시장 원리가 도입되는 것이다.
재생에너지 출력을 조절해 안정적인 공급체계를 유지하고 가격기능을 점차 강화한다는 복안이었지만, 태양광 발전사업자들은 신재생에너지가 아직 자리 잡지 못한 상황에서 원전·화력 등 기존 사업자들과의 경쟁이 갑작스런 수익성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며 반발했다.
특히 재생에너지 공급량 증가로 지난 설 연휴 전력거래단가(SMP)가 세 차례 ‘0원’을 기록하는 현상이 발생하자 반발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SMP가 0원이라는 것은 원전·LNG·석탄 등 기존 중앙급전발전원이 계통 유지를 위해 최저 수준으로 운영하는 필수계통유지운전(머스트런)을 제외하고는 연료비가 0원인 재생에너지가 전력생산 전부를 담당했다는 의미다.
재생에너지 공급이 많아질수록 SMP가 0원인 시간대가 늘어나게 되고,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 혜택이라도 받기 위한 태양광 발전사업자의 마이너스 요금 투찰이 증가하면서 이른바 출혈 경쟁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대한태양광발전사업자협회 관계자는 “발전사업자들이 예측 가능한 범위 내에서 손실에 대해 미리 고지하고 그에 대한 보완책을 마련해 충격을 줄여줬어야 하는데 갑자기 시장의 논리를 따르라고 하면 버틸 수 있는 사업자가 없을 것”이라면서 “앞으로 제주도에 1GW 정도의 태양광 발전설비가 증량될 예정인데 단순히 입찰제도 뿐만 아니라 ESS(에너지저장장치) 등 인프라와 신규 사업자 유입의 완급 조절 등이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관계자는 이어 “그간 기획단계부터 시장 도입에 이르기까지 발전사업자 의견을 들어보는 설명회 등 자리가 하나도 없었기에 실제 사업을 영위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한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태양광발전사업자협회 등 300여 명의 발전사업자들은 이러한 내용을 담은 탄원서를 산업부·전력거래소 등에 제출한 상황이다. 일부 협회 회원들은 지난 19일 ‘제주 시범사업 사업자 간담회’가 열린 제주상공회의소 앞에서 입찰시장 및 출력제어에 대한 항의시위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전력거래소 관계자는 “3개월 시범운영을 거치면서 시장가격이나 여러 변수에 대한 실제 데이터를 확보해 사업자분들에게 공개할 예정이고, 미비한 점에 대해서는 전문가를 포함한 간담회를 지속 개최해 보완할 예정”이라면서 “수익성 부분에 대해서는 시범운영 기간에도 현재 방식대로 정산이 진행될 것이기 때문에 사업자 측면에선 당장의 리스크는 없다”고 말했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이정필 소장은 “통상 선진국에선 대형 발전사업자 중심의 흐름을 막기 위해 재생에너지 비중이 어느 정도 안정권까지 높아진 뒤 입찰 또는 시장 제도를 활용했는데, 우리의 경우 선진국 대비 재생에너지 비중이 낮은 상황에서 시장 논리를 바로 적용한다면 이러한 우려들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본다”면서 “입찰제도도 보완해야겠지만 안정적인 재생에너지 확대 방안 마련을 병행하면서 교정해가는 것이 옳은 방향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재민 기자 jaemin@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