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전공의에 대해 면허 정지와 고발 절차에 착수하자 현직 의과대학 외과 교수가 사직서를 제출했다. 일선 의대 교수가 전공의 집단행동 이후 사직서를 제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윤우성 경북대병원 이식혈관외과 교수는 지난 4일 자신의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외과 교수직을 그만둔다.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이미 오래 전 번아웃(탈진) 됐고 힘만 더 빠진다”며 사직의 변을 밝혔다. 윤 교수는 동맥폐색질환, 정맥질환, 하지정맥류, 신장이식, 투석도관 등의 진료를 해왔다.
윤 교수는 “이번 기회를 통해 바쁘게 앞만 보고 살아온 제 인생을 뒤돌아보고, 잊고 지내온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고 소홀했던 가족들과 함께하는 일반적인 삶을 살아보려 한다”고 적었다. 이어 전공의들의 의료 현장 이탈에 대해 “장밋빛 미래도 없지만 좋아서 들어온 외과 전공의들이 낙담하고 포기하고 있고, 우는 아이한테 뺨 때리는 격으로 정부는 협박만 하고 있다”면서 “현 의료 현실에 책임져야 할 정부, 기성세대 의사들인 우리가 욕먹어야 할 것을 의사 생활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전공의가 다 짊어지고 있다”고 호소했다.
윤 교수는 정부가 의사들을 업무개시명령으로 통제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 의료문제에 대해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토론이 이뤄지지 않고 정부는 여론몰이에만 몰두해 있는 상황에서 합리적 결론과 합의는 기대하기 어렵다”며 “이런 상황에 보호막이 되어주지 못하고 뒤에 숨어서 ‘반대한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어떻게든 잘 해결되길 수동적으로 기다리기만 하는 모습이 너무 부끄럽다”고 사직 이유를 밝혔다.
경북대가 현 110명인 의대 입학생을 140명 늘려서 250명으로 교육부에 증원 신청한 데 대해선 “대학 본부에서 소위 학자라는 사람들이 본질과 현실 파악에 대한 노력은 없고 해당 정책의 결과를 예측할 생각도 없다”며 “해당 학과의 의견을 무시한 채 눈앞에 보이는 이익만 바라보고 정부 정책을 수용하며 이것저것 요구하는 모습은 할 말을 잃게 만들어 뭐라고 언급할 수도 없다”고 전했다.
전공의, 전임의에 이어 교수 이탈 움직임은 확산될 조짐이다. 배대환 충북대병원 심장내과 교수도 이날 SNS를 통해 사직 의사를 밝혔다. 배 교수는 “더 이상 필수의료를 하지 않겠다는 인턴, 전공의 선생님들이 사직을 하고 나간다고 하는데 사직하는 것을 막겠다고 면허 정지 처분을 하는 복지부의 행태나 교육자의 양심이라곤 눈곱만치도 없는 총장들의 생각 없는 의대 정원 숫자 써내는 행태에 분노를 금할 길이 없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심장내과의 꿈을 가지고 살았던 14년의 시간, 모래알 사이사이를 단단하게 고정해 주고자 지냈던 심장내과 전문의로서의 3년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며 “동료들과 함께 진료를 이어나갈 수 없다면 동료들과 함께 다른 길을 찾도록 하겠다”고 적었다.
김대중 아주대병원 내분비대사내과 교수는 이날 SNS에서 대학본부의 의대 정원 증원 신청을 지적하며 교수 사직 현실화를 예견했다. 김 교수는 “기초교수도 연구가 더 중요하고 논문 쓰는 게 더 중요하다. 임상교수도 진료가 더 중요하고 승진을 위한 논문이 당장 급하니 교육은 아주 작은 시간밖에 쓰지 않는다”면서 “대학 교수인데 학생 강의가 중요도 높게 자리매김하지 못했던 가운데 갑자기 10명도 아니고 50~100명씩 늘린다는 건 사실상 멘붕”이라고 언급했다.
배 교수의 사직에 대해선 “배 교수 같은 분 하나 키우려면 20년 걸린다. 그런 소중한 분을 우린 다 잃게 생겼다”며 “밤 당직 서가면서 응급환자 살리는 것을 사명감으로 여겨왔는데 이분들의 자괴감, 배신감, 분노를 어떻게 달래주느냐”라고 강조했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