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의대생 졸업해도 ‘서울행’…장기근무 하려면

지역 의대생 졸업해도 ‘서울행’…장기근무 하려면

기사승인 2024-03-30 12:00:16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들이 이동하고 있다. 사진=임형택 기자

지역의료가 위기다. 환자와 의사들은 수도권으로 빠져나가고 인구는 점차 고령화되며, 권역 내 응급의료센터로 1시간 이내 도달 불가능한 응급의료 취약지는 전국 98곳에 달한다. 지역 의과대학을 졸업해 의사가 된 뒤 지역에 남아 환자를 돌보도록 실질적 유인책을 제시하고 지역 의료기관 간 기능과 거버넌스를 강화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보건복지부는 29일 서울 중구 LW컨벤션에서 ‘지역의료 강화방안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위기의 지역의료를 살리기 위한 근본적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며 정부의 과감한 재정 투자와 지역의료기관 인프라 개선 등을 주문했다.

지역의료 공백은 현재진행형이다. 복지부에 따르면 2020년 기준 10년 새 지역 내 병원급 의료시설이 없는 ‘면’ 단위 지역은 1.5% 감소했지만, 의원급이 없는 지역은 4.2% 증가했다.

권용진 서울대병원 공공진료센터 교수는 “지역의료의 붕괴는 국가 전체적 문제로 발전할 수 있다”며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간 역할을 정립해 지자체가 지역의료에 책임감을 갖고 주도적으로 이끌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중앙정부는 큰 틀에서 의료 계획을 세우고 재정을 지역별로 배분하면 지자체는 지역 내 의료계와 협력해 지역에 맞는 의료정책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정책 추진 기간에 따라선 단기적으로 ‘지역의료대학원 석사 과정 개설’, 중장기적으로 ‘지역의사 장학제도 신설’, 장기적으로 ‘지역인재전형 확대’ 등을 제안했다. 지역의료대학원 석사 과정은 국립대병원에 계약학과를 개설해 지역에 일정 기간 이상 근무하는 조건으로 전문의를 모집하는 방안이다. 이 과정에 참여하는 전문의에겐 학비와 정주 여건을 지원하고, 정부가 교육비 전액과 인건비 50%를 지원한다. 

권 교수는 “지역책임의료 거버넌스를 구축하기 위해 필수의료의 버팀목 역할을 담당할 지역 병원을 거점화하고, 원격협진 등을 활용한 디지털 기반 의료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전했다.

보건복지부는 29일 서울 중구 LW컨벤션에서 ‘지역의료 강화방안 토론회’를 개최했다. 사진=신대현 기자


지역의료 핵심 축인 공공병원도 상황이 여의치 않다. 태생적 인력 부족에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인해 단골 환자가 이탈한 지방의료원은 좀처럼 병상 가동률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복지부 지역거점공공병원 알리미에 따르면, 지방의료원들의 평균 병상 이용률은 2018년 82.4%, 2019년 85.5%였지만 코로나19 유행이 본격화한 2020년 51.1%로 급락했고, 2021년 58.4%에 이어 2022년엔 44%로 감소했다. 일상 회복을 시작한 2023년엔 50%로 소폭 늘었다.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증원 방침에 반발한 전공의들이 의료현장을 떠난 지난 2월 이후에도 평균 병상 이용률은 50%대에 그쳤다.

조승연 지방의료원연합회장(인천광역시의료원장)은 “정부의 필수의료 정책에 지방의료원 기능을 강화하겠단 계획이 전무하고, 민간병원을 육성하더라도 공익적 기능을 개선하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며 “지방의료원은 지역 완결적 필수의료 강화의 주역이자 가장 강력한 수단인 만큼 정책적·재정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문의 고용을 유지하면서 신규 필수의료 의사를 유입하는 것도 과제로 꼽힌다. 복지부에 따르면, 41개 지역거점병원의 진료과목별 전문의 수를 기관당 평균으로 계산하면 내과 5.5명, 응급의학과 3.9명, 정형외과 2.2명, 영상의학과 2.0명이고 나머지는 2명 미만이다. 신경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마취통증의학과 등 필수진료과는 기관당 전문의 수가 2명에도 못 미친다. 흉부외과의 경우 기관당 평균 전문의가 0.4명에 그친다.

박형근 제주대병원 공공부원장은 “지역의료의 가장 큰 문제는 전문의가 없어 24시간 365일 필수의료 분야를 진료할 수 있는 종합병원이 부족하단 것”이라면서 “필수의료에 신규 진입하는 의사는 줄고 의사 유출이 심화되는 가운데 기존 의사들의 고령화 문제도 심각하다”고 짚었다. 박 공공부원장은 “지역·필수의료 의사 공급을 늘리기 위해선 지역 의대를 졸업한 후 지역 종합병원에서 일할 가능성이 높은 의대생을 확보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정부는 지역의료 강화 방안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복지부는 ‘계약형 필수의사제도’와 ‘맞춤형 지역 수가’를 도입한다. 해외 사례를 참고한 ‘지역의료발전기금’ 신설도 검토한다. 

계약형 필수의사제란 대학과 지자체, 학생의 3자 계약 하에 장학금과 수련비용 지원, 교수 채용 할당, 정주 여건 지원 등을 조건으로 지역의료기관에서 장기 근무하는 제도를 말한다. 맞춤형 지역 수가는 올해부터 분만 분야에 적용되고 있다. 산부인과 전문의가 상근하고, 분만실이 있는 모든 의료기관에 분만 건당 55만원의 안전정책 수가를 책정했다. 지역의료발전기금은 일본의 정책을 벤치마킹했다. 일본의 경우 2014년부터 ‘지역의료 개호 종합 확보기금’을 운영하고 있다. 소비세의 증가분을 주요 재원으로 1조6000억원을 확보하고, 이를 지역의료 인력과 재가 서비스 확충에 활용하고 있다.

전병왕 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국립대병원을 필수의료 중추로 거점화하고, 지역의 민간·공공병원을 필수의료 특화병원으로 육성해 필수의료의 지역완결성을 높이겠다”며 “지역 의대 중심 입학 정원 증원을 바탕으로 의대를 졸업해 지역에서 수련하고 정착하는 선순환 구조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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