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는 영리병원 사태 책임 없나

문재인 정부는 영리병원 사태 책임 없나

“영리병원, 비싸고 좋은 고급병원? 심각한 오해…사망률·의료비 부담 높아”
한국 공공병원 비중 OECD 최하위권 수준…영리병원 타격 클 것
“文정부·민주당, 책임지고 영리병원 근거 법안 없애야”

기사승인 2022-05-03 06:20:01
민주노총, 보건의료단체연합, 연구공동체 건강과대안, 참여연대, 전국농민회총연맹, 한국진보연대가 2일 오전 10시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2층에서 ‘위기의 시대, 영리병원 재점화 논란과 한국 의료의 위기 토론회’를 열었다.   사진=정진용 기자

“문재인 정부 초기 보건복지부 장관은 ‘현 정부에서 영리병원 허용은 없다’고 분명 말했습니다. 문재인 정권 하에서 영리병원 직접 추진이 중단된 것도 맞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적극적으로 막지도 않았습니다. 국토교통부 산하 공기업인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는 공론조사에서 제주녹지국제병원(이하 녹지병원)측을 대리, 찬성측 토론자로 참석해 영리병원 허용을 주장하는 활동을 했습니다. 무엇보다 현정부는 영리병원 법적 근거를 남겨뒀습니다”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영리병원을 필두로 하는 의료민영화 시도를 적극 막지 않았다며 반성과 책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시민단체들은 2일 오전 10시 ‘위기의 시대, 영리병원 재점화 논란과 한국의료의 위기 토론회’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건물에서 열었다. 민주노총, 보건의료단체연합, 연구공동체 건강과대안, 전국농민회총연맹, 참여연대, 한국진보연대가 공동주최했다.

영리병원, 왜 재점화됐나

영리병원은 한국 의료계 해묵은 논제다. 영리병원은 말 그대로 이익을 추구하는 병원이다. 운영 수익을 병원에 재투자하지 않고 투자자에게 배당할 수 있다. 병원이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해 과잉 진료, 의료비 폭등, 의료 불평등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모든 의료 기관은 당연히 국가가 운영하는 국민 건강 보험에 가입한 환자들을 치료하는 의료 기관으로 강제적으로 지정되는 제도)와 비영리 의료법인이라는 국내 의료공공성 버팀목을 흔드는 핵심 위험 요인으로도 지목된다.

지난 5일 제주도가 녹지병원에 내국인 진료 제한 조건을 달아 개원을 허가한 것은 위법 하다는 판결이 나오며 영리병원 논쟁이 재점화됐다. “녹지병원을 정부가 매수해야 한다”는 청와대 국민청원은 1달 만에 답변 기준인 동의 20만명을 넘겼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의료민영화에 대한 우려는 공감한다”면서도 소송이 진행 중인 점을 들어 “국가 매수 방안을 말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입장을 밝혔다.
‘위기의 시대, 영리병원 재점화 논란과 한국 의료의 위기 토론회’ 발표 모습.   사진=정진용 기자

영리병원 들어서면 한국 의료는 어떻게 될까

영리병원은 비영리병원보다 사망률이 높다. 이익을 투자자에게 배분하고 경영진에게 높은 보수를 주기 위해 숙련 의료진을 덜 고용하기 때문이다. 미국 체인형 영리병원에 대한 15개 연구를 메타분석한 결과, ‘영리병원이 비영리병원보다 사망률이 높다’는 명제가 통계적으로 유의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또 국민 의료비 부담도 증가한다. 역시 영리병원과 비영리병원 비용에 대한 8개 연구 메타분석에 따르면 영리병원이 비영리병원보다 비용이 19% 정도 높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시기에서도 영리병원과 비영리병원 차이점이 두드러졌다. 지난 2020년 미국 내 영리, 비영리, 주정부 운영 장기요양시설 코로나19 발생률과 사망률을 비교한 결과, 유의미한 차이가 나타났다. 사망률의 경우 영리(23.4%), 비영리(18.2%), 주정부(5.8%) 장기요양시설 순이었다. 

영리병원 설립은 의료 생태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지난 2009년 보건산업진흥원에서 낸 영리병원 관련 보고서는 개인병원 20%가 영리병원으로 전환되면 인력 이동으로 폐쇄되는 지역 중소병원(300개 병상 이하)이 최대 92개에 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우석균 인도주의의사실천협의회 공동대표는 “많은 국민이 영리병원은 비싸고 좋은 고급 병원이라고 오해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숙련 의료진을 덜 고용하고 사망률 높은 곳이 영리병원의 실체”라고 말했다.

특히 한국은 공공병원 비중이 10% 이하로 OECD 국가 최하위권이다. 영리병원 허용으로 인해 입을 타격이 심각하다는 뜻이다. OECD 국가 평균 공공병원 비중은 71.6%다. 미국은 공공병원 22% 수준에서 영리병원을 허용, 의료체계가 OECD 국가 최악으로 떨어진 사례다. 우 공동대표는 한국 의료체계가 이같이 취약한 상황에서 영리병원을 허용한다면 의료비 폭등, 지역병원 폐쇄, 건강보험재정 고갈로 미국식 의료민영화로 갈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 등 관계자들이 지난달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앞에서 열린 새 정부에 제대로 된 보건의료 정책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임형택 기자

민주당과 文정부는 책임에서 자유로운가

영리병원 논쟁이 되풀이 되지 않기 위해서 어떤 대책이 필요할까. 영리병원 허용 근간이 되는 법 조항을 아예 삭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영리병원 개설 근거를 원천적으로 없애는 법안은 더불어민주당 위성곤 의원(농림축산식품위원회, 제주 서귀포)이 지난해 9월 대표 발의했다. 8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계류 중이다. 소관위원회인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률 심사조차 통과하지 못했다. 도가 제주 의료산업 활성화를 위해 ‘외국인전용 영리병원’ 유지 의견을 국회에 제출했기 때문이다. 

이날 모인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문재인 정부가 근거법을 그대로 남겨뒀다는 점에서 영리병원 도입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꼬집었다. 우회적 영리병원화는 양당이 모두 추진 중이라며 그 예로 보험회사의 준 의료행위와 병원 지배를 가능하게 하는 ‘건강관리서비스 가이드라인 합법화’를 들었다. 이는 박근혜 정부에서 추진한 정책이다. 문재인 정부가 이를 청산하기는 커녕 발전·계승했다는 비판이다.

오상원 의료영리화저지제주도민운동본부 정책기획국장은 “민주당은 이번에 ‘검수완박’ 관련 개정안을 국회에서 빠르게 추진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런 정치적 이해 관계가 담겨있는 법안도 좋지만, 국민 건강과 생명이 밀접히 연관된 법개정에 국회가 전면 나서야 한다. 2년 뒤 국회 구성이 현 민주당 다수에서 역전될 지 모르는 상황이다. 시간이 없다”고 강조했다.

변혜진 시민단체 건강과 대안 상임연구위원은 “새 정부가 규제 완화 드라이브를 걸겠다고 나서자 빅테크, 보험회사, 초국적 자본·대기업들이 돈이 된다는 것을 알고 한국 의료시장에 관심을 갖고 있다”면서 “또 이들 세력이 영리병원 허가 논의에 불을 지피는 중”이라고 했다. 이어 “민주당은 과반수일 때 영리병원을 국내법에서 완전히 들어내는 개정안을 반드시 책임지고 통과시켜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
정진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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