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사회] 민주노총 성폭행 의혹사건은 규모가 커진 상부 조직이 민주적 소통구조와 투명성을 갖추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지적된다. 앞서 몇몇 시민·환경운동 단체의 부정도 같은 이유로 확대됐다. 사건 자체의 부도덕성보다 축소, 왜곡하려는 경직된 의사결정 구조가 더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은폐·축소가 치명적 문제=경제개혁연대 김상조 소장은 8일 “민주노총 성폭행 의혹사건의 문제는 사건 발생 자체가 아니다”라며 “이를 은폐, 축소하려고 했다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김 소장은 “노조, 기업, 정부 등 어느 조직이든 사람이 사는데 범죄 행위가 발생할 수 밖에 없다”며 “이를 투명하게 처리할 내부절차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수 단체인 ‘바른사회를위한시민회의’ 윤창현 사무총장은 “진보단체의 경우 거대 담론에 치중해 싸우면서 개인의 도덕성 관리에는 소홀했다”고 지적했다. 윤 총장은 “과거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이들 단체는 투사를 살리기 위해 피해자의 희생을 강요했다”고 말했다.
민주노총과 가까운 편인 한 범노동계 인사는 “민주노총 내 다수파인 국민파는 내부 반대파에게 공격의 빌미를 준다거나 정부와 언론 등 외부에 악용당할 우려가 있다는 의견 때문에 성폭행 의혹사건을 왜곡·축소·은폐하려는 무리수를 뒀다”며 “정파 이기주의에 따른 고려를 앞세우니 본말이 전도된 오판을 한 셈”이라고 진단했다.
◇도덕성 위기=환경운동연합 등 시민사회단체의 도덕성 위기와 민주노총의 위기가 다른 측면은 민주노총이 선거에 의해 지도부가 구성된 조직이라는 데 있다. 시민·사회단체의 중앙조직 비대화나 관료화는 ‘시민(유료 회원) 없는 시민운동’에서 비롯됐다. 반면 민주노총의 도덕성 상실은 선거를 둘러싼 정파 갈등에서 기인한다. 민주노총 대의원은 대부분 기업별 노조 간부 출신이기 때문에 소속에 따라 당락이 좌우되는 정파의 회원이거나 그 영향권 안에서 활동하고 있다. 민주노총 집행부는 암암리에 현장의 대기업 노조가 내세우는 단기적 실적주의를 국가 전체의 경제·사회적 의제보다 더 중요시하게 되는 것이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의 2007년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민주노총 간부의 64%가 ‘(계파간)갈등이 크다’고 답했고, 그들의
81%가 ‘활동가 조직간 분열과 대립 심해질 것’이라고 응답했다. 한국노동연구원 배규식 연구위원 등은 지난해 ‘1987년 이후 노동조합과 노동운동’ 보고서에서 “민주노총에서 정파별로 사고하고, 판단하고, 실천하는 내부 정치구조가 통합의 리더십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예측하기 어려운 파장=이번 사태는 민주노총의 도덕성에 흠집을 냈을 뿐 아니라 이미 약해질대로 약해진 조직의 지도력과 의사결정력에 결정적 타격을 가했다. 금속노조의 한 간부는 “국민파는 앞으로 민주노총 내 다수 세력일 수 밖에 없기 때문에 타 정파에 대한 포용력을 가져야 한다”면서 “소수파의 의견을 의제에 반영하는 노력이 필요하며, 다수결의 논리에 따른 의사결정을 지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민주노총을 포함한 시민·사회 단체는 자발적 조직이기 때문에 다른 사회조직에 비해 내부 규제 메커니즘이 취약하다”면서 “우리 사회에서 시민·사회 단체나 노조의 역사가 그다지 길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서구처럼 오랜 기간 동안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장기적으로 내적 규제 매커니즘이 자리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임항 전문기자·서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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