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사회] 노동부는 지난 15일 100인 이상 사업장 중 1544개(23%)가 일자리나누기를 통해 고용을 유지하거나 창출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전수 조사를 통해 파악된 일자리나누기는 임금 동결·삭감을 통한 경우가 1234개소로 거의 대부분을 차지했고, 근로시간을 단축한 곳은 123개소, 7.96%에 불과했다. 노동부 노사협력과에 따르면 근로시간 단축의 경우는 대부분 초과근로시간을 줄였고, 협약 근로시간을 단축한 경우는 자동차 부품제조업체인 ㈜영진, 시내버스 업체 진해여객 등 3∼4개에 불과했다.
근로시간 단축이 전제되지 않은 일자리나누기는 일자리 유지와 창출 효과를 확인할 방법이 없는데다 일시적이고, 불안정하기 쉽다. 반면 근로시간 단축을 통해 일자리를 나누면 기존 근로자와 수혜자 모두 상당기간 고용안정을 기할 수 있다.
창조한국당 문국현 대표는 지난 8일 임시국회 경제분야 대정부질의에서 "연간 2455시간에 이르는 초장(超長) 시간 과로체제는 다른 사람의 일자리 400만개를 빼앗고 있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우리나라 근로자들은 유럽연합(EU) 국가는 물론 미국과 일본보다 630∼660시간가량 더 일하고 있다. 문 대표는 이어 "1600만명의 임금 근로자들이 특근을 반납해 연 2000시간을 근무하면 지금보다 400만명이 더 많은 2000만명이 일할 수 있게 된다"고 주장했다.
장시간 근로는 산재 발생률을 높이고 가정생활을 방해하며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만악의 근본이다. 그러나 근로시간 단축은 말처럼 쉽지 않다.
우선 사용자들은 근로시간 단축을 가장 싫어한다. 고용을 늘려야 할 정도로 근로시간이 줄어도 기존 임금을 줄어든 시간만큼 깎을 수 없다. 게다가 늘어난 인원에게는 임금을 지불해야 하고 4대 사회보험료, 노무관리 비용도 추가로 들어간다. 기업으로서는 단기적으로 적용하기에 큰 부담이다.
일자리 나누기의 정의도 다르다. 노동부는 상대적으로 근로시간 단축에는 관심이 적다. 대신 양보교섭에 의한 임금 동결·삭감, 복리후생 및 임금반납이 가져 올 비용절감과 고용유지 효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반면 노동계는 어떤 경우든 일자리 나누기는 근로시간 단축이 전제되는 게 핵심이라고 지적한다.
그래서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하다. EU 국가의 사례를 보면 법정 근로시간 단축(프랑스), 협약 근로시간 단축(독일), 정규직 한 자리를 두 개의 파트타임 일자리로 나누는 잡 셰어링(네덜란드), 대졸 청년과 실직자를 위한 잡 로테이션(북유럽 국가들) 등의 유형이 있다.
독일에서는 자동차 메이커 폭스바겐이 1993년 주당 36시간의 근로시간을 20%(7.2시간) 줄여 일자리를 늘리기로 합의했다. 이를 통해 감원을 피할 수 있었지만 근로자의 연간 임금소득이 16% 감소했다. 정부는 고용유지지원금을 제공했고, 사용자측은 보너스와 특별상여금을 월급으로 전환했다. 금속노조 정책연구원 이상호 연구위원은 "중요한 것은 일자리 나누기 사례가 금속산업과 지역단위 협약으로 확산됐고, 공동 의사결정을 통해 기업이 운용할 수 있는 노동시간 유연성을 부여해 고용창출 효과를 발휘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법정 근로시간을 단축한 지 몇 년 되지 않아 거론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따라서 협약 근로시간 단축을 노사정 대타협, 또는 산별협약을 통해 추진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잡 셰어링이 더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노동연구원 조성재 연구위원은 "근로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유형의 확산을 촉진하면서 같은 업무를 하는 풀타임 정규직과 같은 시간당 임금을 받는 파트타임 정규직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장원 선임연구위원도 주당 60시간 일하는 한 사람의 일자리를 40시간 일자리와 20시간 일자리로 나누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임항 노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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