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가장 화제를 모으고 있는 인물 중 한 명은 배우 김부선(53·사진)씨입니다. 또 김씨와 같은 이웃 주민 간의 폭행 공방으로 촉발된 아파트 ‘난방비 비리’ 논란은 최고의 화제 중 하나입니다.
김씨는 24일 자신의 폭행 피소 건 조사를 받기 위해 출두한 경찰서에서 “(내가 사는 아파트 난방비 문제를) 무던히 언론에 알렸는데 언론들은 외면했다”고 말했습니다. 뜨끔했습니다. 제가 바로 김씨를 외면한 그 언론 중 하나입니다.
러시아 소치동계올림픽이 열리던 올해 2월 초였습니다. 과거 취재를 통해 알게 된 지인이 김씨의 사연을 제보하며 연락처도 알려줬습니다. 김씨는 오랜 시간 아파트 일부 주민들과 겪어온 갈등에 힘이 들었는지 언론의 취재 전화가 오자 반가워했습니다.
김씨는 자신이 사는 아파트의 난방비 문제 관련 사실들을 적극적으로 말해줬습니다. 난방비가 0원인 가정이 수십 가구에 이른다는 등 최근 언론사들이 경쟁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들이 다 있었습니다. 확인을 위해 직접 방문하겠다면 언제든지 오라고도 했습니다.
충분히 기사가 될 만한 내용이라고 판단했고, “요즘 올림픽 때문에 시간이 여의치 않다. 올림픽이 끝나면 바로 다시 연락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올림픽이 끝나기 전 아파트 ‘난방비 복불복’ 논란이 새로운 이슈가 아니라는 걸 확인하게 됐습니다. 2011년 국정감사에서 거론이 됐고, 이미 다른 매체에서도 비중 있게 다뤘더군요.
기자들은 이런 경우를 두고 ‘핸디 빠졌다’는 은어로 표현합니다. 기사가 될 만한 아이템이 이후 새롭게 확인된 어떤 사실로 가치가 깎였다고 생각되는 상황입니다. 이미 여기저기서 다뤄져 기사를 써봐야 ‘재탕’에 불과하다는 결론에 ‘핸디 빠진’ 아이템이 돼 버린 겁니다.
그래서 김씨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습니다. 올림픽이 끝난 후 “많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왜 이렇게 감감 무소식이냐”는 김씨의 전화가 한 차례 왔습니다. 그리고 김씨도 눈치를 챘는지 더 이상 연락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흐지부지 됐습니다.
아마 이 기사를 포기한 다른 기자들도 비슷한 이유였을 거라 생각합니다. 언론의 기본 원칙 중 하나인 ‘시의성’이 떨어지거나, 이미 다른 곳에서 나온 내용이라 언론이 그렇게 좋아하는 ‘단독’도 못 된다는 거죠.
그렇게 법에 이어 언론에까지 외면당한 김씨는 외로운 싸움을 계속 하다 폭행 공방에까지 휘말리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아파트 난방비 문제가 사회적 파장을 몰고 오는 것을 목격하면서, 당시 너무 구태의연한 원칙에만 빠졌던 건 아닌지 반성을 하게 됐습니다.
해당 ‘팩트’가 대중에게 전달할만한 가치만 충분하다면 그게 재탕이라고 무작정 외면하는 게 아니라 더욱 발전된 내용으로 취재해 써 보려고 고민해야 한다는 당연한 도리를 생각하지 못한 겁니다. 4년 전 국정감사나 다른 매체 1~2군데에서 먼저 나왔다고 모든 사람이 다 알고 있는 게 아닙니다.
종이신문은 지면, 방송뉴스는 시간의 제약 때문에 선택되는 아이템의 가치가 제한되고 그만큼 엄격해 질 수 밖에 없다는 핑계라도 댈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요즘처럼 무한 플랫폼이 허락되는 ‘디지털 퍼스트’ ‘모바일 퍼스트’ 환경에서는 안 통합니다. 뉴미디어 시대에 ‘기레기(기자+쓰레기)’가 되지 않으려면 기사 가치에 대한 언론의 사고도 유연해져야 되겠습니다.
김현섭 기자 afer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