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인천 아시안게임이 지난 4일 막을 내렸습니다. 우리나라는 목표였던 금메달 90개는 달성하지 못했지만 금메달 79개, 은메달 71개, 동메달 84개로 아시안게임 5회 연속 2위를 이뤄냈습니다.
234개의 메달에 대해 색깔을 따지고 우열을 가린다는 건 의미가 없습니다. 선수들이 땀과 눈물로 범벅된 인내의 시간을 참고 또 참아가며 맺은 결실이란 건 똑같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메달을 ‘굳이’ 뽑아보자면 무엇일까요. 물론 보는 이마다 다르겠죠. 하지만 12년 만에 나온 남자농구 대표팀의 금메달도 충분히 자격이 된다고 봅니다.
이번 대회가 열리기 전까지 남자농구 대표팀의 이미지는 그야말로 ‘바닥’이었습니다.
일단 지난 시즌에 TV 시청률 경쟁에서 프로배구에 밀려 버렸습니다. 2013-2014시즌 프로배구는 개막을 한 2013년 11월부터 2014년 3월까지 생중계 시청률 평균(닐슨코리아)이 0.8%대(KBS N 스포츠와 SBS 스포츠)를 기록했습니다. 반면 프로농구는 절반도 안 됐습니다. MBC 스포츠플러스와 KBS N 스포츠, SBS 스포츠의 같은 기간 프로농구 생중계 시청률 평균은 각 0.289%, 0.277%, 0.328%에 불과했습니다. 케이블 업계에서 소위 ‘대박’이라고 하는 시청률 1%를 돌파한 건 배구가 19회, 농구는 한 번도 없었습니다.
아마 리그인 농구대잔치 시절부터 ‘겨울스포츠의 꽃’이라고 불린 프로농구의 자존심이 구겨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남자농구 대표팀은 지난 9월 열린 스페인 농구월드컵에서 5전 전패를 하고 돌아왔습니다. 승부도 승부지만 인상적인 경기도 없었습니다. 같은 아시아 대표인 이란과 필리핀이 1승씩 챙긴 것과 대조적이었습니다. 앞서 월드리그에 나가 3승 9패의 성적을 내고 돌아온 남자배구 대표팀과도 비교가 됐습니다.
인천 아시안게임 8강 라운드에서 필리핀을 만난 남자 대표팀은 3쿼터 중반 한 때 16점차까지 뒤졌습니다. 약체에게만 이기다 라이벌과 붙자 고전하는 모습에 많은 팬들이 ‘그러면 그렇지’라는 반응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이때부터 드라마가 만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차근차근 따라붙기 시작한 한국은 71대72로 필리핀을 턱 밑까지 추격한 채 4쿼터를 맞았고, 결국 97대95 역전쇼를 연출했습니다.
결승전 상대인 이란은 중국이 세대교체 작업에 들어서면서 아시아 맹주 자리에 오른 팀입니다. 지난 5년 간 한국이 이겨본 적이 없었습니다.
한국은 종료 1분 전까지 70대75로 패색이 짙었습니다. 그러나 양동근(모비스), 김종규, 문태종(이상 LG)의 득점이 연이어 터지면서 79대77로 달아났고, 마지막 순간 림 바로 앞까지 손을 뻗은 아시아 최고의 센터 하메드 하다디(218cm)의 슛을 악착같이 막아내며 기적 같은 승리를 거뒀습니다.
여자농구도 20년 만의 금메달이라는 감격적인 결과를 이끌어 냈지만, 남자농구는 이처럼 반전이 거듭되는 과정을 밟았기에 더욱 극적으로 다가옵니다.
인터넷에는 “프로농구 재미없어서 안 봤다가 올해부터 다시 보기로 했다” “이제부터라도 보려면 어느 팀을 응원해야 하느냐” “농구가 이렇게 재미있는지 몰랐다”라는 등의 글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바닥을 친 남자들의 생각지도 못한 반전. 올 겨울 농구와 배구의 인기 대결이 더욱 볼만하게 됐습니다.
김현섭 기자 afer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