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즘] 제보자, 진실 찾는 이야기 왜 판타지가 됐나

[쿠키즘] 제보자, 진실 찾는 이야기 왜 판타지가 됐나

기사승인 2014-10-07 10:55:55


영화 ‘제보자’에 관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날이 서 있는 건 아닌데 던지는 메시지가 셉니다. 조금 불편한 느낌도 듭니다. 9년 전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어 놓은 ‘줄기세포 논문 조작 사건’을 다룬 영화 ‘제보자’ 얘기입니다.

‘황우석 사태’는 2005년 11월 MBC ‘PD수첩’이 당시 서울대 교수 황우석 박사가 이용한 난자의 출처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면서 촉발됐습니다. 이후 ‘처음부터 줄기세포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추가로 밝혀졌고 많은 이들에게 좌절과 분노를 안겨줬습니다.

통찰과 감성을 겸비했다는 평가를 받는 임순례 감독은 희대의 이 사건을 스크린에 옮겼습니다. 첫 장면에서 ‘실제 사건에서 영감을 얻었으나 영화적으로 재구성된 픽션’이라고 언급하지만 제보자의 딸이 아프다는 설정, 복제한 개가 암에 걸렸다는 설정 등을 제외하고는 있었던 일들을 성실하게 그려냈습니다.

제보자는 시사성이 짙을 수밖에 없는 영화입니다. 황 박사에 대한 재판이 진행 중이라 민감한 측면도 있죠. 그래서 임 감독은 처음 제의를 받았을 땐 “논란의 중심에 서기 싫다”며 거절했다고 고백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계기로 마음을 바꾸게 된 걸까요.

영화는 꽤 속도감 있게 전개됩니다. 배아줄기세포 복제에 성공해 국민 영웅으로 떠오른 이장환 박사(이경영 분)가 등장하고, 그의 연구실로 불법 매매 난자들이 흘러들어가는 정황을 ‘PD추적’의 윤민철 PD(박해일 분)가 포착합니다. 윤 PD는 곧이어 충격적인 제보를 받습니다. 연구실에서 일하던 심민호(유연석 분)로부터 “줄기세포는 애초에 없었다”는 믿기 힘든 말을 듣게 됩니다. 이후 심 팀장을 믿기로 한 윤 PD는 여후배와 함께 이 박사의 논문 조작을 증명하기 위해 뛰어 다닙니다.

취재 과정은 녹록치 않습니다. 제보자에서 윤 PD로, 윤 PD에서 팀장으로, 팀장에서 국장으로, “진실과 국익 중에 어느 것이 우선이냐?”는 질문이 반복됩니다.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국민답게 “진실이 밝혀지면 그것이 국익”이라고 입을 모으죠.

그러나 ‘영화 속의 현실’도 ‘2014년의 현실’과 다르지 않습니다. 치우친 보도를 쏟아내는 언론과 그것을 그대로 믿고 촛불 시위를 벌이는 대중. 그리고 방송사가 밝혀낸 진실을 은폐하려는 못난 국가가 합을 맞춥니다.

임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언론의 역할을 환기하고 싶었다”고 밝혔습니다. 이야기를 끌어가는 주인공은 집요하고 끈질긴 성격의 언론인입니다. 영화는 시종일관 그의 고군분투를 보여주며 우리 사회의 민낯을 드러냅니다. 진실보다는 이익을 쫓고, 여론의 눈치를 보고, 외압에 휘둘리는 언론의 치부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인터뷰에서도 임 감독은 “사건과 관련해 자료들을 찾다보니 한국 사회의 총체적이고 본질적인 문제가 다 포함돼 있더라”며 “영화를 통해 언론 스스로가 문제를 인식하고 접하는 사람들 또한 각성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진실이 밝혀지는 결말은 판타지 아니냐’는 질문에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10년이 채 안된 사건입니다. 이걸 판타지라고 느낀다면 그 만큼 우리가 멀리 왔기 때문이겠죠.”

극 중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언론이 무엇을 어떻게 보도하느냐 따라 180도 달라졌던 택시기사의 대사입니다. “같은 국민끼리 괴롭히지 맙시다”라며 윤 PD를 쏘아붙였다가 “PD추적은 믿고 본다”로 바뀌었죠. 뒤이어 “돈 있으면 이민 가야지, 이게 나라냐?”는 말이 이어졌습니다. 공감과 한탄을 동시에 자아내게 하는 말입니다.

거짓 희망을 퍼트리는 언론, 그것을 맹목적으로 믿는 대중, 다시 여론에 휘둘리고 외압에 시달리는 언론의 맞물림. 정말 어쩔 수 없는 것일까요. 제보자는 지금을 돌아보게 합니다. 거대 권력에 맞서 진실을 파헤치는 한 언론인의 이야기도 이젠 한낱 판타지가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회적인 질서나 국익이라는 미명 하에 진실을 외면하는 일들이 우리 사회에 만연하게 벌어지고 있다. 진실을 말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가치이고 그 가치를 지키기 위해 언론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했으면 좋겠다.” ‘임순례 감독 인터뷰 중에서’

김민석 기자 ideaed@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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