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조현아의 ‘땅콩 리턴’, 대중의 ‘폭발’이 의미 있는 이유

[친절한 쿡기자] 조현아의 ‘땅콩 리턴’, 대중의 ‘폭발’이 의미 있는 이유

기사승인 2014-12-14 09:20:55

일명 ‘땅콩 리턴’으로 여론의 엄청난 질타를 받은 조현아(사진) 대한항공 부사장 파문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12일 국토부 조사에서 욕설이나 고성은 없었다는 조 부사장의 입장과는 달리, 항공기에서 내렸던 박모 사무장은 조 부사장의 메뉴얼이 담긴 케이스 모서리로 손등을 찌르는 등 폭행까지 했다고 밝혀 사건은 진실공방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건이 전해진 후 조 부사장이 보인 행보는 이렇습니다. 8일에 목적이 사과인지 조현아 부사장 비호인지 헷갈리는 회사 명의의 ‘이상한 사과문’이 나왔습니다. 9일에 부사장직은 유지한 채 보직 사퇴 결정을 내렸습니다. 10일에 부사장직에서 사퇴하기로 했습니다. 이후 검찰의 대한항공 압수수색, 국토부 조사까지 이뤄졌고 박 사무장의 ‘폭로’까지 나왔습니다.


이처럼 하루가 지날 때마다 상황이 요동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도저히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대중의 분노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일은 항공사의 수장이 이미 움직인 항공기를 돌려 세워 직원을 내리게까지 했다는 특이한 사건이라는 단순한 의미를 뛰어 넘는다고 생각합니다.

현재까지 알려진 조 부사장이 격노한 이유는 승무원이 ‘땅콩을 봉지 째 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무장이 서비스 매뉴얼이 담긴 ‘태블릿PC의 비밀번호를 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것들이 곧 고객 응대에 전념해야 하는 승무원에게 화를 내고, 사무장을 내리게 해 12시간을 기다려 다른 비행기를 타고 오게 할만한 이유가 될 수 있을까요.

조 부사장이 바보가 아닌 이상 비행 후 주의 전달이나 교육 강화로 충분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을 겁니다. 그럼에도 이런 극단적인 조치를 취했다는 것엔 결국 어떤 심리가 작용했을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신보다 덜 가진 사람에 대한 몰이해와 무시, 그걸 표출하는데 조금의 주저함 조차 없는 일부 재벌가 자녀들의 인격과 도덕성. 대한민국이란 사회가 가진 어두운 면 중 하나가 바로 이 ‘땅콩 리턴’ 사건에 버무려져 있습니다. 며칠 간 ‘조현아’라는 이름이 포털사이트 검색어 상위권에서 빠지지 않을 정도로 대중이 공분하고 있는 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조 부사장 한 명의 황당한 행동에 누군가의 소중한 아들과 딸은 필요 이상의 질책으로 굴욕감을 느꼈고, 적지 않은 돈을 내고 최상의 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있는 200명이 넘는 탑승객들은 이륙과 도착이 지연되는 불편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몰이해와 무시가 아니고서는 설명이 안 되는 장면입니다.

권력이든 재력이든 가진 자들이 덜 가진 자들을 상대로 그른 행동을 해놓고 은근슬쩍 넘어갈 수 있는 큰 적 중 하나는 대중의 ‘외면’과 ‘체념’입니다. 만일 대중이 이 사건에 대해 ‘쟤네들이 다 그렇지 뭐’라는 식으로 적당한 선에서 눈을 감고 귀를 닫았다면 조 부사장에 대한 조치 역시 적당한 선에서 끝났을 겁니다. 관련 보도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이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표출한 대중의 힘에 거대 기업 일가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고, 이는 다른 가진 자들에게도 묵직한 메시지가 됐을 것임이 분명합니다. 이번 사건에 대한 대중의 ‘폭발’이 의미 있는 이유입니다.

P.S - 노파심이지만 조 부사장의 사표 결정이 법 개정을 통해서만 가능한 대한항공의 ‘경복궁 옆 7성급 호텔’ 사업 추진을 위해서가 아니길 바랍니다. 즉, 국민과 고객에 대한 신뢰 회복이 목적이 아니라 향후 도움이 절실한 국회의원들을 의식한 결정이 아니었으면 한다는 겁니다. 혹시나 그렇다면 이 기사는 완전 ‘헛소리’가 돼 버리겠죠.

김현섭 기자 afer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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