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추억’이 자주 떠오르는 요즘…고마운 조현아, 그리고 대한항공

[친절한 쿡기자] ‘추억’이 자주 떠오르는 요즘…고마운 조현아, 그리고 대한항공

기사승인 2014-12-15 10:58:55
‘땅콩 리턴’ 사태로 물의를 빚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12일  서울 강서구 공항동 국토교통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에 조사를 받기 위해 출두 하고 있다. 국민일보DB

요즘 ‘조현아’ ‘대한항공’이 ‘대세’입니다. 시청률 끝내주는 인기 드라마도 아닌데 2명 이상 모인 자리에서 조현아와 대한항공을 모르면(과연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대화가 안 될 정도니까요. 조현아 전 부사장의 ‘땅콩 리턴’으로 시작된 이 사건은 대한항공 내 ‘로열 패밀리’의 ‘제왕적 문화’에 대한 논란으로 번지고 있습니다.

지켜보고 있자니 과거 일화가 자연스레 떠오릅니다. 초등학교 시절, 너무 오래전 일이라 그게 누구였는지까지는 기억 못하지만 학교 밖의 더 높은 어딘가(아마 교육청이었겠죠)에서 누가 온다 그러던 때가 가끔씩 있었습니다. 그럼 선생님은 엄연히 수업시간임에도 “자, 이번 시간은 대청소를 할 거예요”라며 다정한 말투와 함께 아이들에게 걸레, 빗자루, 대걸레 등을 쥐어줬습니다. 반 아이 중에 키가 큰 축에 속했던 전 대부분 걸레를 쥐었습니다. 높은 곳의 창문을 닦아야 했으니까요. 초등학생이 수업권 박탈이니 뭐니 아는 게 있었겠습니까. 그냥 높은 아저씨 오신다니까 선생님께서 하라 그러면 했던 거죠.

군생활을 전투경찰로 한 전 경찰서 상황실·지령실에서 근무했습니다. 두 부서 모두 3교대(오전 9시~오후 7시, 오후 7시~익일 오전 1시, 오전 1시~9시) 근무 체제였습니다. 전날 2~3시간 밖에 자지 못한 오전 1시~9시 인원은 근무 후 내무반에 복귀해 점심시간까지 취침이었습니다. 부대원들은 이들이 얼마나 고단한지 잘 알기 때문에 선임, 후임 할 것 없이 오전엔 내무반에서 큰 소리로 말하지 않고 문도 살살 열고 닫는 등 배려해주는 문화가 자리 잡혀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최선임병이었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모 부서의 부장(경사)이 아침에 내무반 문을 덜컹 열고 들어오더니 조금 있으면 ‘서장님’이 전투경찰 내무반을 보러 오신다며 다들 빨리 대청소를 하라는 겁니다. 그러더니 밤샘 근무를 한 후 자고 있는 대원들의 이불을 우악스럽게 걷어내며 “너희들도 빨리 일어나!”하고 소리를 쳤습니다.

20대 초반이었던 전 초등학교 시절과 달리 알고 있었습니다. ‘높은 사람’에 대한 기본적 예의는 당연히 지켜야 하지만 그게 ‘낮은 사람’에 대한 기본적 권리 침해로 연결돼선 안 된다는 걸.

전 그 부장에게 “쟤넨 밤새도록 근무하고 방금 전에 와서 자는 거다. 2명밖에 안 되니까 쟤넨 의경 내무반에 양해 구해서 거기서 계속 자도록 하고 대청소는 나머지 대원들끼리 해도 충분하다”고 건의했습니다. 그러자 그 부장 왈, “야 임마, 서장님이라고 서장님.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서장님!”

제겐 이런 것들이 모두 지금보다 덜 세련됐던 과거의 일인데 현재진행형인 곳이 있습니다. ‘우리의 날개’라고 자평하는 대한항공입니다.

지난 12일 ‘땅콩 리턴’의 장본인 조 전 부사장이 서울 공항동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에 도착하기 전 대한항공 관계자가 건물 경비원에게 2층 공용화장실 청소를 요구했다고 합니다. 이미 깨끗한 상태였고, 다른 사람들이 이용 중이었는데도 “조 전 부사장이 쓸지 모르니 다시 한번 확인을 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하네요, 이미 할 일 다 한 청소 아주머니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불려나와 다시 일을 하고 돌아갔다고 합니다.

이 관계자는 불미스런 일로 조사를 받으러 온 조 전 부사장의 처지, 자신에게 높은 사람이 다른 직장 사람에게도 높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건지 따위는 생각할 겨를도 없었나 봅니다.

짜증났던 일도 지나고 나면 피식 웃으며 떠올릴 수 있는 ‘추억’이 되곤 하죠. 바쁜 일상 속에 잊어버리고 살던 추억을 떠올리게 해 준 대한항공, 그리고 조현아 전 부사장, 정말 고맙습니다.

김현섭 기자 afer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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