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한민국 사회를 휘감고 있는 조현아(사진) 전 부사장 ‘땅콩 리턴’ 사건과 관련해 한 단체의 일부 구성원이 낸 성명서가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19개 시민단체의 여성 대표들이 모인 단체 ‘대한민국여성연합’(여성연합)의 이름으로 18일에 나온 ‘마녀사냥 언론 호들갑, 조현아 죽이기 그만하자! 하이에나만 득실거리는 무자비한 우리 사회, 이런 나라도 없다’라는 제목의 성명서입니다. 굳이 ‘일부 구성원’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첫 기사가 나온 후 여성연합의 공식 성명이 아니라 두 명의 대표(김길자, 이경자)가 다른 단체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발표했다는 해명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대표는 이날 언론에 “성명서 발표에 대한 소속원 모두의 공유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성명서를 발표한 내 실수”라며 “정미홍 등 다른 대표들에게 사과했다”고 밝혔습니다.
여성연합 전체이든 일부이든 이 성명서를 처음 읽어봤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는 ‘모순’이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먼저 제기된 질문은 ‘이들은 여성연합이라면서 왜 재벌 집안 여성이 며칠 간 겪고 있는 고통에만 관심이 있고, 평범한 여성들이 오랫동안 참아야 했던 고통엔 관심이 없을까’입니다.
“누구나 실수를 저지르며 살아간다. 대한항공 초기대응 미숙이 하이에나에게 먹잇감을 던진 꼴이다. 한국에서 재벌은 무조건 나쁘고 그들 자녀 또한 악의 대상으로 규정됐다. 이들 잘못은 법 심판 이전에 ‘인민재판’으로 (내몰려) 인격살인을 당하고 언론은 앞장서 흥행거리로 만든다.”
폄하하고 싶지도 무시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일부 과격한 표현이 동원됐지만 개인에 따라 얼마든지 낼 수 있는 견해이기에 그 자체로 존중합니다. 다만 순서가 잘못됐다는, 혹은 2% 부족해 보인다는 느낌 또한 숨길 수 없습니다.
조 전 부사장이 일으킨 사건의 ‘피해자’로 박창진 사무장이 많이 부각되고 있습니다만 사실 그 전엔 이름 모를 한 여자 승무원이 있었습니다.
당시 일등석에 있던 목격자는 지난 13일 서울서부지검에서 참고인 조사를 받은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무릎을 꿇은 채 매뉴얼을 찾는 승무원을 조 전 부사장이 일으켜 세워 위력으로 밀었다. 한 손으로 승무원의 어깨 한쪽을 탑승구 벽까지 거의 3m를 밀었다”며 “(매뉴얼이 담긴) 파일을 말아서 승무원 바로 옆의 벽에다 내리쳤다. 승무원은 겁에 질린 상태였고 안쓰러울 정도였다”고 증언했습니다.
이어 “승무원에게 파일을 던지듯이 해서 파일이 승무원의 가슴팍에 맞고 떨어졌다”며 “승무원을 밀치고서 처음에는 승무원만 내리라고 하다가 사무장에게 ‘그럼 당신이 책임자니까 당신 잘못’이라며 사무장을 내리라고 했다”고도 했습니다.
꼭 이번 사건뿐만 아니라 대한항공 승무원, 기장들이 그동안 오너 일가가 항공기에 탈 때마다 극심한 스트레스, 압박감에 시달렸다는 내부 증언도 속속 나오고 있습니다.
여성연합 소속이라는 이름을 달고 왜 이 여성들이 부당하게 겪은 굴욕, 공포, 인권유린에는 관심이 없습니까. 관심까진 아니더라도 왜 성명서 안에 한마디 언급도 없습니까.
혹시 두 대표 중에 딸을 키우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대기업 오너 일가의 장녀인 조 전 부사장보단 평범한 집안의 딸이 더 많을 승무원들이 더 가깝게 느껴지지 않을까 싶은데 말입니다.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 홈페이지에 들어가 봤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 성명에 대해 반박해 놓은 조합원이 안 그래도 있었습니다. 이런 내용이 있네요.
“대한항공에 있는 몇 분들은 이 성명서를 보고 박수를 쳤을지도 모르지만 이 성명서는 순식간에 화제가 됐습니다. 여성들도 이 성명서를 보고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김현섭 기자 afer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