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나 했던 ‘칼(KAL)피아’가 드러났습니다.
국토교통부(국토부) 자체 감사 결과 조현아(사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리턴’ 조사에 참여한 김모 조사관이 이번 사건의 은폐를 주도한 것으로 전해진 대한항공 여모 상무와 8일 이후 수십 차례 통화하고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은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김 조사관은 대한항공 출신입니다.
관심이 집중된 사건입니다. 국민을 ‘민·관이 합동해’ 기만하려 한 겁니다.
8일에 대한항공 관계자와의 통화가 문득 떠오릅니다. 이날은 사건이 막 알려진 때이어서 언론에서는 정확한 상황파악에 주력하는 단계였습니다. 그리고 국토부와 관련해 나온 사실은 조 전 부사장의 행위가 법에 저촉되는지 검토에 나섰다는 정도였습니다.
통화에서 “항공기가 움직인 건 10m 정도이다” “기장과 협의를 하고 돌린 것”이라는 등의 얘기를 한 대한항공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건 일단 좀 이해를 하고 들어주세요. 국토부 출입하는 기자분들한테 들은 건데 국토부에선 이미 조 전 부사장 법적으로 문제될 것까진 없다고 본다고 하네요.”
공식적으로 나온 건 아니지만 내부에선 그렇게 판단하고 있다는 의미였습니다. 이해를 하고 들어달라는 건 아직 객관적으로 확인된 건 아니니 기사를 쓰진 말아달라는 뜻으로 해석했습니다. 사건 파악만으로 바빴던 때라 “그래요?”하고 별 의미 두지 않고 흘려들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국토부의 부실 조사 의혹은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났고 또 사실로 확인됐습니다. 항공기에서 내린 박창진 사무장을 조사할 때 여 상무가 19분 간 동석했고 옆에 앉아 조 전 부사장을 두둔하려 했습니다. 대한항공 출신 조사관과 현 대한항공 임원이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수십 차례 연락을 주고받았습니다. 검찰은 24일 이 조사관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했습니다.
조 전 부사장은 어떻습니까. ‘증거인멸 교사’ 혐의가 범죄사실에서 빠졌음에도 검찰은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습니다.
소위 ‘카더라’ 단계였지만 ‘조 전 부사장 법적으로 문제될 것 없다고 하네요’라는 그 한마디가 얼마나 어이없던 것이었는지 실감합니다. 이 관계자는 말단 사원이 아니라 꽤 직책이 높은 사람이었습니다.
국토부 출입기자들이야 국토부 관계자에게 들었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를 했을 거고, 이 관계자도 기자들한테 들은 대로 이야기해 준 것이겠죠.
그저 아는 척 좀 하고 싶었던 몇몇 기자가 허풍을 떨었거나, 일부 국토부 관계자가 이때까지 나온 내용만 보고 별 것 아니라고 오판한 것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만일 사회적 공분이 이렇게 커질 줄 모르고 조사 전부터 ‘결과를 정해놓고’ 뱉은 말이라고 생각하면 섬뜩하기까지 합니다.
김현섭 기자 afer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