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김민석 기자] 세월호가 침몰한 지 꼭 1년이다.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48분쯤 기울기 시작한 배는 이내 뒤집어져 48시간 만에 완전히 침몰했다. 탑승자 476명 중 단원고 학생 250여명을 포함해 295명이 함께 가라앉았다. 9명은 아직 시신조차 찾지 못했다.규제완화가 부른 설계 변경, 과적 안전규정 무시 등 안전 불감증, 이상한 선장의 지시와 어설픈 정부의 대처가 빚은 참사였다.
온 국민이 울었다. 반성과 성찰이 잇따랐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한민국은 세월호 이전과 이후가 확연히 다른 나라가 될 것”이라며 ‘국가 대개조’를 선언했다.
그리고 1년이 지났다. 무엇이 달라졌을까. 우리는 이제 침몰 사고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1. 선박 안전 : 탐욕이 부른 참사… 또?
청해진해운은 2012년 8월 1994년 6월에 일본 하야시카네 조선소에서 건조된 ‘낡은 배’를 국내로 들여 세월호로 이름을 바꾸고 증축했다. 4·5층 객실을 고쳐 여객 정원을 804명에서 921명으로 117명 늘렸다. 세월호의 무게 중심은 11.27m에서 11.78m로 51cm가 높아졌고 총 톤수는 6586t에서 6825t으로 239t 늘었다.
증축에 따라 한국선급이 구조변경 승인 조건으로 실시한 선박복원성 계산 결과 최대 화물량은 2437t에서 987t으로 1450t 줄고, 여객은 88t에서 83t으로 5t 축소됐다. 선박복원력의 핵심인 평형수는 1023t에서 2030t으로 1007t을 증설해야 안전하다는 기준이 제시됐다.
그런데 청해진해운은 사고 당일 적재 한도 1077t의 거의 두 배인 2142t의 화물을 실었다. 배의 복원성을 유지하기 위한 평형수는 절반에도 못 미치는 761t을 실었다. 게다가 화물들을 제대로 고박하지 않아 침몰을 재촉했다.
▶기준 강화됐다지만 각종 안전 법안은 ‘쿨쿨’
참사 후 여야가 앞다퉈 쏟아냈던 각종 안전 관련 법안들은 아직도 상당수가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와 정부는 규제완화로 사고를 부른 일부 법률안을 되돌려 놓기는 했다. 해운법, 선원법, 선박안전법 개정안 등 이른바 '세월호 후속법'이다. 해당 법안들은 연안 여객선의 안전 관리와 사업자의 처벌수준을 강화하는 내용 등을 골자로 올해 7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선박, 해사 관련 일부 법안은 아직도 국회에 계류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선박교통관제의 법적 기반을 강화하고, 관제구역을 지나는 선박에 관제통신과의 교신을 녹음·보존하도록 한 해사안전법 일부 개정안은 아직 상임위 문턱을 넘지 못했다.
해양수산부는 노후화 문제가 불거진 여객선(카페리)의 선령을 최대 30년에서 25년으로 줄이고 20년이 지나면 해마다 엄격한 선령연장검사 심사를 받도록 했다. 여객선의 복원성을 떨어뜨리는 개조도 금지시켰다.
해수부는 화물 과적을 막기 위해 지난해 10월부터 화물 전산 발권을 의무화했다. 적재 한도가 초과되면 발권이 자동 중단돼 화물 과적이 차단되는 방식이다. 화물 적재 및 고정을 끝내야 하는 시간은 ‘출항 10분 전’에서 ‘30분 전’으로 강화했다. 이달부터 대형 여객선(3000t급 이상)은 의무적으로 화물 계량증명서를 제출해야 한다.
그러나 해수부가 추진하는 안전 정책의 대부분은 오는 8월 법개정이 이뤄진 하반기부터 본격 시행될 예정이다.
2. 선원 교육 : 조타수는 ‘확’ 꺾고, 선장은 ‘패닉’
참사일 오전 8시48분 선장 이준석(70)씨 대신 당직 근무를 하던 삼등항해사 박한결(여·27)씨는 조타수 조모(57)씨에게 우현으로 변침하라고 지시했다. 박씨는 당시 경력이 5개월 정도에 불과했고, 맹골수도 해역(사고 해역)을 처음 운항하고 있었다. 조타수 조씨는 자기가 생각한 대로 변침이 이뤄지지 않자 조타기를 확 꺾었다. 복원성이 약한 세월호는 좌현 쪽으로 기울었고, 제대로 고박 돼 있지 않던 화물이 좌현 쪽으로 쏠렸다. 이 때 세월호의 복원성은 완전히 무너졌다.
이씨와 선원 8명은 5층 조타실로 모였다. 이들은 배가 점점 더 기우는 상황에서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우왕좌왕하던 선장과 선원들은 사고 발생 1시간 만인 오전 9시45분 승객들을 버려둔 채 해경 배에 올라탔다. 이씨는 팬티바람이었다. 해경은 이씨가 선장인지 나중에야 알았다고 했다.
▶35억원 들여 여객선비상훈련장 건설
선장 이씨 등 승무원 15명과 청해진해운 임직원 등 11명은 지난해 11월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이후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다. 검찰은 이씨에게 살인죄를 적용해 사형을 구형했지만, 법원은 유기치사상죄를 적용해 징역 36년을 선고했다. 항소심 선고는 오는 28일 오전 10시다.
해수부는 지난달부터 대형 여객선의 선장 자격을 2급 항해사에서 1급 항해사로 상향 조정했다. 선원이 당황하지 않고 사고에 대처할 수 있도록 35억 원을 투입해 부산 한국해양수산연수원에 ‘여객선종합비상훈련장’도 짓고 있다.
여객선종합비상훈련장은 여객선 승무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특별 교육훈련장으로 ‘대형 수조’ ‘훈령용 모형선박’ ‘선박 탈출용 슬라이드’ 등 실제 선박과 동일한 환경으로 조성된다.
훈련장에서 승무원들은 여객선 비상상황 발생 시 승객들의 퇴선 유도 및 탈출 훈련, 선박이 침수할 경우를 가정한 긴급 비상 훈련, 구명정과 헬리콥터를 이용한 대피 훈련 등을 받게 된다.
비상탈출 훈련 이외에도 야간 항해 훈련, 폭풍우 발생 시 선박안전운항 대처 훈련 등에 적합하도록 다양한 해상 상황을 구현 할 수 있는 강우설비, 인공 파도 생성 장치, 조명 및 음향장비 등을 설치하여 현실감 있는 교육훈련을 실시할 계획이다.
3. 탑승객 파악 : 줄었다 늘었다… 오락가락 탑승객 수
477→459→462→475→476. 사고 발생 이후 사흘간 정부가 발표한 세월호의 탑승객 수다. 신원을 확인하는 승선 절차가 주먹구구식이어서 배에 몇 명이 탔는지, 탄 사람은 누구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특히 차량을 몰고 선박에 탑승한 승객과 그의 동승자가 전산에 포함되지 않아 혼란을 야기했다. 결국 해경은 CCTV 화면을 보고 탑승객 수를 확인해야 했다. 선사들의 관행적인 검표 과정은 있었지만 법적 의무는 아니었다.
▶승객정보의무화로 탑승자 전원 전산발권 실시
해수부는 지난해 6월부터 세월호 사고를 계기로 승선자 신분 확인을 철저하게 하기 위해 탑승자 전원을 대상으로 전산발권을 실시하고 있다. 승객은 성별, 생년월일 등 자신의 정보를 제공해야 하며 자동으로 전산에 기록된다.
한국해운조합, 부산·인천항만공사 등 터미널 운영사는 개찰구를 일원화해 다른 곳에서 여객이 출입할 수 없도록 통제를 강화했다.
정부는 연안 여객선 관리감독의 일원화를 추진 중이다. 하지만 사고가 난 지 1년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다. 선박 검사 업무도 여전히 한국선급에 집중돼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4. 신고 접수 : 1분1초가 급한데 ‘위·경도’ 묻고 또 묻고
참사일 당시 단원고 학생 고 최덕하(당시 17세)군은 오전 8시52분 휴대전화로 가장 먼저 신고했다. 해양사고 신고전화는 122이지만 최군은 익숙한 119로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전남소방본부 119 상황실은 2분 뒤 해경 상황실로 전화를 돌렸다. 해경은 최군을 선원으로 착각해 위·경도와 배의 위치를 반복해서 물어 4분25초의 아까운 시간을 허비했다. 해경은 3분이 지나서야 선박의 이름을 물었다. 이후 탑승객의 수 등을 묻다가 음질상태가 악화됐고 전화가 끊겼다. 해경은 이후 최군과의 통화를 시도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해경 훈령인 ‘해양긴급전화 122 운영규칙’을 보면, ‘해경은 신고현장에 도착할 때까지 전화가 끊기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하면서 반복적으로 질문을 실시’하도록 돼 있다. 최군 말고도 세월호 승무원 등 5명이 추가로 신고를 했지만 탈출 지시는 없었다. 해경 상황실은 9시30분쯤 사고 해역에 도착한 해경 123정 승무원들에게 승객들을 탈출시키라고 지시하면서도, 정작 세월호에 탑승한 신고자들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탈출을 유도하지 않았다.
▶119·112·110으로 통합… 현장 경험 풍부한 요원 배치
그동안 신고 전화는 범죄와 재난사고신고, 학교 폭력과 사이버테러, 환경오염 등 무려 20여 개로 나뉘어 혼선을 야기했다. 내년부터는 촌각을 다투는 범죄 신고는 112, 재난 신고는 119로 통합되고 긴급 출동이 필요 없는 모든 신고 전화는 110으로 단일화된다. 정부는 미국의 911처럼 단일 번호 도입을 검토했지만 채택하지 않았다. 다만 112와 119를 구분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어느 쪽으로 신고해도 된다.
오늘날엔 대형 선박사고 신고접수가 원활히 될까?
해양경비안전본부 관계자는 15일 세월호 참사 당시 위도·경도를 반복적으로 물은 것에 대해 “소방본부에서 정확한 인계를 받지 않아 매뉴얼대로 위치부터 물었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세월호 이후 신고를 받았을 때 원활한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현장경험이 있는 요원들을 배치하고 있고, 상황에 맞게 대응하도록 접수 훈련도 실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신고번호 통합과 관련해서는 “해상사고의 상황판단은 해경에서 하기 때문에 세월호 때와 마찬가지로 신고가 넘어오게 돼 있다”며 “신고절차가 달라질 게 없어 효율 면에서 별 차이가 없을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각 지역 경비안전서에서 침몰사고를 가정해 강도 높은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교육은 55시간(38개 종목) → 80시간(39개 종목)으로 훈련은 75시간(34개 종목)에서 → 110시간(33개 종목)으로 증가했다. 특히 구조분야 교육 훈련은 17시간→ 100시간으로 늘었다.
5. 컨트롤타워 : ‘우왕좌왕’ 무능 드러낸 정부
세월호 참사일 오후 1시 정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368명을 구조했다고 발표했다. 이 때문에 ‘단원고 학생 전원구조’라는 사상최대 오보가 터져 나왔다. 중대본은 2시간 뒤 164명이 구조됐다고 정정했다. 사고 직후 구조자 명단이 뒤바뀌는 등 혼선이 계속 이어졌다.
컨트롤 타워의 부재로 인한 정부의 거짓말도 계속됐다.
참사 당일 서해지방해양경찰청은 두 번째 사고 보도자료에서 '현재 경비함정을 통해 탈출 방송을 실시하고 있다'고 현장 상황을 전했다.
그러나 현장 지휘관이었던 목포해경 123정 정장은 탈출 지시를 하지 않았다. 또 퇴선방송을 한 것처럼 각종 보고서를 허위로 만들고 함정일지를 찢어 거짓으로 작성했다.
참사 다음날인 17일 새벽에는 ‘야간 실종자 수색 밤샘 실시’ ‘잠수요원 선체내부진입 시도 중'이라는 거짓 보도 자료를 배포했다. 밤샘 수색 작업 중이라던 잠수요원 20명과 해경 특수구조단 456명이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은 언론이 아닌 실종자 가족들이었다.
진도VTS(해상교통관제센터) 직원들은 제대로 근무하지 않았으면서 이를 숨기려고 영상 기록을 지우고 거짓 장부를 작성했다.
참사 직후 중대본, 해경구조본부, 해수부 중앙사고수습본부에 당시 정홍원 총리가 지휘를 맡은 범부처 대책본부까지 추가돼 지휘기관만 4곳이 됐다. 정부는 조직만 이리저리 뗐다 붙였다 할 뿐 일사불란한 지휘 체계를 구축하는 데 실패했다.
▶국민안전처 신설해 컨트롤타워 역할… 대형재난 땐 총리가 지휘
지난해 말 재난 및 안전관리에 관한 기본법이 개정돼 앞으로 세월호 같은 대형 사고가 발생하면 국무총리가 중앙재난안전대책본의 본부장을 맡아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하게 됐다.
또한 기존 해양경찰과 소방방재청, 안전행정부 안전관리 인력을 통합한 국민안전처가 지난해 11월 출범해 재난 예방 및 대응 업무를 총괄하게 됐다.
국민안전처는 국무총리 소속 장관급 기구로 차관급인 ‘중앙소방본부’와 ‘해양경비안전본부’ 안전행정부의 안전관리 기능과 소방방재청의 방재 기능을 각각 이어받은 ‘안전정책실’과 ‘재난관리실’ 항공·에너지·화학·가스·통신 등 분야별 특수재난에 대응하는 ‘특수재난실’로 구성됐다. 육상과 해상, 자연재난과 사회재난으로 분산된 재난대응체계를 통합하고, 재난 현장에서의 전문성과 현장 대응력을 강화한 것이 골자다.
그러나 일각에선 사고 현장에서 각 본부·부처 간 유기적인 협업체계가 이뤄지지 않아 갈 길이 멀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6. 전국민적 불신 여전 “그래서 이제는 살 수 있나?”
세월호 참사 1주기를 앞두고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 결과, 대다수 국민이 진상규명·선체 인양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여전히 많은 것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사고 발생 이후 현재까지 정부의 대응에 대해서는 부정적 평가가 지배적인 것으로 조사됐다.
최근 한국일보가 코리아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만 19세 이상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세월호 1주기 대국민 여론조사’(휴대전화·집전화 임의걸기 면접조사 방식·표본오차 95% 신뢰 수준 ±3.1%p) 결과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의 재난 및 안전관리 대응 능력이 향상되지 않았다’는 의견이 70.0%에 달한 반면 “향상됐다”는 평가는 25.7%에 그쳤다.
정부가 국민안전처를 출범시킨 후 각종 안전대책을 시행하고 있지만, 국민의 불신이 여전하다는 것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국민이 느끼는 안전 체감도와 관련해선 ‘이전과 별 차이가 없다’는 응답이 68.7% ‘이전 보다 위험하다고 느낀다’는 응답이 18.5%로 나온 반면 ‘이전 보다 안전하게 느낀다’고 응답한 비율은 11.2%에 그쳤다.
안전체감도는 젊은 나이대일수록 낮았다. 19~29세에서 ‘이전 보다 안전하게 느낀다’고 응답한 비율은 4.2%에 불과했고, 30대와 40대에서도 각각 6%, 6.5%로 낮았다. 반면 50대(20.4%), 60대 이상(17.7%)에서는 상대적으로 높았다.
서울신문과 에이스리서치가 3월 31일~4월 2일 3일간 전국 성인 남녀 100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유선전화 임의걸기·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조사,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1%p)에서도 ‘국가의 안전의식이 변화했는가’라는 질문에 60.1%가 ‘아니다’라고 답했다.
연령별로는 30대 73.6%, 40대 70.0%, 20대 66.0% 순으로 젊은층에서 부정적 견해가 많았다. 50대(49.8%)와 60대 이상(43.6%) 고령층에서는 정부의 안전의식에 대해 상대적으로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ideae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