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밤마다 잠을 못 자요” 음주·흡연지로 전락한 하천변 정자, 주민 불만 고조

[기획] “밤마다 잠을 못 자요” 음주·흡연지로 전락한 하천변 정자, 주민 불만 고조

기사승인 2016-07-26 14:53:21

“낮이건 밤이건 음주, 흡연, 취사에 고성방가…. 야간엔 이불까지 깔고 음주를 하는데 소음 때문에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어요. 이 더위에 문을 닫을 수도 없고 화가 납니다”

서울 서대문구 불광천을 낀 오솔길 옆 정자는 본래 휴식공간을 취지로 설계됐다. 하지만 지금은 그 목적이 무색하게 지역주민들의 밤잠을 방해하는 골칫덩이로 전락했다. 지역주민들은 지속적인 민원을 제기했지만 서대문구청과 경찰은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신고하면 경찰이 바로 오긴 하지만…”

정자 인근 단독주택에 거주 중인 A씨는 노숙자들의 고성방가로 몇 달째 밤잠을 설쳤다고 했다. 고심 끝에 몇 차례 ‘112 문자신고’를 했지만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노숙자들에게 주의를 줄 뿐 퇴거조치를 하지 않았다.

“이제 노숙자들은 경찰이 와도 거들떠보지 않아요. 막무가내로 욕을 하고 버팁니다. 경찰도 그 사람들 성질을 아는지 조용히 해 달라고 하고 돌아갑니다. 그런데 술 먹은 사람들이 자제가 되겠습니까? 잠깐 조용하다가 또 소리를 지르기 시작합니다”

현재 불광천 하천변에는 정자가 한 동만 남았다. 서대문구청 푸른도시과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해 은평구 산하 정자 3동이 철거되면서 노숙자들이 하나 남은 정자로 몰리게 됐다.

복수의 지역주민과 구청측 증언에 의하면 노숙자들은 은평구 등에 거주지가 있음에도 정자에서 노숙을 한다. 정자 3동이 철거되기 전에도 노숙자들은 음주·고성방가 등으로 인근 주민들과 갈등을 빚은 전력이 있다.

구청측은 “올해 날씨가 따뜻해진 3월부터 민원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현재는 굉장히 심한 상태”라면서 해당 정자에 이불, 부탄가스 등 적치물이 생길 시 즉시수거를 원칙으로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거주민들의 주장은 다르다.

A씨는 “노숙문제는 이미 몇 년도 더 된 일이고, 정도의 차이일 뿐이다”면서 “신고는 훨씬 전부터 했다. 그러나 노숙과 고성방가는 계속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노숙자들이 항상 술에 취해 있어 시비가 붙으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과거 한 번 크게 싸운 이후부터는 그냥 참고 지낸다”고 털어놨다.

출·퇴근길에 해당 정자를 지나간다는 B씨는 “날이 따뜻해지면 정자에 살림이 차려진다”면서 “아침에 지나가면서 보면 취객들의 구토와 술병, 각종 음식물 쓰레기가 널브러져 있다”고 증언했다.

관할 파출소는 “해당 문제에 대해 인지하고 있다”면서도 “고성방가, 취사행위 같은 행동에는 행정지도를 할 수 있지만 정자에서 머무는 행위만으로 제재를 하긴 힘들다”고 말했다.

서대문구청측 역시 원칙적으로 정자 내 노숙을 금지하고 있지만, 이들이 ‘휴식’을 구실로 그 자리에서 밤을 새기 때문에 쫓아낼 법적 근거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버젓이 버너와 이불까지 깔아 놓은 상황에서 노숙의 뜻은 자명하다. 관건은 퇴거에 대한 강제성이다. 구청이나 경찰측은 난색을 표한다.

서대문구청 관계자는 “정자에서 노숙하는 어르신들은 실제 지역 거주민이다. 상당수 노인들은 술을 마시고 잠을 자다가도 집에 돌아간다”면서 “정자에서 쉰다고 하는데 퇴거조치 할 법적 근거가 없다. (그쪽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고 주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관할 파출소 또한 “고성방가, 노상방뇨, 각종 행패행위는 경범죄 처벌법이 있지만, 단순 정자에서 머무는 건 적용할 수 있는 처벌법이 없다”면서 “신고가 들어오면 즉각 출동을 하지만, 노인들에게 자제를 당부하는 게 전부”라고 해명했다.

기자가 방문한 정자는 지역주민이 사용할 수 없는 수준으로 위생관리 상태가 엉망이었다. 쓰레기, 음식물 자국뿐 아니라 그을리고 썩은 나무는 안전사고의 우려도 낳았다. 복수의 제보자들은 구토물 등이 자주 방치된다고 증언했다.

구청측은 지역공동체 사업의 일환으로 6명가량의 청소인력을 동원해 매일 불광·홍제천을 청소하고 있다. 그러나 수시로 쓰레기 투기가 이뤄지기 때문에 완벽한 청결유지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정자의 기존 설치 취지와 달리 노숙자와 청소년들의 음주·흡연지로 전락했다는 시선이 만연하다. 때론 교복을 입은 학생과 노숙자간 고성이 오가는 다툼도 적잖게 보인다고 지역주민들은 전했다.

주민들의 불만이 쏟아지자 구청측은 해당 정자에 대한 철거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하지만 불만이 쌓인다고 바로 철거를 집행할 순 없다. 예산을 들여 설치한 만큼, 철거 또한 지역사회의 충분한 의견수렴을 해야 한다는 거다.

구청 관계자는 “정자 인근 주민 외 의견도 들어야 한다. 철거에 대해 통장회의에 안건을 내서 의견을 듣고 있다”면서도 철거시기에 대해선 “결정된 것이 없다”고 말을 아꼈다.

한 지역주민은 “해당 정자가 정상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고 흡연·음주지로 전락한 상황에서 인근 거주자들의 고충을 제대로 이해해 줬으면 한다”면서 조속한 철거를 촉구했다.

서대문구청측은 철거 전까지 해당 정자의 야간 출입을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다니엘 기자 dn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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